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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도 한 10년도 더 전 이야긴데
어느 날.. 미장원에서 그 집 아이들이 떡 주무르듯 하다가
거의 죽음 직전의 강아지를 한 마리 얻어왔다.
강아지는 작은 삽살개 종류로 털이 까맸다.
암놈 이였는데.. 인순이라 이름을 짓고 그냥..
마당 개로 손색없이 영리하고 예쁘게 잘 자라 주었다.

맨 처음 새끼를 한 마리 낳고는 실패를 하고
두 번째도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실패했다.
그 나머지 한 마리를 얼마나 애지중지 기르든지..
눈물겨웠다.
인순이는 마치 자기 생이 새끼를 기르는 게 전업인양 열심을 내었고
우린 그 게 너무 보기 좋았고 인순이가 그리 사랑하는 새끼들을 마구 아무에게나 내어 줄 수가
도저히 없었다.

우리 인순이가 배란기가 되면...
온 동네 수캐들이 다 몰려들었고 인순이는 그 것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다.
거의 일주일을 대문 앞에 자면서 인순이의 눈길만 기다리는 놈도 잇었다.
너무 지저분한 방앗간집 개가 있었는데..
인순이는 그놈이 우리 집 주변을 배회하는 것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놈은 전봇대 뒤에 숨어서 마치 흠모하는 여인을 훔쳐보듯 하였는데...
간혹 바깥을 쓰윽 둘러보는 인순이가 대문을 나서면...
대문 앞에 죽은 듯 엎디어 있던 놈이 벌떡 일어서고 길에 있던 놈들은 인순이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는데..
인순이는 까짓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다.
전봇대 뒤에 숨어 있는 그 넘을 저 멀리 쫓아내는 일이 중요했다.

자기 미모에 자기위신에 자기 체면에 자존심에 금이 가는 거지 녀석을 멀리 내 쫓고서야
비로소 돌아오는 것이다.

대문 앞에 엎디어 있는 놈은 그대로 두면서...
어느 날... 무슨 소리가 나기에 마당에 나가보니...
뭔가 휙... 지나간다.
"어 이게 뭐야? 뒷마당으로 가보니... 세상에나 눈이 부시도록 희고 깨끗한 지보다는 덩치도 큰..
순종 스피츠가 아닌가.

"야~~" 고함을 지르며 막대길 하나 주워 들고는 쫓아내려는데...
하이고 우리 인순이 하는 꼴 좀 보소 아마도 엉덩이에 뿔 난 딸이 있으면 그럴까?
날 떠억 가리며 막아서는 게 아닌가? 기가 막힌 애절한 눈빛으로

"엄마~~ 제발 쫓아내지만 말아주세요~
엄마...내가 사랑한단 말이에요 제발~~"

그렇게 우리 인순이는 한 일주일을 걔랑 동거에 들어갔다.
어느 집 개인지 걱정도 되었지만 지네 둘이 좋아 죽고 못 산다는데 어쩌랴
자기 집에도 가지 않고 함께... 지내기를...

그 사랑의 징표들이 예쁘게 태어났다.
흰색 검은 색 알로꽁 달로꽁한...
바둑이무늬의 삽사리? 스피츠?

아가들을 키울 때... 어쩌다 보면..
애비가 문전에서 어른거리다 휙..사라지곤 하였다.
나만 보면 괜히 겁을 먹는다.
아니면 내가 마당으로 들여보내 개 사위 대접을 톡톡히 할텐데도 말이다.

그 새끼가 자라고 또 한 배를 낳고 또 한 배를 낳고 제일 많을 때는 무려 열댓 마리까지
마당이 완전 개판이었다.

어느 날...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찻길이 막힌다.
응? 사고가 났나 웬일이지? 막히는 곳이 아닌데... 이런?
차창을 열고 내다 본 나는 아연실색했다.
아마도 "저 개가 모두 내 개요" 했다가는 몰매 맞을 형국이다.

그 열댓 마리가 일렬로 길을 건너는데... 그 간격을 맞추어...
줄줄이 건너가는데... 묘한 광경에 차가 지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 마리 당... 1m가량의 간격을 두고 줄줄이 행진을 하는데....
계산을 해보자 15m가 느릿느릿...
바쁜 것 하나 없이 보무도 당당하게 강아지들은 엄마를 믿고
엄마는 제 새끼 많은 것을 위시라도 하는 양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대로변 퍼레이드를 하는 게 아닌가?

우리 집 개들은 동네 명물이 되어갔다.
집 부근 초등학교 아이들이 우리 집 강아지들을 보러와서 대문께 에다 늘... 과자를 디밀어 주곤 했다.

모두들...어디서 알았는지 "인순아~" 라고 이름을 불렀다.

인순이는 그래서 심심하거나 하면.. 학교 운동장으로 쳐들어갔고
엉겁결에 따라 붙은 인순이 아들딸들은 엄마의 그 스타덤에 자기네들도 덩달아 스타가 되었다.
언제나 그런 엄마를 존경해 마지않았다.

배란기만 되면... 늘 찾아오던 그 녀석
우리 인순이 보다,
때만 되면 내가 더 먼저 목을 빼고 멋진녀석을 기다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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