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를 찾았습니다.

들어가는 길이 계곡을 끼고 시원합니다.

아름다운 입구 풍경을 바라보노라니 어느덧 마곡사 경내에 도달했습니다.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절.

마곡사 /마곡사5층석탑(고려 후기, 보물 제799호, ...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로 현재 충청남도 70여 개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 泰華山麻谷寺事蹟立案〉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慈藏)율사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창건한 절로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한다.

 

마곡사를 아침 일찍 찾은터라...더구나 제겐 생소한 곳이고

문화해설사나 특별한 안내자가 없으니 완전 청맹과니 맞습니다.

출발하기 전 으례히 해설사가 있으려니 하고 예습 하나 안하고 맞닥뜨린 곳입니다.

경내에 들어왔지만 어디서 어떻게 돌아야 할지를 하나도 모르겠는 거 있지요?

마곡사 대웅보전과 대광보전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도...

문화재정밀실측조사를 하고 있으며 방문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고 양해를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글이 씌였군요.

오층석탑은 중요한 문화재임이 분명하군요.,

일단 사진을 찍고 집으로 간 후, 검색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마곡사5층석탑 (고려 후기), 보물 제799호,
마곡사 대광보전 앞에 있는 고려 후기의 석탑. 보물 제799호. 높이 840cm. 1782년 대광보전 화재 때 많이 파괴되었으나 현재 화강암으로 보수되어 있으며 1972년 탑을 해체·보수할 때 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과 특이한 상륜이 놓여 있는 구조로 일반적인 석탑형식을 따르고 있다. 상층기단에는 양쪽 모서리에 우주(隅柱)가 형식적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안쪽으로 둥근 형태의 기둥이 1개씩 입체적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갑석(甲石)은 높고 폭이 넓은 편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며 상층기단의 갑석 위에는 탑신을 받치기 위한 높은 2단 굄이 있다. 탑신의 옥개석과 옥신석은 각각 1개의 돌로 되어 있다. 옥신석은 각 층마다 양쪽으로 우주가 새겨져 있으며 그 사이로 1층 탑신의 남면에는 문비(門扉)와 자물통이 조각되어 있고, 2층의 각 면에는 불좌상 1구씩을 새겨 사방불(四方佛) 형식을 취했다. 2단받침의 옥개석은 전체적으로 곡선을 이루며 처마 끝부분의 반전(反轉)이 심해 장식화 경향을 보여준다. 상륜부에는 노반(露盤) 위에 풍마동(風磨銅)이라는 청동제로 된 부재가 놓여 있는데, 그 형태는 3층의 전각형 건축물 위에 원형의 복발(覆鉢)과 보주(寶珠)가 놓여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상륜부의 형식은 다른 석탑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으로, 중국 원대의 라마식 보탑과 유사하여 원나라와 문화적으로 교섭이 빈번했던 고려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체감률이 적어 불안정한 느낌을 주는 점과 옥개석의 심한 반전 등에서 고려 후기 석탑의 양식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차 한 잔을 앞에두고 생각에 잠긴 스님

 실례를 무릅쓰고 찍었다.

그림이 참 좋아보여서요. 아마도 차탁위가 복잡한 걸로 보아

손님들이 한 차례 몰려 간 뒤끝이라...심신을 갈아 앉히고 계시는 듯 보이는...스님의 명상!

돌담아래 봉숭아....바라만봐도 좋아요!!

 

 

마곡사심검당및고방(麻谷寺尋劍堂및庫房)

그냥 사다라가 아주 재미있어 찍어왔는데....중요한 자료군요!!

심검당을 보시고 아래 검색글을 읽어보시면...(검색글 참조)

 ▲직접 그 사다리를 올라가보니 의외의 안정감이 있었다.  내려올때도 좋고...

사다리 한 개를 수직으로 벽에 붙여 놓고 사용하는 것을 방송(티베트)에서 보았다.

....(이 사진은 동행의 블로그 사진에서 계단을 올라보는 나,)

 

 

고방과 같이 있는 심검당은 스님들이 거처인 요사채였는데

돌아나오는 길에 굴뚝의 형태가 특이해서 찍다.

 

마곡사심검당및고방(麻谷寺尋劍堂및庫房)

종별 충남 유형문화재 135호 
 소재지 충남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567 
 규모 심검당-정면6칸,측면4칸 고방-정면4칸,측면1칸  /지정일 1991-12-03 
 조성시기 신라시대 
 
   [문화재소개]

마곡사 심검당은 대광보전 5층 석탑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스님들의 거처인 요사채이며, 고방은 창고건물이다.

심검당은 'ㄷ'자 평면에 자연석을 쌓아 한벌의 기단(基壇)을 조성하고 덤벙 주초석을 놓은 위에 둥글고 네모난 기둥을 혼합하여 세웠다. 공포(拱包)는 간결한 양봉만 결구되어 있는 납도리 계통의 접으로 내부에는 우물천장이 가설되어 있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정면 6칸•측면 4칸의 동향한 본채에서 북단 4칸, 남단 2칸을 동쪽으로 5칸씩 달아낸 형태이다. 또 남쪽 중간에는 사방 2칸을 달아내어 방과 마루를 들여 요사(寮舍)로 쓰고 있다.

심검당은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조 21년(1797)년에 보수공사가 이루어진 기록과 편액에 적힌 글에 의하면 철종 7년(1856)년에 고치고 1909년에 기와를 다시 올렸다고 한다.

고방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집이다. 남향집으로 '一'자형 평면이지만 심검당 동쪽에 있다. 심검당의 앞마당을 막고 있으므로 심검당과 함께 보면 'ㅁ'자 집 배치가 된다. 마치 규모가 큰 조선 양반집과 같은 모습이다. 이 고방은 2층 구조인데 아래층은 흙바닥이고 위층은 마룻바닥이며, 사괴석으로 기단을 만들고 초석은 자연석인 둥글넓적한 주춧돌이다. 아래층 기둥은 둥그런 원주를 세우고 상층은 방주를 세워 일반적으로 중층 건물의 경우 위아래 기둥을 같은 모양으로 만드는 데 비하여 여기서는 아래, 위층을 서로 다르게 만들었다. 아래층의 문은 심검당 안마당 쪽으로 내고, 벽은 흙을 바른 심벽(心壁)으로 만들었으며, 위층의 벽은 나무로 막은 판벽이다. 이 고방도 심검당과 같은 시기에 만든 것으로 본다.

 

마곡사심검당

 

종무소

 

 

대광보전

조금 이상한 점은 사찰 큰 마당에 들어서면 제일 크게 위치한 자리에 대웅전이 있는데

대광보전이 있다. 대웅보전은 대광보전에 가려져서 보이질 않았고 문화재 조사단의 가림막에 막혀

대웅보전은 못찍어 왔지만  대광보전의 아름다움에 홀려 정신을 놓았다는 게 옳다.

마곡사대광보전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 목조건물. 보물 제802호.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51년에 각순대사가 대웅보전과 함께 중건했으나 1782년 다시 소실된 것을 1788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석 기단 위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평면구조를 가진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공포는 기둥 위로 평방(平枋)을 두고 외3출목(外三出目)·내4출목(內四出目)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살미첨차는 3앙1수식(三仰一垂式)으로 앙서 위에는 연꽃 봉오리가 표현된 데 비해 뒷면에는 중첩된 교두(翹頭) 형태의 살미첨차가 조각되어 있다. 건물의 내부는 무고주(無高柱)·1고주·2고주가 절충된 형식으로 공간구성이 특이하며, 우물마루의 바닥에는 갈참나무 껍질로 만든 자리를 깔아놓았다. 천장은 2단의 우물천장으로 되어 있으며 대량(大樑)에는 용이 그려져 있다. 불단을 서쪽에 설치하고 그 위에 비로자나불상 1구를 동쪽을 향해 앉힌 배치방법은 부석사 무량수전과 유사한 점을 보여준다.

 

문화재 조사단이 사용하는 공사장 계단같은 곳을 올라가서 퇴색한 단청을 찍고

고개를 돌려보니.....이 더위에 가림막뒤에서 이렇게 수고하면서

꼼꼼하게 문화재 정밀 실측조사를 하고 있었다.

정밀하게 자로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재고 기록하고....이렇게 까지 세심한 작업일 줄 몰랐던 사실이다.

대광보전을 받치고 있는 나무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

대광보전 부처님은  불단을 서쪽에 설치하고 그 위에 비로자나불상 1구를 동쪽을 향해 앉힌 배치방법은

부석사 무량수전과 유사한 점을 보여준다.

영주, 부석사처럼 스님도 서쪽을 향해 계신다.

나무기둥도 도량을 많이 닦은 듯...영겁의 허물을 벗어내린다.

그저 좋다.

이런 걸 요즘 젊은이들은 엔틱이라 좋아들 하더라만.....유구한 숨결을 담아낸...

얼이 깃든 재목 옹이 하나 하나마다 역사의 이야기가 새겨져 있는 듯 보인다.

대광보전은 목하 문화재 진단 중.....

 

경내를 흐르는 내가 있고...

내를 건느자....아름다운 사찰 풍경이 다시 펼쳐진다.

스님들의 선방인 수행처<태화선원>

첫 걸음에 이만큼 알았으면 족하다 싶어서 ...다은으로 또 기약하고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이곳에서 백범 김구 선생이 한때 승려로 머물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898년 23세 청년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를 처단하고 붙잡히는데, 이후 과감히 탈옥해 마곡사에 들어오게 된다.

속세의 인연을 끊고 삭발을 했었다.  독립운동 지도자로 활동하기 이전의 '열혈 청년 김구'의 고뇌와 상념을 함께 느껴보고 싶다면,

백범 김구선생의 역사적인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위해 일명'백범명상길'로 조성한 솔바람길도 있다는데

마곡사로 가는 길도 이렇게 좋은데...조성한 길이 어찌 이보다 아름답지 않을까?

고즈넉한 산사에 노송사이로 조성한 솔바람길이 이채롭다는데 가보지 못해서 아쉬움을 더한다.

http://www.magoksa.or.kr/

 

11' 7, 6 이 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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