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외관을 보았을 때
저 건물은 엄숙하다, 단아하다, 장중하다, 화려하다, 발랄하다, 날아갈 것같다....
이와같이 전체적인 이미지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누구나 공감하시겠지만.... “지붕”입니다.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건물앞에 놓인 안내문같은 것을 읽어보면 팔작지붕이네, 맞배지붕이네.... 설명은 많지만,
팔작지붕이 뭐고, 맞배지붕이 뭐고...에 대한 설명은 찾아보기 힘들지요.
그리고 난해한 건축용어만 잔뜩 늘어놨습니다.
합각이 어떻고, 부연이 어떻고, 사래가 어떻고....^^;
아마 안내문을 끝까지 읽으면서 제대로 이해하고 읽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이번에는 지붕과 관련해서만 몇 가지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무량수전과 동떨어진 별개의 얘기가 아니니까...




우선 한가지 알고 들어가야 할 개념...
흔히 “산마루”라는 말을 많이들 쓰지요?
산의 이쪽 비탈과 저쪽 비탈이 만나는 능선을 산마루라고 하는데요,
산마루, 고갯마루의 예에서 보는 것과 같이 높은 곳을 가리켜 마루라고 말합니다.
지붕에도 이와같은 마루가 있습니다.
용마루, 내림마루(=합각마루), 추녀마루(=귀마루) 등이 그것입니다.




산마루라는 말에서도 짐작하셨겠지만,
면과 면이 만나는, 산으로 말하면 능선같은 개념을 지붕에서는 마루라고 칭합니다.
지붕에서 “마루”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기와 몇장을 그냥 쌓아올려서 얕으막한 담장같은 것을 하나 만들게 되는데,
앞으로 사진이 나오거든 그 마루에 있는 “얕은 담장”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세가지 마루를 모두 가진 팔작지붕 얘기를 먼저 꺼내는 것이 순서가 되겠군요.
여기 쓰인 그림은, 그림 안에 출처를 표시했습니다.
볕 좋은 베란다에서 발가락으로 책 누르고, 발발 떨며 접사한 겁니다.
좋은 책을 내주신 김왕직 선생님께 정말 정말 감사하단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고건축물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기와지붕의 형태가 바로 이 팔작지붕입니다.
우선 용마루... 앞의 지붕면과 뒤의 지붕면이 만나는 가장 높은 지점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용마루의 끝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선, 그것을 내림마루라고 말합니다.
그림 2개 중에서 측면에서 비스듬하게 보고 그린, 첫번째의 그림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 내림마루 2개가 선명하게 삼각형을 이루고 있지요? 그 부분을 “합각”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합각을 이루어주는 내림마루이기 때문에 다른 말로는 합각마루라고도 불린답니다.




이따가 말씀드리겠지만, 내림마루까지만 갖추게 되면 건물의 지붕은 맞배지붕이 됩니다.
각각의 내림마루 끝에서 네 귀퉁이, 즉 꼭지점을 향해 한 번 더 선을 연장해주면
팔작지붕이 되는거죠.
지붕의 네 귀퉁이에 질러넣는 길다란 부재는 추녀라고 말하는데,
그래서 그 마루의 이름은 추녀마루입니다. 귀마루라고도 하구요.
팔작지붕은.... 됐지요?




무량수전이 바로 이 팔작지붕의 모양을 하고 있지요.
오공님의 무량수전 사진을 보시겠습니다.(난도질을 해놔서 원작자께 죄송...)









무량수전이나, 그 앞의 안양루나 모두 크기만 다를 뿐 팔작지붕의 모양을 하고 있네요.
내림마루가 이루어주는 삼각형의 합각(노란색)이 선명하게 보일 겁니다.
무량수전 지붕에 빨간 선으로 표시한 것은 용마루,
흰색 선은 내림마루, 그리고 연두색 선은 추녀마루입니다.




팔작지붕 얘기가 나왔으니 조금만 더해보지요.
처마와 추녀라는 말을 구분하지 못하고 보통 섞어쓰기 마련인데,
이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른 개념입니다.
오늘 여기서 확실히 알고 넘어가시죠. 우선 오공님의 사진 한 장을 보실까요.










아름다운 무량수전의 지붕 한귀퉁이를 찍어주셨습니다.
사실 팔작지붕의 아름다움은
흡사 버선코처럼 저 네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라간 곡선미에 있지요.
마치 갈빗대처럼 가느다랗게 여러 개 가지런히 뻗어나온 것이 서까래인데(파란표시 小)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서까래가 끝에 덧대어져 있는게 보이시죠?
다시말해 겹으로 되어있다는 겁니다.
이런 처마를 겹처마라고 하구요, 끝부분에 덧댄 서까래는 특히 부연(빨간표시 小)이라고 합니다.
부연이 없으면 물론 홑처마가 되겠군요.




눈이 좀 날카로운 사람은 서까래가 둥그렇게 돼있고,
부연에는 변화를 주어서 각이 지도록 깎아놓은 것
도 보이실 겁니다. 아름답지요?




줄지어 선 서까래(겹처마집이니까 부연까지)가 이루는, 모자로 치자면 차양같은 부위....
그것이 처마입니다.
비바람이 들이치는 것도 막아주고, 그늘도 지게 해주고...




추녀는 어디 있을까요?
건물 정면의 처마와 측면의 처마가 만나는 부위를 추녀라고 합니다.
처마가 가운데에서는 약간 아래로 처지면서 곡선을 그리게 되는데,
추녀에 다다르게 되면 그 선이 가장 높아지겠지요.




귀퉁이를 향해 굵은 부재가 뻗어나와있는 것이 보이시죠?
이와같이 추녀를 구성하는 나무를 추녀목이라고 합니다.(파란표시 大)
홑처마집이면 추녀목 하나면 되는데,
무량수전과 같이 부연이 있는 겹처마집이면 추녀목을 하나 덧대줍니다.
덧댄 추녀목을 특히 사래라고 말합니다.(빨간표시 大)
팔작지붕으로서 겹처마집이 있다면, 당연히 부연과 사래가 있다는 뜻이 되겠지요.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서까래의 맨 귀퉁이에는 추녀목이 있고,
부연의 맨 귀퉁이에는 사래가 질러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의 말을 빌면, 추녀끝 고드름이란 개념은 있을 수가 없고,
처마끝 고드름이라 해야
한다.... 이해 되시죠?




저도 그분의 흉내를 내어 한마디 보탠다면,
최소한 이 사진에서만큼은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이 아니라
추녀 끝에 달린 풍경이라 해야
말이 된다고.....
저 위 오공님의 사진을 보시면서 다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큰 지붕의 경우 지붕 네귀퉁이에 기둥을 받쳐서 그 무게를 지탱하기도 하는데,
활주라고 말합니다.(까만 표시)
무량수전의 경우, 활주를 역시 “추녀”의 끝에 대주어서 힘을 받아주고 있군요.
덧대놓은 “사래”에다 기둥을 받칠 경우 활주의 역할에 충실하기 힘들겠지요.



방금 나온 홑처마, 겹처마, 서까래, 부연, 추녀, 사래...를
종합적으로 그림을 보면서 확인해보시길.





 

 

 

 




마지막 이 그림에서 약간 까맣게 나온 놈이 추녀목,
거기서 바깥쪽으로 더 연장된 놈이 덧댄 추녀목, 즉 사래입니다^^







그다음은 우진각 지붕입니다. 다시 그림을....







 


어디서 많이 본 모양 아닙니까? 시골에 가보면 농가의 슬레이트 집이 죄다 이렇게들 생겼지요^^
우리가 아까 얘기했던 마루만 가지고 얘기해본다면,
수직으로 떨어지는 마루, 즉 내림마루가 없으니
우진각지붕은 용마루와 추녀마루로만 구성된 게로군요, 그렇죠?^^




지붕의 곡선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하게 면만을 가지고 얘기하자면
큰 사다리꼴 두 개와, 삼각형 두 개가 머리를 맞대서 만든 모양의 지붕이네요.
팔작지붕과 마찬가지로 추녀마루가 있는데, 어떤 점이 다를까요?




팔작지붕의 추녀목은 짧은 것을 써도 되겠지만,
우진각지붕의 추녀목은 용마루에서 곧장 뻗어나와야 되므로 상당히 길겠지요.
그래서 어떤 건물에는 팔작지붕, 어떤 건물에는 우진각지붕...
“건물의 레벨”과 관련된 이런 도식화된 공식의 탓이기도 하겠지만,
이 큰 추녀목의 문제때문에라도 우진각의 예는 실제로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궁궐이나 성의 출입구같은 곳에서 그 예를 좀 볼 수 있지요.
아래 사진은 남대문의 사진입니다.
아까 무엄하게도 농가의 슬레이트 지붕을 예로 들어서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기 쉽겠습니다만,
이 우진각 지붕은 뭔가 무식해보이면서도 견고해보이고,
상당히 장중한 맛
을 풍긴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자, 다음은 맞배지붕....
역시 그림을 먼저 보고나서.







 



지붕면이 두 개밖에 없습니다. 사각형 두 개가 이루고 있는 지붕이 맞배지붕이지요.
마치 책을 펼쳐서 엎어놓은 것처럼 생겼습니다.
용마루는 당연히 있구요.
그림에 내림마루라고 표시된 부분이 있습니다.
결국 맞배지붕은 추녀마루가 없이 용마루와 내림마루만으로 구성돼있습니다.




우진각에는 내림마루가 없고 추녀마루가 그 자리를 대신했었지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맞배지붕은 너무나도 단아하고, 엄숙하고, 그 효과로 장중하기까지 합니다.



제가 찍은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사진과
기천검이 찍어준 수덕사 대웅전 사진을 차례로 감상하시지요.











위의 사진들은 측면에서 보면 도리며 서까래가 그대로 노출되어 시원하기 짝이 없습니다.
헌데... 같은 맞배지붕이면서도 조선 중기 이후의 맞배지붕들은 다소 답답한 모양을 갖고있죠.
어떻게?









바로 이런 모습들이죠... 옆에 붙어있는 판자들은 "풍판"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풍판의 아래 마무리는 그림에서처럼 둥글게 하기도 하고,
아니면 반듯하게 만들기도 합니다만....




저 풍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비바람을 들이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목재가 길면 무위사 극락보전이나 수덕사 대웅전처럼 지붕이 좌우로 쭈욱 길게 나오니
비바람이 어느정도는 들이치지 못하겠지만,
목재난이 심각했던 조선조의 맞배지붕들은 그렇게 긴 나무를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지붕의 좌우를 짧게 하고, 대신 풍판을 댔던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지요.




서강님이 찍으신 사진이 하나 있는데, 달라고 제가 졸랐습니다.
그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참 재밌는 사진인데, 뭐가 재밌는지 한번 보시지요^^



지금까지 얘기한 지붕의 형태 3가지가 이 사진에 모두 들어있습니다.
서강님은 물론 의식하지 않고 찍으셨겠지만, 저는 그것부터 눈에 들어오더군요.









이제 정자같은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붕의 형태를 보실까요?








용마루가 없는 지붕이 바로 이런 형태입니다. 꼭지점에서 바로 선들이 내리뻗었지요?
몇각형을 이루느냐에 따라 사모지붕, 육모지붕, 팔모지붕... 이렇게 나갑니다.
사모지붕 하나 보실까요?
다산초당 옆에 자리잡은 천일각입니다.








지금껏 얘기해온 한옥의 기본개념만 가지고,
무량수전의 제원, 그러니까 그 생김새를 말할 능력이 갖추어지셨겠지요?
(아직 공포부분은 얘기가 안됐지만)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9량집이 되는 겁니다.... 맞죠?
계속 재인용되는 사진이지만, 다시 오공님의 사진을 보시면서 확인!!




♬ 음악 : Chopin - Nocturne No.1 in B flat minor O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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