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여행



    아들애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여름방학이 끝나면 대학 기숙사로 들어간다.
    미국은 대학을 가게되면 부모로부터 독립이다.
    기숙사에 들어가 공부하니 방학 때나 오게되고, 그렇게 대학 마치면 취직을 한다.


    그나마 가까운 도시에 직장을 잡으면 가끔이나마 볼 수 있지만
    타 주에 가게되면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에 집에 오게되니
    온전히 부모 밑에 있는 건 고교까지다.


    떠나 보내기 전에 여행을 가기로 했다.
    2년 전 큰애가 졸업하고 대학갈 때도 둘이 여행을 했는데
    딸도 나도 무척 즐거웠고 좋은 추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동부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며 미국의 역사를 보기로 하고
    New Jersey, New York, Conneticut, Roade Island, Massachusette
    이렇게 5주를 거쳐 보스턴에 도착했다.


    영국군과 맞서 싸운 미국독립의 역사가 배어있는 Boston.
    지금은 하버드나 MIT 등 유명한 대학으로 알려져 있지만 청교도들이
    미국에 뿌리내린 전통의 도시다.


    300년 남짓한 역사를 간직하려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많은 관광객으로 길이 좁아도 식민지시절 지어진 건물은 허물지 않고
    일층만 개조해 상점으로 쓰고 낡고 작은 집들도 단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자랑이 대단하다.


    May Flower호가 1670년 처음 미국 땅에 도착한 Plymouth를 둘러보고
    배를 타고 Cape cod로 건너갔다.
    갑판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는 아들을 보니 무수한 생각이 오간다


    처음 그 애를 낳았을 때 "아들이에요" 하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큰댁에 아들이 없어 종손이므로)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 응아 닦아달라던 어린애가 어느덧 저리 자라
    듬직한 어깨를 가진 청년으로 변했는지....


    초등 학교 입학식 때 엄마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던 큰 눈망울...
    아빠한테 자전거 배우던 날 처음 혼자 타게되자 볼이 발개져 들어와
    기어이 나를 끌고 운동장에서 자랑해 보이던 개구쟁이 내 아들...
    잦은 병치레로 날밤을 꼬박 새우게 만들던 아이.....
    우수한 누나에게 가려 항상 야단을 더 맞던 불쌍한 아들...


    이것저것 잔소리만 하고 사랑한다는 말 해본지가 언젠지 ...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다니느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나 자신 적응하기 바빠 무심한 엄마였다는 자책...
    사내아이라 사춘기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워 서로 싸우기도 많이 했는데...
    나보다 흠씬 커버려 언제부터인가 품안에 꼭 안아주지 못했는데
    벌써 내 곁을 떠나는구나.....


    가만히 아들 곁에 선다.
    해질녘의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둘 다 말이 없다.
    너무 아름다워 비장함까지 든다 .
    아들이 팔을 내 어깨에 두른다.


    매번 "구여운 우리엄마" 하며 놀리면
    '임마, 그래도 넌 내 배에서 나왔어" 하고 엉덩이를 치곤 했는데,
    해가 서서히 바다로 들어가는걸 보며 아들에게 말했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이 안가지? 너랑 나도 그래.
    네가 바다이고 하늘일 수도 있고 내가 하늘이고 바다일 때도 있고....
    가족 떨어져 어디 가든 힘이 들 때면 지금 우리 보고있는 이 바다 생각해
    망망한 끝이 없는 바다와 하늘, 그리고 저녁노을 생각하면
    아무리 힘든 일도 조그맣게 여겨질 거야 아주 하찮은 거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들과 깜깜해진 바다를 한참 더 바라보며
    나 자신에게도 다짐을 한다.
    아들이 떠난다고 슬퍼하지 말자.
    강보에 싸인 애기를 저만큼 키워 사회로 내보내는 내 책임을
    다했으니
    뿌듯한 마음으로 앞으로의 내 삶을 생각해 보자.
    그 애만 졸업한 게 아니라 나도 양육에서 졸업한 거다.
    이제 엄마의 손길은 필요 없으니 나도 애들로부터 독립해야 할 때다 .


    졸업여행
    여행이 끝나 어디론가 입학해야 하는데 나는 어느 학교에 입학해야 할까?
    여행에서 돌아온 후 아들애를 기숙사에 넣고 돌아오는 길 내내
    나를 붙들고 있는 화두이다.



    글/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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