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

 

2009년 한 해가 거의 저물어가는 12월 27일 낙압읍성을 찾아들다.

오전 10시경의 아침 풍경이 꽤나 신선하였다.

 

2002년 10월 31일 전남도 문화재위원회는 한국의 전통적인 시골마을의 정취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순천시 낙안면 낙안읍성 마을을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으로 신청하기로 결정하고 낙안읍성의 가치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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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읍성이 한눈에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조선시대 지방계획도시로서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현재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 등재를 신청하고 낙안읍성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순천시 낙안면에 소재한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넓은 평야지에 축조된 성곽으로 성내에는 관아와 100여 채의 초가가

돌담과 싸리문에 가려 소담스레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옛 고을의 기능과 전통적인 주거공간에서 생활하는 서민의 모습을 통해 (현재 108세대 300여명이 살고 있음)

실제 보고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전통문화마을이다.

 

 

순천시 임용택 과장님의 특별한 가이드로 즐겁다.

낙안 읍성에 머물면서 1년을 창을 가르치셨단다.

입을 여느니...해학이고 만담이다.

가슴이 찌르르하게 감동을 선사하던 남도 판소리는 또 어쩌고...

낙안읍성에 어울림직한 참 멋을 느끼게 해주셨다.

 

낙안읍성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서다.

낙안읍성 관람은 그 성곽위를 걸으며 둘러보는 묘미다.

해설가대신 설명해주시는 과장님의 신기한 말씀~`

낙안읍성 돌성곽은 적들이 외부에서 침입하고자 기어오르면 위칸에 조금 나온듯한 돌이 쑤욱-빠져버리게 조성되었다 한다.

 

 성곽을 걸으며 내려다 본 맨 위엣돌은 약간 돌출되어 있다.

이 돌을 건드리면 빠지게 되어있다한다.

 

낙안읍성은 대개의 성곽이 산이나 해안에 축조되었는데 반해, 들 가운데 축조된 야성(野城)으로 외탁(外托)과 내탁(內托)의 양면이 석축으로 쌓여 있는 협축(夾築)으로 이루어졌다는 큰 특징이 있다. 이곳 낙안 평야지에 있는 읍성으로서 연대를 살펴보면 조선 태조 6년(1397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襄惠公)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고 왜구를 토벌하였다.

그 후 인조 4년(1626년 5월 ∼ 1628년 3월) 낙안 군수로 부임한 충민공(忠愍公)임경업(林慶業) 군수가 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으나
조선왕조실록 세종편에 의하면 세종6년(1423) 전라도 관찰사의 장계 내용에 "낙안읍성이 토성으로 되어 있어 왜적의 침입을 받게 되면 읍민을 구제하고 군을 지키기 어려우니 석성으로 증축하도록 허락하소서" 하니 왕이 승낙하여 세종9년(1426) 되던 해에 석성으로 증축하기 시작하였다고 하는 이설이 있다.

 

 성곽의 길이는 1,410m, 높이 4∼5m, 넓이 2∼3m로서 면적 41,018평으로 성곽을 따라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있었으나 북문은 호환(虎患)이 잦아 폐쇄하였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동문은 낙풍루(樂豊樓) 남문은 쌍청루(雙淸樓) 또는 진남루(鎭南樓)라고 하고 서문은 낙추문(樂秋門)으로서 성문 정면으로 ㄷ자형 옹성(瓮城)이 성문을 외워 감싸고 있다.
여장엔 활을 쏠 수 있도록 사방 1尺정도의 총안(銃眼)=사구(射口)가 있고 이 총안 역시 근총(近銃)과 원총(遠銃)으로 나누어 있다.
또 여장이 타구(朶口)로 나뉘어 있고 성곽을 따라가면凸 형의 성곽이 있는데 이는 치성(雉城)이라고 한다. 당초 6곳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4곳만 남아 있다.
(일부 복원함) 이 치성은 초소(망루) 역할을 했던 곳으로 좌우로 침입하는 적의 동태를 살피기도 하고 성벽을 타고 오르는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축조되었다.

 

 

 

감을 수확하지 않아 서리맞은 연시,,. 서리霜자를 붙여 상시라고 한다던가? 

겨울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인 듯,

빨래도 내다 걸리고 살아있는 마을임이 분명하다.

 

 

마을안 큰나무 꼭대기엔 까치집도 보이고...

겨울이라 좀 헹뎅그렁해보이지만 녹음이 우거지면 마을이

이보다 더 아기자기해 보일 것 같다.

 

성곽을 밝고 한바퀴 돌면 마을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물레방앗간이 있는 마을안길도 보이고

 

마주 바라보이는 저 산이 금전산(金錢山, 667.9m)이란다.

산 이름 유래는 부처님의 제자인 금전비구(金錢比丘)를 지칭해서 지었다는데.

저 산에 올랐다 내려오면 금전운이 있다는 풍문인데..ㅎㅎ

 

 

장금이가 저 곳에 앉아 고독을 씹을 때....민정호가 찾아왔다는 곳!!

누가 내려가서 장금이처럼 재현을 해보라는데...

치아가 션찮아서 고독을 못씹으니 안되겠다고..응수~

 

장금이가 어렸을 때 기거하였던 장면을 찍었던 집이라고 한다.

 

데이트하기에도 좋은 멋진 길이다.

시도때도 없는 관람객들이 기웃기웃..

생활하기엔 노출이 너무 되어서 좀은 불편 할 듯도 하다.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이런 그림엔 아스라한 연기자락이 퍼져나는 풍경이 제격이긴한데.....

 전선은 모두 지하로 감추어졌나 보다.

저녁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풍경이 제격일텐데...

땔감을 이용하는 굴뚝은 그나마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마늘과 파가 자라는 텃밭

 

 삭막한 겨울풍경이지만...푸른하늘에 비치이는 하얀 열매는..무슨?

<멀구슬나무>란다. 독이 있어서 짖찧어서 물에 풀어 천렵에 이용했다 한다.

 

 짚풀공예

 성내에 있는 관아를 찾아가는 길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죄인들에겐 관아가 얼마나 오금저리던 곳이었을까?

 이 죄인은 죄목이 뭐등고?

얼마나 큰죄길래 곤장독이 오르도록...??

 아하!! 마네킹을 흔들고 훼손한죄란다.

그래서 곤장을 맞았단다. 흐미~~~@.@ 무서운 경고문이다.

 

 

 낙안읍성 저잣거리와 사는 모습들

 

 

 

 지난 해 10월 그믐경 광주김치축제만 관람 올라갔더니 바로 연이어 낙안읍성 남도음식축제가 열렸다기에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그러나 이렇게라도 음식만들기를 볼 수 있고 맛도 볼 수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바깥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왔는데 읍성안 저잣거리에는 맛난음식을 파는 향토음식점이 여럿 있었다.

간단한 간식정도로 떡 커피, 유과 강정같은 한과를 아쉽잖게 맛은 보았지만....굳이 바깥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올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겨울채비로(이엉엮기 용마름엮기) 부산한  진기한 풍경을 보았지만  녹음이 짙푸른 날 다시 한 번 더 들리고 싶은 낙안읍성이다. 낙안읍성내 초갓집 민박도 가능하다.   어차피 여행길이라면 하룻밤 묵어가기에 딱 좋지 않을까?

초가지붕 토방에서 하룻밤은 여행자들에게 아스라한 옛 향수의 추억을 물씬 안겨 줄것만 같다. 글/이요조

 

 낙안읍성 겨울채비, 용마름 엮는 할아버지들  

http://blog.daum.net/yojo-lady/13745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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