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시인과 묵객들이 즐겨 찾는다는 청령포,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유배되었던 곳으로 삼면이 남한강의 지류인 서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은 험준한 절벽에 가로막혀 나룻배가 없으면 드나들 수 없는 곳이다.

단종애사가 깃들어서 더욱 더 애잔해보이는 강은 말없이 흐르는구나!!

삼면이 강으로 둘러쌓였고 서쪽은 절벽과 맞딱뜨리니 유배지는 배 없이는 오갈데 없는 섬이나 진배없다.

 

다시 찾은 청령포 강나루는 입구가 한창 공사중이어서 예전의 그 아름답던 풍광은 ....사라졌다. 

조선 제6대 왕(재위 1452∼1455).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되었다.

500여년 전,억지 상왕이 되버린 단종이 유배되어 온지 두어달만에

홍수로 물이 불어 이 곳을 벗어났다가 

이후 단종복위운동을 하던 성삼문 등이 죽음을 당하자 서인으로 강등되고 결국 죽임을 당하였다.

 영월의 형승(形勝)은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평창군 진부면 우통수에서 발원하여 주천강 어우러져 흘러오는 西江과 정선군 임계면에서 발원하여
영월로 흐르는 東江, 이 두 갈래 강물이 합쳐져 충청북도 단양으로 흐르면서 곳곳에 아름다운 절경을 남기고 있다.
그리하여  <영월읍지>와 <동국여지승람>에서도 "칼같은 산들이 얽히고 설키어 있으며, 비단결 같은 냇물은 맑고 잔잔하다."
라고까지 하였다. 그래서 예부터 이 고장은 산수의 경관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 곳 선비들에 의해 곳곳에 영월팔경이라는
명칭이 남아있게 되었다.
이러한 영월의 승경들과 더불어, 단종이 승하하기 전까지 이 곳 청령포.금강정. 금몽암 등의 유적지는 영월의 승경을
보기위해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였다.
청령포는 영월의 서남쪽 8리쯤에 위치해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영월군 남면 광천리 67번지의 일대로 1971년 강원도 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종의 최초 귀양지로 유명한 청령포는 강수의 회곡이 심하며 동.남.북 삼면은 깊은 강물이 둘러싸여 반도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서쪽에는 육육봉의 층암절벽이 둘러있어 외부와 단절된 전형적인 유배지라 할 만하다.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그 다음 해인 1456년 6월28일에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 복위 움직임이 누설됨으로써 노산군으로 강봉되었다.

 

담장밖에 선 소나무 하나가 단종이 있는 곳을 향해 읍을 드리듯

구부정하게 서 있다. 소나무를 지지대를 이용, 받쳐놓고 있음!

단종이 두 달간 (갇혀)기거하던 곳이다.

 

 

궁녀들이 기거하던 초가

단종을 모시던 궁녀들의 생활

 

           

침모와 찬모가 있었으며

어린 단종의 침실인 작은 방

그 방 바로 옆 방에는

◀ 단종을 돌보는 궁녀의 방

그녀들은 단종이 죽임을 당하자

청령포 낙화암으로 몸을 던졌다고

전한다.

 

 

 

 

단종이 북쪽 궁을 그리워하며 올랐다는 망향대

솔숲이 아름다운 청령포!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거니노라면

잠시 현실을 떠나고

500여년 전 그 시대로 돌아가서 생각에 잠겨봐도 ....

관음송!

CF 카피문구처럼 핸폰은 잠시 꺼두고...

청령포 솔숲을 거닐어 보다.

 

‘청령포도’

어린 단종이 유배생활을 했던 강원 영월군 청령포의 모습을 그린

‘청령포도’. 화첩 ‘월중도’에 들어 있는 8폭 그림 가운데 하나다.

사진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공사전, 아름다운 뱃머리....

얼른 공사가 끝나고 보다 나은 풍광이 되기를.....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