호손의 큰바위얼굴

 

지금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걸로 아는...

나, 어렸을 적,  초등학교 교과서에 <큰바위 얼굴>이 실렸다. 

(아마도 도덕책이었겠지~) 

큰바위 얼굴은 나만이 아니라

모든 어린이들에게 감동을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요즘도 또래와 이야기 하다보면 대개는 그 글을 기억하고 

<큰바위얼굴이 되어야지>하는 꿈을 키웠다는 어쩜 한결같은 말들을....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치 고향 동기동창을 만난 것처럼

어린이같은 공감대를 갖게되었다.

 

ㅎ`ㅎ`ㅎ`

그런 꿈을 품은 관계로

<후제 나는 큰바위얼굴이 꼭 되고 말꺼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나는 정말이지 늙어가면서 점차 실제 큰바위? 얼굴이 되었다.

(중력에 의해서 늘어진 피부는 얼굴은 더 크게 만들었다)  

 

그 때는 어린이들의 눈높이로 편집된 글이므로

그 글이 그냥 외국 전래동화쯤으로 여겼다.

그 책에는

아브라함링컨 대통령의 통나무집과 비에 젖은 빌린 책,

어린이를 감동시키는  좋은 글은

꿈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기에 충분했다.

 

요즘

초등학교 교과서엔

어떤 글들이 실리는지 잘 모르겠다.

요즘 어린아이들의 꿈을 실어줄

그런 좋은 글들이 있는지? 

,

,

세월이 흘러

나는 블로그질을 하게되었고

딸에게 쓰는 편지가

어느듯 세상의 딸에게로 향한

내 메세지가 되었다.

 

서글프지만

그만큼 내가 늙었다는 것이다.

바른생활!

바른 글!

 

어느새

실제 큰바위 얼굴인 나는

호오른의

큰바위 얼굴을 닮고자

영혼의 중력에 순응하고자

,

,

비록

어눌하지만

오늘도 나는 그런 연유에서 블로그를

쓰는지도 모른다.

 

 

 

 긍정적인사고는 어렸을 적부터 길러져야 한다.

어릴적부터 꿈과 야망과 긍정의 메시지를 심어주는 것은 부모의 역활이 크다고 할 것이다. 좋은 책을 가까이 두고 독서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마치 육체에 생긴 근육이 힘을 길러주고 지구력과 열정을 쏟아내듯이 마음에도 정신에도 그런 근육을 만들어주어야만 한다.

긍적적인 사고는 갑자기 생겨지는 게 아니다.

정신적 건강으로 꾸준한 힘을 길러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꿈을 실현하는데 있어 긍정적인 요인은 근육의 힘처럼 작용한다.

 

내가 주홍글씨를 읽었던 여고적에는 나다니엘? 호오른 그렇게 이름이 번역되었다.(그렇게 지금껏 각인되었다)

지금은 너새니엘 호손이 되었지만...뭐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니 요즘 표기법대로 따라야지 않는가?

 

 

 너새니얼 호손 만년에 쓴 단편소설로 ‘큰 바위 얼굴’이라는 소재를 통해 여러 가지 인간상을 보여주면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추구한 작품이다.

남북전쟁 직후, 어니스트란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전설(傳說)을 듣는다. 어니스트는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자신도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처럼 될까 생각하면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간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돈 많은 부자, 싸움 잘하는 장군, 말을 잘하는 정치인, 글을 잘 쓰는 시인들을 만났으나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어니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할 말을 다 마친 어니스트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이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용모를 가지고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바란다.

작가인 너새니얼 호손은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대표작 《주홍글씨》(1850)를 비롯하여 교훈적 경향이 강한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이 작품 또한 그러한 경향의 작품이다. 즉, 위대한 인간의 가치는 돈이나 명예나 권력 등의 세속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탐구를 거쳐 얻어진 말과 사상과 생활의 일치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문학자이자 시인인 피천득 (皮千得)이 번역하였다.

  

달밤에 Old Man !지금 너의 자리에는 무너진 자국 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네가 있던 아래, Old Man’s Washbowl이라고 불리는 Profile Lake 에는 너의 모습이 사진으로 생생히 남아 있고, 큰 바위 얼굴 책을 통해 영원히 기억 될 것이다.\출처 아홉째날(4) : 큰바위얼굴 - Old Man(Aug. 5 ) |작성자 방가방가  2003.06.06 01:31  
지난 8일에 미국 뉴햄프셔주에 있는 큰 바위 얼굴(old stone's face)이 폭풍우로 무너져 내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200주년 기념사업을 앞두고서 무너져내려 원상 복구해야 한다는 쪽과 무너져 내린 모습대로 그냥 두어야 한다는 논란이 있다고 한다.

'큰 바위 얼굴'은 미국의 소설가 호손(Nathaniel Hawthorne)이 썼다. '주홍글씨'로도 우리에게 알려진 작가로서 그가 탄생(1804)한지 200주년이 되어 간다. 이 소설은 한 모자가 전설로 내려오는 큰 바위 얼굴 이야기로 시작한다. 곁에서 보면 그냥 바윗돌이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님이 신비스럽게 만든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언젠가는 이를 닮은 위대한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작가는 이러한 가정 하에, 큰바위 얼굴을 닮은 다섯 사람들을 대비시키다. 돈 많은 수전노, 유명한 노장군, 말 잘하는 정치가, 재주 있는 시인이 지목되지만, 결국은 정상적인 교육도 못 받았지만 자연과 더불어 정직하게 살았던 설교자인, 어네스트가 큰바위 얼굴이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호손은 이 작품에서 인간의 어떠한 권력이나 물질의 부, 용맹성,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말의 허구성 같은 것들이 결국은 자연으로부터 얻어지는 순수함과 정직함보다 앞설 수 없다는 점을 다소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은 이 작품을 읽어주면서 야망을 크게 가져야 성공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해서, 감명을 받고 큰 바위얼굴처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좋은 소리로 알고 노트에 써 가지고 다녔다. 잘 쓰지도 못하는 붓글씨로 크게 써서 가지고 다니며, 무슨 큰 일이나 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자랑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야망을 크게 갖는 것이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며 자랑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차츰 성장하면서 야망을 크게 가져야 그 절반 정도라도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게 되었다. 장관이 되겠다는 야망을 가졌다면 촌장 정도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노년이 되어서야 그 말이 정말로 신통하게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내가 가졌던 목표의 절반에 도달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아서다. 어린 시절에 선생님 말씀을 잘 알아들었다면 지금쯤은 어떤 분야에서 좀더 성공을 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아버지는 큰 사람이 되기보다는 정직한 사람, 인정받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그런 아버지의 뜻을 가급적 존중하며 살려고 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반대로 그러한 점 때문에 성격이 두루뭉수리가 되어진 것 같기도 하다. 좋게 말하면 모가 나지 않은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주관이 뚜렷하게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튼 어릴 적에 어른들이나 선생님이 하시는 말 한마디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그 때 가졌던 감정이 어른이 된 뒤에도 잔재로 남아서 오랜 동안 영향을 미친다는 점 때문이다.


얼마 전에 어떤 아버지가 매스컴에 나와서 자기의 아이를 산악인으로 키우겠다고 하며, 공부해야 할 아이를 산에만 데리고 다닌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산에 오르는 것이 싫지만 아버지의 뜻을 따른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아버지가 좋아서 하는 일을 아들에게 강요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싫은 것을 아버지의 뜻대로 한다면 성공할 수가 없다. 하기 싫은 것을 하니 흥미가 없고 큰 야망을 가질 수도 없다. 싫은 일을 하면서 성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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