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의
목마
      글 / 남도사랑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카산드라는 예언능력을 지닌 대표적인 선지자다.


    스카만드로스강과 시모이스강이 흐르는 평야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
    (근대에 와서는 히살리크라고 불리었다)에 BC4000년 경 트로이 또는 트로야라고
    불리는 대 제국이 있었다.


    바다에서 일정한 거리에 있어 바다로부터의 습격을 받을 위험은 적었으나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은, 에게해(海)와 흑해(黑海)를 잇는 헬레스폰투스
    (다르다넬스해협)의 입구에 해당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어, 예로부터 번영을
    누려 왔다.


    이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와 헤카메의 딸인 카산드라는 오디세우스의 계략으로
    그리스 군이 남겨둔 거대한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으면 트로이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자 결국 트로이는 목마에서 나온 군대에
    의해 멸망되었다.


    2003년 2월 25일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새롭게 출범하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에 노무현은 당당히 취임했으며 그의 취임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사가
    쓰여질 것으로 우리 모두는 축복의 박수를 보냈었다.


    이제 취임 4개월 여 남짓 그와 그의 정부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 같다.

    한 사람의 예언자가 아니라 수많은 카산드라의 예언을 물리치고 멋스럽게 당당히
    공포한 특검법에 의하여 설치된 대북 송금에 관한 특검의 결과가 발표되자 온
    나라는 벌집을 쑤신 듯이 시끄럽지만 그는 이를 수습할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애초에 특검을 주장했던 세력들은 더 강화된 특검법을 새로이 제정하여 국회에
    제출하면서 으름장을 놓고 있으며, 남북이 서로 대화와 타협을 하면서 평화공존을
    이루는 것이 이 땅을 전쟁의 참화로부터 구할 수 있다고 믿었던 세력들은
    특검의 수사결과 발표를 보고 그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6월 15일 한반도의 전 민중을 감격의 환희에 떨게 했던 저
    남북정상회담이 돈을 주고 산 것이라는 특검의 판단에 이제 노무현은 대답을
    해야한다.


    그 돈이 1억불이던 1원이던 만약 이 특검의 발표로 남북관계가
    다시 예전의 북괴 또는 남조선 괴뢰정부로 되돌아간다면 그 책임은 이 특검법을
    수용한 노무현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지만, 이를 빌미로 더 강경해진 미국이
    북한을 무력공격하고 북한은 남쪽을 폭격하여 이 땅이 전쟁의 참화 속으로
    내 몰린다면 노무현은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기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가봉 공화국을 아는가?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면적 26만 평방키로미터의 작은 땅에 약 120만 명 정도가
    사는 국민소득 3000달러정도의 소국인 이 가봉공화국의 봉고대통령이 지금 기억도
    가물가물한 박정희 정권 시절에 우리나라를 국빈으로 방문했던 사실을 기억하는가?
    물론 20년이 훨씬 지났으니 당시의 국민소득은 아마 500달러 내외나 되었을까?


    그러나 이 봉고 대통령을 환영하러 우리의 어린 학생들은 태극기와 처음 보는
    가봉공화국 국기를 양손에 나눠들고 연도마다 동원되었었다. 비동맹 외교라는
    북한과의 외교전쟁을 치르던 중이라서 지구상의 어떤 나라라도 우리와 외교관계를
    맺어주면 감지덕지 하던 시절의 얘기를 지금 새삼 들추는 것은 당시의 외교와
    정상회담들에 지금도 밝혀지지 않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갔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함이다.


    노태우의 북방외교 시절에 구 소련에 보낸 30억불의 차관 중 6억4천만달러를
    탕감해 줬다는 사실에 대해선 어느 정치인이나 언론 심지어 시민단체 마저도
    문제를 삼지 않고, 남북관계에서 냉탕과 온탕을 들락거렸던 김영삼 정부시절인
    199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남북이 비밀회담으로 북한에 남한 쌀 40만 톤을 지원하기로
    깜짝쇼를 했던 사실들은 인도적 지원이란 이름아래 당시의 전 언론을 통해서
    홍보되었으나 누구 하나 그 절차적 정당성에 대하여 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송두환 특검은 정부 지원금 1억 달러가 절차적 정당성과 투명성이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이 돈의 성격이 남북정상회담의 대가성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발표하였고
    모든 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하면서도 임동원의 해명은 귀퉁이를 채우는 형태로
    이제 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6.15선언은 돈을 주고 산 것으로 매도되어 버린
    것이다.

    트로이 제국은 카산드라의 예언을 무시하고 목마를 성안으로 들이는 우를 범해서
    그 목마에서 나온 군대에 의하여 멸망되었다.


    노무현은 특검이 이 나라의 장래에 엄청난 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여러 예언들을 무시하고 그 절차적 불법성은 따져봐야 한다는 이유로 수용
    공포하였으나 기실은 반 김대중 여론이 팽배했던 보수주의자들과 영남정서를
    달래서 친 노무현화로 돌리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특검이 끝난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한나라당을 필두로 이 땅의 메이져 언론인 조중동을 비롯하여 영남의 국민정서까지
    친 노무현으로 여론이 돌아섰으며 노무현의 참여정부는 출범시의 약체정부를
    탈피해가고 있는가? 미안하게도 아주 극단적인 표현을 하자면 이 정부는 벌써
    레임덕 현상에 빠져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95%로 지지를 보냈던 호남 민심은 속심은 감췄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도
    50% 내외로 절반의 지지층이 떨어져 나갔고 친 노무현 성향이던 노동자 농민,
    그리고 도시 서민들은 앞길을 모르게 추락하는 경제난에 생업에 허덕이면서
    등을 돌리고 있고, 특검을 주장하고 동조했던 친 한나라당 세력들은 더욱 기세가
    등등하게 똘똘 뭉쳐서 내년 총선에서 과반수 확보를 장담하며 내각제로의 개헌을
    야심만만하게 추진하고 있지 않은가?


    이 땅의 목마였던 대북 송금에 관한 특검은 이제 끝났다. 그러나 취임 4개월에
    5년 임기의 대통령이 레임덕현상에 빠져든 이 상황을 자칭 정치 9단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이 어떻게 수습해 갈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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