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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터의 추억과 그 즐거움


    개여울


    지금도 길다란 줄에 빨래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을 보면 하얀 와이셔츠와
    아기의 기저귀가 바람에 나부끼는 여자의 작은 행복을 그린 시를 건네 준
    한 사람이 생각난다.


    그것이 프로포즈였다고 들은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지만
    빨랫줄에 널려 있는 옷가지들을 보면 시속에 풍경이 주는 하얀 평화스런 모습과
    작은 행복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잘하는 중에 하나가 빨래하는 거다.
    며칠 것을 한꺼번에 모아두었다가 하는 게 아닌 아침저녁과 수시로 하는 편이다.
    "당신 빨래하는 게 재미있어?
    "가끔 주머니 속에 있는 것까지 세탁해서 속상할 때도 있지만 빨래는 잘해..."
    남편의 말이다.


    빨래가 조금이라도 쌓여있는 것을 보면 답답함을 느껴 여행에서 늦게 돌아왔어도
    빨래는 해놓고 자야 속이 시원하다. 한사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어렸을 때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를 알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빨래를 잘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 집 앞에 냇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숫대야에 빨래를 담아 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힘차게 두드리다가
    흐리는 물에 이리 저리 헹구어서 손으로 비틀어 짜면 떨어지는 물방울의
    촉감에 마음까지 게운 해진다.


    옛날 어부들이 오랫동안 바위에서 생활하게 되면 옷을 벗어서 배 끝 모서리에
    매달아놓는다 한다. 그러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이 물살에 다 빨아지고
    아마 그런 원리로 세탁기가 나왔는지도 모른다.


    맑은 하늘아래 콧노래를 부르며 빨래를 할 때면 작은 송사리 떼들이 지나가다
    발을 간질여 놀라기도 하고, 물풀이 떠내려오다가 발에 걸려 미끄러지기도
    하며 건너편에 아는 친구라도 보이면 "이제 온 거야 ? 하며 안부를 물었던
    그런 빨래터였다 .


    그때 비누는 양잿물로 만든 시꺼먼 비누, 그 특유의 냄새는 싫어하지만
    비누를 살 때 가끔씩 냄새를 맡아보고 산다.
    옛날 그 빨래 비누 냄새가 조금은 느껴지기 때문에 지금도 세제보다는
    비누를 좋아한다


    이런 우리 동네에 주말이면 시내에서 빨랫감을 잔뜩 리어카에 싣고 오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는데 시골 장터와 같이 북적거린다.


    빨래터를 아예 길다랗게 작은 높이로 3-4층으로 만들어 놓은 탓으로
    1층까지 물이 차있을 때는 2층에서 하면 되었고 물이 없을 때는 바닥으로
    내려가 돌 위에 앉아 옷을 허벅지까지 말아 올리고 발을 담그고 빨래를 하면 되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대야에 물에 띄워놓고 다슬기와 조개를 잡고 고무신으로 물고기
    잡느라 시끄럽고 즐거웠던 소풍 같은 주말 빨래터...


    날씨 좋은 날에는 곳곳에 아예 솥단지 까지 가져와 빨래를 삶기도 하고
    나무 그늘에서 점심을 먹고 주변에 작은 숲 나뭇가지에 빨래를 말려가기도 했다.
    깊은 곳에서는 남자들의 수영 구역이었고 얕은 곳에서는 여자들과 아이들의
    수영장이기도 했으며(옷을 입은 체) 밤에는 동네 사람들이 물가로 나와 목욕을
    했었던 곳... 모두 함께 즐기는 여름놀이 장소였던 것이다.


    때론 남자들이 그물을 가지고 고기를 잡기도 하고 몇 개의 어항을 가지고
    고기를 잡기도 했는데 잡은 고기 중에서 색시 붕어의 선명한 색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얼마나 색깔이 이뻤던지...


    후에 우물대신 작두 (물을 넣어 펌프 식으로 물을 퍼 올림 )가 나와
    물이 차갑고 시원하긴 했지만 물이 달라서인지 빨래 때가 잘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은 나무 빨래판에 대강 주물러 세탁한 다음 농구공 넣듯이 옆에 세탁기를
    향해 던지는 손빨래를 주로 많이 하는 편이다


    일본여자들이 우리나라에 오면 빨래판을 사 가지고 간다는 얘기를 오래 전에 들었다.
    빨래를 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이다.
    편리한 가전제품들이 우리들 정서를 얼마나 빼앗아 가고 있는지...
    풍경화에서 나오는 한 폭의 그림처럼 방망이로 두드려가면서 냇가에서 빨래하는
    풍경이 그리운 여름이다.


    또 겨울철에는 고무장갑도 없던 시절이라 호호 입김을 불어 가며 빨래를
    하기도 했고 많은 빨래를 하는 사람은 장작을 지펴가면서 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빨래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씻어내기도 했던 좋은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되어진다. 그렇게 한 다음 햇볕에 말린 빨래의 뽀송한 느낌...
    풀을 하여 아직 덜 말린 이불빨래 같은 것은 다듬이 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구김살을 편 다음 햇볕에 말리면 빳빳해진 빨래 사이로 숨바꼭질하다 혼났던 기억들...


    말린 빨랫감을 손잡이 달린 동그란 다리미에 시뻘겋게 달군 숯을 넣고
    엄마와 둘이서 붙잡고 하던 다림질 불과 30-40년 전 일인데 꼭 이조시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눈부신 태양아래 장대를 받친 빨랫줄에는 숨바꼭질하듯 빨간 잠자리가
    떼지어 날아와 앉고 건너편 이웃집 느티나무에서는 매미가 합창하는 소리들.


    저녁 늦게 잠결에 들었던 엄마의 다듬이 방망이 소리
    그 어떤 절묘한 악기소리와 비교할 수 있을까?
    그 소리가 아직도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남아있다니..

    이젠 볼 수 없는 그래서 점점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그나마 아주 잊어버릴까봐 기억을 더듬어 써본다 .
    벌써 아이들에게 딴 세상 동화처럼 되어버렸지만...







    이름 값을 생각하며..


    개여울


    아주 오래 전 신문에서 아름다운 한글 이름을 공모했는데
    대상을 받은 이름이 참, 아름, 다움, 이란 이름을 가진 형제들 이였다.
    자녀 셋을 순 우리말로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지어서인지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부모의 소망이 담겨진 이름 대로 잘 사는 것이 이름 값을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너무 귀하고 화려하게 지었는데 그 이름 값을 못한 사람도 있고
    그 이름에 걸맞게 이름 값을 한 사람도 역사에 많이 있다.


    귀하고 화려하게 지으면 貴人縛命이라했던가?
    잘났다고 뽐내면 귀신도 시샘하고 명도 짧아진다 해서
    평범하게 오래 살라고 붙인 서민들의 이름들을 보면 재미있다.
    개똥이 쇠돌이, 마당쇠, 돌쇠 ,먹쇠 ... 향단이, 향심이, 곱단이 ...


    여자는 시집가면 그나마 아예 이름도 없이 누구 엄마 어멈 아니면
    원주댁. 서울댁 그리고 첫째야. 둘째야. 이렇게 불렀고
    이름도 길례. 말례. 분례. 순례. 복순이. 영순이. 말순이. 끝순이 등....


    또 일제 시대의 영향으로 끝에 子 가 많이 들어간 영자. 순자. 춘자. 명자...
    자녀가 많다보면 첫째가 순태인데 여섯 째 막내 이름은 태순이
    아들이 소원인 집에 딸이 나서 섭섭이 그만 낳으라고 붙인 이름이 끝순이. 말순이
    별 뜻도 없이 붙여진 많은 이름들.


    그런 이름들 때문에 부모원망을 하기도 하고 부끄러워서 집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고친 사람이 주위엔 많이 있다.
    내 친구 중 옥순이란 친구가 있는데 그 이름이 촌스럽고 싫다고 동희라고 부른다.
    깜박 잊고 "옥순아"하고 부르면 놀라 정색을 하며 싫어한다.


    역사책에서나 떠들썩한 사건 뒤에 신문 방송에서 불려진 이름을 보며
    자기 이름 값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고 노력이 필요한지를 새삼 느낀다.


    성경에서는 이름을 중히 여긴다
    예수란 이름은 (저희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했으며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열국의 아비)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야곱은 하나님과 싸워 이긴 자로( 이스라엘)로 축복을 받았으며
    예수님의 수제자 어부 시몬은 베드로(반석)란 이름으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으니 모두가 부르심에 합당하게 지어준 이름들이고 그렇게 살다간 위대한
    인물들이다


    그래서 생각하다가 아들을 낳았을 때 직접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사전을 찾아가며 고른 이름이 曉敏(새벽 효 민첩할 민) 秀敏(빼어날 수 敏민첩할 민)
    두 아들의 이름이다. 새벽처럼 맑고 부지런하고 어둠을 몰아내는 새벽 같은
    사람이 되고 민첩하고 빼어난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좋은 이름이 많았지만 이 정도는 적어도 부모의 바램이 아닐까 ?


    내가 아는 목사님은 아들이름을 勝我 (승아 )라 지었다.
    자신을 이기라는 뜻인데 의미가 있어 좋아 보인다.
    자신을 이긴다는 것은 성을 빼앗는 것보다 어려운데 ... 이름 값을 하는 것은
    본인의 노력에 달려있다고 본다.


    엄마는 결혼한지 10년이 넘어서야 나를 낳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외삼촌이 지어준 이름이 愛永이다
    여자는 보통 永자를 잘 안 쓰지만 사랑 받고 오래 살라고 지어준 이름
    하지만 내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한다.
    사랑을 많이 베풀고 살아야 한다고 그것처럼 힘든 것도 없을 것이다 말은 쉽지만...


    자기 이름에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고 산다면
    그렇게 되려고 적어도 노력을 하며 산다면
    이 세상에 나를 보내주신 하나님과 부모를 기쁘게 하는 자녀가 될 것이고
    나 또한 올바른 삶을 살았다고 훗날 자녀에게 떳떳이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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