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듯한 무거운 하늘이지만
전날부터 그런 날씨이기에 개의치않고 산엘 올랐다.
태양이 없는 산속은 어두운 저녁처럼 컴컴했고
부엉이 울음소리가 한층 가까이 들리는 아침이었다.
축축한 바람이 몰고온 습기엔 물기가 잔뜻 묻어있어
콧잔등에 비 한 방울을 맞은듯 하다.
혹여 내려가기 전 비라도 쏟아지면 어쩌나...

그때...내 속내을 읽기라도 했나?
하늘에서 일제히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반환점을 코앞에 두고...
해태바위가 목전인데 그대로 돌아설 수 없어 전진하니
아주머니 한 분이 소나무 아래 피해서있다.
해태바위에 올라 평소처럼 운동하고 내려오는데
지나가는 비인줄 알았더니 점점 더 굵은 비가 된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 소풍 나왔던 토끼모양
능선을 겅중겅중 뛰여 달리는데 비는 점점 더 세게 내린다.

소나무가 늘어선 능선이라서 피할데도 없는데 마침
잎이 넓은 떡갈나무가 한 그루 서있어 그 밑으로 뛰어들어갔다.
잎이 우거져서 그런지 처마밑에 들어 온듯 제법 아늑햇다.
그새 비는 점점 세게 내려 발아래 물길이 만들어지는데
떡갈나무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일정한 음율을 이루어 제법이다.
내가 오던 길로 한 사람이 뛰어 오다가
내가 서있는 나무밑으로 들어서는게 아닌가?
길은 좁은 외길...

오호~~
얼핏보니 내 나이 또래다
이나이에 또래라 해도 되는진 모르지만
암튼 나와 걸맞은 연배의 남자분이시다.
깊은 산 속, 비는 오는데 청춘남녀는 아니지만
두 남녀가 한 그루의 나무 아래 서있는 모양이라니...
휴~~~ 그런데 왜이리 불편하지?
황순원님의 소설 소나기에서는
어린 소녀 소년이지만 이러지 않았는데...
아무튼 그님과 나는 삼십센치도 안되는 거리에 서있긴 했는데
싸운사람들 처럼 서로 팔장을 낀채
나는 동쪽 하늘을 그사람은 서쪽 하늘을 보고 서있었다.

비가 쉬 끄칠것 같지 않죠?
너무도 숨막힐것 같은 불편함에 이렇게 라도 말을 걸어
숨통을 틔여 볼라 해도 입안에서만 맴돌지
내 이성이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하하~ 그님도 우리집 누구처럼 주변머리라곤 없는듯
골난 사람처럼 뒷짐지고 서있다.
오분도 채 안되는 그 시간이 왜 그리 긴지...
그렇다고 내가 빗속으로 뛰쳐나가면 그사람이 미안해 할것 같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역시 하산 길인듯
두 남녀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우리쪽으로 왔다.

우리가 일행인가 해서 웃으려 하던 그분들도
분위기가 여영 아닌걸 눈치챈듯 말없이 지나간다.
그때 남자분이 때는 그때다 싶었는지 그 일행을 따라 나선다.
아~ 자유롭다~
혼자 남아 우중의 산속을 더 감상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멎지 않을 것 같은 기세에
할수없이 나도 빗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매일 아침 산책하듯 산에 오르니 옷도 등산복은 커녕
간단한 츄리닝 바지에 긴팔 티셔츠, 머리에 선캡하나 쓰고 나왔다.
후드달린 잠바라도 걸치고 나올껄...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

비를 맞고 걸어가면 초라해보여서 싫다고 했었는데
산중엔 초라하게 보일 사람도 없으니...좋구나!
나무도, 우거진 숲도 의연하게 비를 맞고 있는데
어릴적 비오는 거리를 걸을때처럼
나도 이참에 맘껏 비나 맞아보자!
비 내리는 산속을 완상하며 걷는 기분도 좋다!
키큰 아카시아가 우거진 숲은 밀림처럼 음침하다.
숲을 드려다보니 산딸기가 제법 익었다.
이 비가 그치면 내일부터 딸기를 따야겠다고 맘먹는다.
늘 몇사람씩 운동을 하던 체력장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아카시아 숲을 지나 개나리 울타리가 늘어선
좁다란 오솔길을 지나는데
하늘이 열려 올려다보니
언제 비를 내렸느냐는듯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조금만 가면 주택가로 내려 서는데
누구 약올리나?
차라리 이때쯤 비나 퍽퍽 퍼붓지...
내 몸은 젖을대로 젖어 물에빠진 생쥐처럼 됐는데
하늘은 용용~~ 죽겠지? 하고있다...

2002 . 6 . 20 ... 풍란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