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천경자



      도사
      글/jasmine


      술 酒자
      주도사.


      내가 아는 무속인.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무지하게 술을 마시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미국에 처음 와서부터 그 여자의 술 마시는 모습만 보았으니....


      그러던 어느 날,
      그 여자에게 신이 내렸습니다.
      그래서, 한국 계룡산에 가서 신을 받아왔다고...
      그래서, 그녀의 이름이 '주도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찾아와서, 온 식구가 점을 보았읍니다.
      마지막으로 제 차례가 되었고...
      그녀는 시누이나 신랑에게 잘하라며 소리를 쳤습니다.
      그녀의 눈에 어리는 물기를 저는 보았습니다.


      다음날,
      저는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말없이 30분쯤 서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가 먼저, 저에게 돌아가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한마디만 해달라고 했고.
      그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덩달아 한 30분쯤 울었습니다.


      자기가 처음 신이 내릴 때 왜 자기를 아는 척 하지 않았냐고....
      왜 지금 와서 자기를 찾았냐고...
      나에게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는 것 알면서, 왜 왔냐고..
      우리식구들에게 총 맞아 죽고 싶지 않다고...


      한글을 몰라, 계룡산에서 가져온 쪽지를 읽지를 못했던 그녀.
      저에게 그걸 읽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외우고.
      냉장고에서 포도송이를 꺼내어, 크리넥스와 함께 비닐봉지에 담아
      저에게 주며 가라고 했습니다.
      네 냉장고에 먹을 것이 가득하면 무엇하냐, 네가 먹을 것이 없는 것을.
      네가 좋아하는 포도 먹고, 크리넥스로 눈물 닦으라고...
      복채 20불을 주니 안 받고...
      그렇게 저는 한시간 넘게,
      그녀와 울다...


      그 다음부터,
      그녀는, 식당에 와서 꼭 2인분을 시켜 저를 먹이고,
      Tip을 후하게 손에 쥐어주며, 어깨를 두드려 주고 가곤 했습니다.
      한가한 시간을 일부러 택해서, 식사시간도 아닌 시간에,
      나를 생각해서, 배보다 배꼽이 크게 시리, 손에 쥐어주고 가던
      20불 짜리...


      미국에 와서 그렇게 저는 그녀에게 20불 이상의 빚을 지었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신께 기도를 드리죠.
      나는 하나님께,
      그녀는 그녀의 신께.
      우리의 관계는 지금까지 아무도 모른답니다.(최초 공개)


      이제,
      Tacoma에 가면,
      그녀를 찾아가 그전의 복채를 주어야겠습니다.
      이제는, 그녀도 복채를 받지 않을까....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내 어려웠던 시절의 위안이었는데...
      이제서, 생각이 나는걸 보면,
      저도 이제 살만해진 모양입니다.


      8년이란 세월이 흘러 그녀가 저를 알아볼지도 의문이군요.
      언젠가,
      작은 선물이라도 들고 찾아 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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