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가족의 생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자라왔다.
친정어머니는 아버지 생신은 물론 우리 다섯 남매의 생일을 그저 넘기신 적이 없었다.
언제나 생일 전 날은 경쾌한 도마 소리내며 음식을 만드는 정성을 다하셨다.
경상도는 팥을 삶고 찰밥을 짓는데 북은 팥과 물을 넣어 붉은 생일 찰밥을 짓는다.
우리 집 생일 미역국은 집과 가까운 자갈치 시장에 들것(바께쓰)을 가지고 나가셔서 그 때 그 때 제 철 생선으로 구이를 하시고
광어나 도다리로 미역국을 끓여 주시곤 하셨는데 비린내는 커녕 단 맛이 감도는 훌륭한 생선 미역국이 되었다.
물론 계절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팥찰밥에 미역국
나물과 큰 생선. 잡채 떡, 식혜, 수정과...튀김등....그 때는 모두가 덴뿌라라고 불렀다.
전이 아닌 기름솥의 튀김~~ 고구마나 수루메(ㅋ말린오징어)야채튀김 등, 엄마는 요리솜씨가 월등히 좋으셨다.
집안의 대소사에 어머니는 언제나 음식에 관한 총괄을 맡으셨다.
당연 누구에게나 생일은 그렇게 성대하게 차리는줄 알고 자랐다.
윗지방으로 이사와서 느껴보니 생일은 그냥 흰 쌀밥에 쇠고기 미역국이었다.
그리고는 집에서 하는 대신 가족 외식이나 선물 또는 돈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그리고 간략한 치킨이나 케이크! (물론 케이크는 요즘 세대들이지만) 지방에 따라 생일을 생각하는 개념이 조금씩 달랐다.
내 생일은 여름이 시작되는 초하!
기억나는 특징음식으로는 막 생산되는 포도, 가지나물, 튀김등이 내 생일 주된 메뉴였다.
엄마가 안계신 지금도 나는 내 생일만 되면 가지나물과 포도 한 두송이는 꼭 사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아니라 그 날 힘들게 나를 낳으셨을 어머니를 기리며 ㅡ
우리 아이들 셋 생일도 우리 어머니 만큼은 아니어도 부지런히 차려주었다.
팥찰밥에 쇠고기 미역국,생선구이 나물 과일 케이크는 매번 빠트리지 않았다.
생일을 꼬박꼬박 잘 챙겨줘야 잘 산다고 말씀하시던 울 어머니의 신조를 어느새 나도 따라하고 있었다.
그랬던 울어머니 나이보다 십여년을 더 오래 살고 있는 나는 애들 다 짝지워 내보내고 나니 우리 두 부부의 생일상 차리기가 힘에 버거워졌다.
애들이 모여드니 아무래도 음식 장만은 모두 내 몫이기 때문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남편의 생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이젠 9가지 나물만 볶아내도 지쳐가는 나이 ㅡ
찰밥에 ㅡ수정과까지 생각해 두었다가 머릿속으로 음식 가짓수를 자꾸만 생략 또 생략 지워내고 있었다.
혼자서 그러고 있는데 때 마침 셋째 ㅡ 며늘애기가 제 집에서 차려보겠다는 게 아닌가! 선뜻 그러라고 허락하였다.
남편은 맞벌이 하느라 고단한 애를 왜 시키느냐며 나를 나무랐지만 ㅡ
하여튼 온 가족 모두 둘러앉아 대보름겸 생신상을 잘 받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조근조근 내 뜻을 이야기했다.
ㅡ 여보,우리가 살믄 얼마나 (함께 건강하게 잘) 살꺼라고 ㅡ
만약에 한 편이 아프거나 잘못되면 생일이 뭔 소용이 있겠소
둘 다 그나마 성성할 때 며느리들이 (질 차리든 못차리든)손수 마련한 생일상을 받아 본다는 거 ㅡ버킷리스트에 넣고 싶었소.
며늘애기들도 둘이 이마 맞대고 전 부치며 손자녀석들 모여 서로 부산하게 뛰어놀고 애들에게 이참에 좋은 추억꺼리도 만들어 주고 얼마나 좋았소?
낮엔 잠시 어머님께도 온 가족이 들렀다 오고 새로 태어난 서현이도 인사시키고 왔고 ㅡ
내 이야기를 가만 듣자니 ㅡ 당신 생각보다는 나았는지 조용하다. 귀밝이술 한 잔에 운전은 내가 하고 집으로 오는길에 달이 훤하게 중천에 솟아 있다.
ㅡ여보, 우리 저 달님보고 얼른 소원이나 빕시다 ㅡ
그렇게 대보름달을 달리는 차안에서 바라보고 둘은 소원을 빌었다.
뭏어보나 마나ㅡ 아마도 둘의 소원은 꼭 같았을 것이다.
집에 오니 미국 딸이이네 가족들, 주말 아침 일찍 아직 떠지지 않는 외손자 손녀는 눈을 비비며 할아버지께 ㅡ생일 축하합니다ㅡ를 불러준다.
내 생일은 아니지만 그저 행복한 밤이다.
ㅡ큰애기야 다가오는 내 생일에는 알쟈? ㅎ ㅡ
우리 한차례 돌고나면 이젠 외식으로 간단하게 치르자꾸나!
수고들 많았다.
한가해진 나는 그 덕에 손자들과 놀기도..또는 우리가족들 좋은 추억의 사진들을 많이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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