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며
1.
봄날
언젠가 병원 정기진료후
바람 세찬
바닷가에 서 있었습니다
달려오고
달아나는
하얀 포말들에서
겨울의 슬픈 추억들을 보았습니다
차라리
밤이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눈으로 들어오는 외물(外物)들을 물리치고
그저 소리로만 느끼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겨울입니다
겨울
2.
겨울은
내 사고(思考)가 멈추어
백치가 되는 계절입니다
봄에는
지난 겨울과
다가올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생각하고
여름엔
가을과 겨울을 생각하고
가을엔
지금의 가을과
머지 않아 다가올 겨울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겨울엔 그렇지 않습니다
오로지 내겐 겨울만 있지
다른 계절은 전혀 나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겨울엔
가을과는 다른 성격의
문제아가 되고 맙니다
3.
시험감독 하면서
내내 내 마음의 시선은
산으로 나무로 향하고 있습니다
정작
내 눈길속에 있어야할
아이들은 없습니다
그것은
슬픔입니다
4.
어제밤
덤불짚단 허물어지듯
내 몸의 열에 의해
무너지며
가슴속에 떠오르던 이름과 얼굴
그것은 주님 당신이였습니다
사랑합니다 이말과 함께
梁 純貞
상실
2002. 12. 8. 2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