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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형님 한 분이 있었소!(1)




    군복을 입은 형님과 C 레이션


    나는,
    6남매의 막둥이로 이 세상에 태어났단다.
    맨 위에 형님이고 중간에 누님들이 넷이었고
    막내로 내가 태어났으니 동기간들의 사랑은
    무던하게 많이 받았을 터였다.


    나에게 형님과의 첫 번째 기억은
    군복을 입은 형님의 모습이었다.
    형님은 무척 늦게 군대를 갔었는데
    그때만 해도 논산 훈련소에 훈련병들의
    면회가 허용되던 시절이라 시골의 부모님들은
    일주일 내내 일을 하고는 주말이면 온갖
    음식을 장만해서 이고 지고 훈련받느라고
    고생을 하는 아들을 찾아갔었다.


    그 시절에는 논산훈련소가 참으로 무서운 곳이었다.
    여름철에 날씨가 무더우면 하루에도 훈련병들이
    몇 명씩 죽어가던 끔찍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날씨가 더울 때면 오늘은 몇 명이나 죽었을까
    하는 것이훈련소 주변 사람들의 화젯거리였다.
    어떤 날에는 무려 일곱 명이나 죽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기는 그럴 수밖에...
    어린 내가 보아도 누런 황토 흙의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신병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거지보다도 더 흉했었다.


    피부는 새까맣게 타고 굶주려 바싹 마른 말라깽이에다 훈련복은 너덜너덜 다 떨어져
    보기에도 상거지 같았으니 오늘날의 민주화된 군대모습과는 너무나 차이가 있었다.
    그러니...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님의 마음이 어찌 편안할 소냐 !!
    나의 어머님도 큰아들을 뒤늦게 군대에 보내 놓고는 매주일 면회를 갔었고
    그 중에서도 내가 몇 번쯤 따라 간 기억이 있다.


    면회 가는 좁은 길, 포장도 되지 않아서 먼지가 마구 일어나는 도로로 군용 트럭이
    마구 달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고...
    또, 어디인지 지금은 잊어 버렸지만 길가의 흙벽돌집에서 고향마을 출신의
    어느 가족이 살고 있었다는데, 어찌나 굶었는지 지나가던 군인이 보고는
    하도 불쌍해서 짬밥을 한 삽 퍼주었다는데...


    그 가족들... 며칠이나 굶었던지 넘 배고픈 김에 허겁지겁 짬밥을 퍼먹은 까닭에
    온 가족이 먹은 밥으로 인해 급체를 해서 이번에는 진짜로 죽을 뻔했단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시절이 있었소....훌쩍...훌쩍...


    이야기를 바꾸어,
    그 형님이 어느 날 휴가를 나왔다.
    군복을 입고는 커다란 자루 백을 메고 온 형님이 무척 멋있게 보였다.
    더구나,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보는 앞에서 자루 백을 열고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낼 때는 마치 형님이 마술사라도 된 것 같아 보였다.


    기억에 남는 것은 C 레이선 !!!
    캔을 따고 한 조각씩 나누어주던 형님의 그 거룩한 모습 ... !!1



    나에게는 형님 한 분이 있었소 ! (2)


    형님이 멋진 스케이트를 만들어 주다.



    시골 아이들은 겨울에 스케이트를 타기를 좋아했다.
    내가 일 곱살 때였던가... 그 때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앉아서 타는
    스케이트도 없었고 내가 직접 만들 실력도, 연장도, 자재도 없었다.
    나는 좀더 큰 아이들이 들고 다니는 스케이트가 한없이 부러웠다.
    흥...! 좋아 ! 형님한테 졸라 봐야지...

    - 형아 ! 나 스케이트 하나 만들어 줘...
    - 얘는... 무슨...
    하고는 형님은 무심결에 내가 형님한테 하는 최초의 부탁...
    그 어렵게 한 부탁을 거절하고 말았다.
    - 엥 ?


    나는 너무나 충격이었다.
    아니 이 귀여운 막내의 청을 무지막지하게 거절을 하다니...??
    - 엥 ? 엉 ? 우와 !! 엉 엉 엉 엉 엉 !!!
    나는 너무나 서러워서 엉엉엉 대성통곡을 하면서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 어 ?? 어럽쇼 ??
    형님은 그만 나의 날카로운 공격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어 !!! 야 !!! 태종아 ! 가만히 있어라 !!!


    흠... 그러면 그렇지... 내가 얼마나 아이큐가 높은데...
    결국 형님은 그날로 아주 멋진, 우리동네에서 제일 멋진 스케이트를 만들어서
    귀여운 막내의 손에 들려주었다.
    - 봐라 ! 얘들아 ! 내 스케이트가 너네들 것보다 훨씬 멋있다 !
    나는 스케이트를 타는 것보다도 아주 매끈하게 생긴 스케이트를 들고 다니면서
    자랑하는 것이 더 즐거웠다.


    그런데, 얼음판에 가서 그 스케이트를 타고는 씽씽씽 마구 달린다가
    방향을 조절하는 솜씨가 서툴러서, 다시 말해 운전실력이 없어서 !!!
    마구 달려서는 그만 방향을 못 잡고 논둑에 얼굴을 들이 박아버렸다 !!

    어이쿠 !! 눈에서 열불이 나고 대낮인데도 눈에는 별이 번쩍 번쩍거렸다.
    당연히 코피는 터져 줄줄 흐르고... !!
    지금 생각해도 아이쿠 우스워라... ㅎㅎㅎ
    나는 그 스케이트를 애지중지 하면서 3년도 더 사용했다.



    나에게는 형님 한 분이 있었소! (5)


    기울어 가는 가문의 안타까운 형님의 모습!!



    형님은 군대 시절에 늦장가를 들었고, 그 무렵 우리 집 경제는 형편이 없었다.
    부친께서 병환 중이셨고, 종답을 두고 집안끼리 송사가 벌어졌고
    또 형님이 장가드시는 비용 등등하여 집안 경제는 갑자기 기울기 시작하였다.


    본래 호방하신 성품의 부친께서는 형님과 승부수를 띄웠다.

    - 야 ! 시종아(형님 이름)! 너도 알다시피 나는 이미 병들어 기운이 없고
    이 쌀 30가마니가 우리 집 마지막 재산이다. 네가 큰아들이니
    이 쌀 30가마니를 가지고 장사를 하든지 논 선작을 사서 농사를 짓던지
    네 마음대로 해서 집안을 이끌고 가거라 !!


    어 !! 어버님 이것이 무슨 말씀이오니까 ?
    참으로 30세가 안된 시골의 청년 형님께는 날벼락일 것이었다.
    군대는 겨우 갔다왔지만 초등 학교 2학년 다니다가 중퇴하고 세상 경험도
    아무 것이 없는 형님에게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 형수님, 조카딸, 누나 셋,
    그리고 나 이렇게 무려 아홉 가족의 가장을 일거에 물려받았으니...

    시골집 한 채 밖에는 재산은 아무 것도 없고...
    - ....... ...... 몇 일간이나 형님 묵묵 부답.....


    형님은 장사의 장자도 모르던 분이었으니 무슨 도리가 있었으리요.
    부친께서 물려주신 쌀 30가마니로 가족들 1연치 식량을 남겨두고는
    나머지 쌀 20여 가마니로 고향에서 논산 읍내 가는 길옆... 그러니까... 정확하게
    논산 관촉사(동양 최대의 석불로 유명한) 앞들에서 선작 12 마지기를 사서
    일년 내내 뼈빠지도록 농사를 지었으나...


    겨우 본전을 찾기에도 부족했고 에라 ! 도시로 가자 !
    그래서 당시 경기도 김포군 공항면 (지금 서울시 강서구 공항동)에 있는
    외가의 친척 되는 분이 경영하는 안전제약소(당시로서는 꽤 큰 회사였는데) 에
    취직을 하여 고향을 등지고 탈 시골에 성공하였다.




    나에게는 형님 한 분이 있었소! (마지막회)


    형님의 마지막 편지 한 장


    내가 고리에서 근무하던 어느 겨울날, 뜻하지 아니한 형님의 편지가 날아왔다.
    참으로 처음 받아보는 형님의 편지요, 그 내용이 또한 너무 간절하였다.

    - 동생, 내가 그 동안 술을 많이 마시고 집안살림도 돌보지 못해 동생에게 미안하네.
    동생도 어머니 모시고 고생이 많겠으나 내가 그 동안 밀린 막걸리 값이 20만원인데
    좀 갚을 수 있도록 도와주게나.
    그러면 내가 이제부터는 마음을 잡고 바르게 살겠네....


    아 ... !! 우리형님이 마음을 잡으신 단다 !!
    나는 너무 반갑고 기뻐서 뛸 것만 같았다.
    그 때가 음력설 보름 전쯤이었으니 설날 고향에 가서 20만원 막걸리 값 갚아 드려야지..!!

    그런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
    편지를 받고서는 불과 며칠이 안 된 어느 일요일 오후 한가한 시간에...
    따르릉 ! 따르릉 ! 요란스럽게 전화벨이 울렸다.

    - 여보세요 ! 네? 아니, 뭐라고요 !!??
    전화소리에 예민하신 어머님이 먼저 눈치를 채시고는..
    - 얘 ! 무슨 전화니 ? 엉 ! 무슨 전화냐 ??


    전화에서는 어머님께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으나
    상황이 어떻게 숨길 처지가 아니었다.
    - 형님이...
    - 뭐 ! 얘야 ! 빨리 가자 !


    오히려 앞장을 서시는 어머님을 떼어둘 방안도 없어서 급히 동네 약국에 가서는
    현금 70만원을 빌려 가지고는 택시를 불렀다.
    경상도 고리에서 충남 연무읍 까지...
    나, 어머니, 아내, 아들 둘을 모두 태우고서 밤 택시는 고속도로의 공기를 갈랐다.
    나는 어떻게 형님의 장례를 치렀는지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형님의 돌아가신 얼굴 모습이 무척 평안해 보였다는 것과
    마지막 가시는 상여를 붙잡고 얼마나 슬프게 울었는지 모른다.

    마치 내가 일 곱살 때 형님에게 스케이트를 만들어 달라고 졸랐다가
    처음에는 거절을 당하고 엉엉 울었듯이,
    - 엉 엉 엉 ! 엉 엉 엉 !
    내가 너무 슬프게 우는 바람에 다른 가족들은 미쳐 울지도 못했단다.


    나는 부친 산소 앞에 형님을 모시고 그 위에 차가운 흙이 덮일 때
    다시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는 울어댔다.
    - 엉 엉 엉 ! 엉 엉 엉 !
    이 미련한 동생은 그것도 모르고 형님이 마음을 잡는다고 좋아하다가
    살아생전 단 하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다니...


    나는 그것이 안타까웠고, 지금도 형님께 한없이 미안하다.
    장례를 마치고 나는 동네에 있는 구멍가게 세고의 외상값을 모두 정리하였다.
    형님 ! 먼길을 편안히 가소 !


    미련한 동생/잠실 베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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