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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님의 <국화 옆에서>는 한 송이 국화가 피어나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있어야 했던 아픔과 어려움 들을 통해 성숙한 삶의 깊은 뜻을 노래하고 있다. 난 이 시를 무척 좋아한다. 이 시에는 노력해서 얻은 자의 피와 땀과 그리고 눈물이 내재되어 있어 난 늘 내 삶의 지표로 삼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고통 뒤의 성숙한 삶을 떠 올려 보았다. 북풍 한설 몰아치고 대지가 꽁꽁 얼어붙은 날에도 난 장갑을 끼고 귀를 막은 채 아스팔트 위를 달리고 또 달렸다. 마치 이것이 내 삶의 전부인양 말이다. 온 산하가 진달래. 개나리로 만발한 봄날에도 그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이제 아스팔트 가에는 코스모스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그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서 내 삶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난 비지땀을 흘렸던 것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말이다.
각설하고 작년 조선일보 마라톤대회에서 동료교사들이 골인하는 것을 격려하기 위해 종합운동장에서 기다리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결승점에 골인하며 그들만이 느끼는 환희와 감격에 난 많은 호기심과 매력을 느꼈었다. 그래! 나도 한번 해보는 거야! 운동이라면 나도 자신이 있지.... 그리고 인내심과 끈기의 꽃이라는 마라톤!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매력 있는 운동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완주해보자고 굳은 결심을 했다.
마음의 결심을 굳게 한 바로 다음날부터 헬스장에 등록하여 꾸준히 기초체력을 다져왔다. 주로 지구력과 하체의 힘을 기르기 위한 운동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달리기. 자전거 타기. 무거운 것 들어 올리기. 줄넘기 등 오래 달리는 데 필수적인 것은 뭐든 가리지 않고 했다.
이 훈련은 무더운 7월까지도 계속되었다. 체력훈련과 병행하여 실전감각을 익히기 위해서 춘천에서 열리는 각종 마라톤대회에도 참여했다. 충주에서 열렸던 국제 마라톤대회에도 참여하여 많은 경험을 쌓기도 하였다.
8월부터 본격적인 달리기 훈련에 들어갔다. 3일 간격으로 20Km를 꾸준히 달렸다. 9월부터는 마라톤 동호회 회원과 합동으로 주말마다 실제 마라톤 코스를 뛰어 실전감각을 익히기도 했다.
끝없이 펼쳐진 아스팔트 위를 달리면서 내 인생을 내 삶을 반추해봤다. 좌절과 울분과 슬픔으로 가득 찬 내 삶의 긴 여정! 난 내 스스로 내 인생을 못 터진 Dynamite라고 생각해본다. 난 내 젊음의 열정을 공부하는 데 다 바쳐왔었다. 내 인생에서 공부를 빼놓으면 아무것도 한 게 없을 정도이다. 대학원 최고학위 과정까지 수료하고 우리나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서울대학교에서 발간된 학술지에 10편 이상의 논문을 수록했다. 그러나 내 인생은 내 삶은 달라지지 안 했다. 교직에서도 승진의 마지막 열차가 도전 한번 못해보고 이미 오래 전에 그렇게 허무하게 내 곁을 떠나가고 말았다. 초라한 시골 훈장으로 끝날 내 삶! 그저 마음이 슬프고 외로울 땐 한없이 달려야만 잊을 수 있다.
사랑하는 마누라여! 그리고 나의 딸, 아들아! 너희가 아느냐? 마지막 잎새처럼 남은 처절한 그 희망을..... 아스팔트 위를 달리면서 내 삶의 좌절과 울분을 푸른 저 하늘에 날릴 수 있어 적어도 이 순간만은 난 늘 행복함을 느낀다.
부지런한 세월은 또 그렇게 흘러 10월20일 조선일보 마라톤 D데이의 날이 밝았다. 가벼운 흥분 탓인지 새벽에 잠이 깨었다. 마누라가 해준 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 종합운동장 입구의 만남의 광장에는 벌써 동료 교사 들이 기다리고 계셨다. 기념촬영을 하고 서로 선전을 다짐하며 강고 파이팅! 강고 파이팅!을 외쳤다. 그래도 우리는 강원고등학교를 대표해서 출전하는 것이다. 1600여명의 건각들이 질서정연하게 모여 11시 5분부터 출발이 이루어졌다. 기록 순에 의하여 A그룹에서 K그룹까지 시차를 두고 출발하였다.
나는 I그룹에 속해 11시 20분에 출발점을 밟고 지나갔다. 이제 42.195Km , 약 105리의 긴 레이스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평소에 연습하던 코스라 오버 페이스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을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5Km를 지나면 왼쪽은 삼악산 오른쪽은 의암호이다. 산과 호수가 어우러져 정말 멋있는 풍경을 자아낸다. 벌써 붉은 옷으로 갈아입은 아름다운 삼악산. 아름다운 강변 길을 만끽하며 수없이 많은 군중 속에 파묻혀 내가 가야할 길을 달린다.
20Km 지점까지 달리는데 2시간 40분이 소요되었다. 평소의 연습하던 것과 오차 범위 내에 있는 시간이었으니 별 무리 없이 잘 달려온 것이다. 20Km지점을 지나 춘천댐을 눈앞에 두고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잠시 뛰는 것을 멈추고 무릎과 발목에 물파스를 뿌리고 맨소래담으로 근육 맛사지를 하고 다리 근육통을 푸는 운동을 5분간 계속했다.
40-50m를 걷다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춘천댐을 지나 28Km지점에 이르니 1학년의 보형이. 유석이. 동명이가 우리 교사들을 응원하기 위해 여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와 몇 시간을 기다린 것이다. 동명이 녀석은 카메라까지 준비하여 포즈까지 취하라고 권한다. 기념사진을 찍는다고..........
녀석들이 준비한 바나나와 이온음료는 배고픔과 탈수로 기진맥진해 있는 나에게 커다란 활력소를 제공했다. 짜식들! 그래도 남자라고, 의리는 있어 가지고.......... 눈물겹도록 고마운 녀석들의 정성이 담긴 바나나를 먹으면서 30Km지점을 향해서 달리고 또 달렸다. 30km지점에 다달았을 때의 소요시간은 4시간 8분이었다. 연습 때보다 8분 정도 늦은 시간이었다. 앞으로 12.195Km가 남았으니 1시간 30분을 더 뛰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정신력으로 뛰어야 한다. 체력이 다 소진되었고 근육통도 더욱 심해져 간다.
너무 힘이 들어 땅만 보고 달리고 또 달려 37Km지점까지 왔다. 소양2교를 지나는 데 왼쪽 허벅지의 근육통의 예비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근육이 서서히 뭉쳐오며 통증이 전달된다. 이건 예비 신호이다. 나에게 경각심을 주는 신호로 더 이상 뛰었다간 통증에 쓰러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된다. 달리기를 멈추고 다시 왼쪽 허벅지와 무릎의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운동을 5분간 지속했다. 길옆에서 맨소래담으로 근육을 푸는 사람한테 달려가 맨소래담을 손바닥 가득히 담아 양쪽 허벅지에 바르고 문질렀다.
아픈 다리를 이끌며 참으로 많은 상념에 쌓였다. 고2때 뺑소니차량에 치여 두 달 동안 생과 사를 오락가락 하였던 딸! 마음씨 착하고 유난히 공부를 잘하여 이 아빠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잇게 하려고 하였는데........ 부산으로 서울로 병원을 옮기며, 우리 딸 살려달라고 애원과 기도와 당부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다. 더 이상 흘릴 눈물도 말라서 없었다. 아침에 밝은 태양이 뜨는 게 싫었고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신>에게 따지고 싶었다.
지금까지 난 정말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학교. 마누라. 가정. 딸. 아들> 내가 아는 것의 전부다. 우리 부부 같은 학교에서 만나 학생들 몰래 연애하여 결혼하고 같은 학교에서 4년간 근무하고 , 지금은 학원에서 애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신이여!> 우린 정말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여년 전 우리 부부 자동차를 타고 가다 10미터의 절벽으로 떨어졌지만 우린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건 어린애들을 잘 키우라는 당신의 자비가 아니었던가요? 그런 당신께서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주마등처럼 스치는 내 인생의 여러 환영들.......
저만치 종합운동장의 스탠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 42.195Km여! 105리의 긴 여정이여! 난 5시간 40분에 걸쳐 그 긴 길을 달려 이제 결승점에 다달은 것이었다. 눈에선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고 또 흘렀다. 난 슬플 땐 혼자 산에 올라가 운다. 눈물아! 쏟아지렴, 장마의 소나기처럼..... 기적처럼 두발로 병원 문을 걸어 나왔던 딸을 보았을 때도 오늘처럼 눈물이 이렇게 쏟아졌다.
사랑하는 나의 딸. 아들아! 비록 이 아빠가 성공한 삶은 아닐지라도 너희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거라는 것을 너희들은 꼭 느껴주길 바란다. 너희들이 그렇게 느낄 수만 있어도 이 아빠의 삶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닐 것이다. <내일엔 어김없이 태양이 또 뜨듯 난 또 아스팔트 위를 숙명처럼 그렇게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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