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사망을 속이기까지..  

    고난주간입니다.십자가에 죽으심 당한 그분의 피를 기억하며,저에게도 가장 힘들고 처절했던 순간들을 떠올려 봅니다.
    아래 두 글은 병상일지였습니다.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서술할 수 있는...세상에 제일 큰 고통이 어미가 아픈 자식을 바라보는 심정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웃으며 뒤 돌아볼 날도 마련해 주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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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명희 님의 '혼불' 4권을 읽다가
    마음에 집히는 대목이 있어서 옮겨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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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개 이름 없는 아녀자가 제 쓰던 바늘이 부러진 것을 보고 애통히 여겨 조침문(弔針文)을 쓴 여인이
    있었던 것처럼,
    손때 묻은 바가지 한 짝 깨트린 것을 슬프게 여기어 조표자가(弔瓢子歌)를 애절하게 써서
    마음을 달래며 바가지한테는 침중 위로를 한 글도 있다.

    이러한 노릇이 바로 마음 가진 인간이 저절로 취허게 되는 '짓'이며, 발전허면 '도리'가 되는 것이다.

    생명없는 바늘 한 개, 바가지 한짝에도 간곡한 제문을 지어 이제는 명을 다한 물건과 사람이
    서로 교감을 할진대, 하물며 우주의 영물이라 하는 사람이랴

    이를 증명하여 소고당(紹古堂)이라고 당호를 쓰던 고씨 부인은 궁체 달필로
    두루마리에 규방가사 한 편을 남기었으니, 이름하여 '조표자가'이다.


    오호통재 오호애재 다락방을 청소하다
    아차실수 손을 놓아 두쪽으로 내었으니
    애닯도다 슬프도다 이바가지 어이하리
    아름답고 고운자태 삼십년을 곁에두고
    너를사랑 하였거늘 차마못내 아까워라
    모시끈에 합쳐보자 에고에고 내바가지

    ........중략


    여름이면 주렁주렁 무겁게 열어 지붕이나 토담에 지천으로 익어 가는 박을 따서
    그 반쪽으로 만든 바가지 한 개도, 하루 이틀 아니요 삼십 년을 곁에 두고 아침저녁 손에 들면
    그 것이 어찌 한낱 물건이리.정령이 스밀 일이었다. 사람의 기운은 독한 것이라
    그 손이 닿는 것은 인(燐)이 묻어 한밤중에도 파랗게 불을 켜고 심지어는 부지깽이나
    몽당 빗자루 같은 것도 쓰다가 아무데나 내버리면 저 혼자 도깨비가 된다.
    저한테 스민 사람의 기운을 이용한 변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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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엣 글은 옮겨 쓴 '혼불'의 일부분 발췌문)

    여기서 나는 정령이 스밀 일이라~~~~  는 대목에서 이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나는 옛 조상 님들의 정령이 깃 든 듯한 물건을 정신 없이 좋아한다.
    왠지... 옛 사람들과.. 시공을 초월해서...그 정령들을 만나 보고 지고 할 것도 같아...
    그 가신 분들의 숨결이 들려오기도 하고 그 분들의 영혼을 대할 수 있을 것 같아 무조건 좋다.

    세월의 때 오랜 숨결이 묻을 수록 난 갓 태어난 빤지레한 물건보다 내밀한 많은 이야기가 숨겨진 것 같은... 그런 옛 물건이 너무 좋다.

    인두 하나에도..내 어머님의 숨결을 손결을 바느질하시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고...

    이 물건의 참 주인, 그 삶은..어떠했을까? 가슴 두근대게 궁금해지기도 한다.
    국궁 하나를 갖다놓고도.....한껏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진지한 순간의 모습을 한 낯 선 장부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어찌 손 때 묻은 한낱 물건인들 그 주인의 성정을 아니 닮을손가? 그 주인의 애틋한 보살핌 같은 사랑을 어이 모르랴!

    내가 왜 지금 이 글을 쓰려고 발췌해냈는지...??

    사랑하는 아들을 군에 보내고 남 몰래 눈물짓는 에미들은 아들의 옷을,,받아 드는 날,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눈물을 흘린다. 그 옷이 바로 아들인 것이다.나도 그랬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의 체취가 묻어있고...
    내 아들일 것만 같은 껍질을 받아들고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 에미가 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으랴?
    가슴에 안아보다가 쓰다듬어 보다가...얼굴에 비벼 보다가 냄새도 맡아보다가...눈믈 방울도 떨구어 보다가...
    도로 가슴에 꽉 껴안듯 품어보다가....종내는 가슴 위에 터억 가로막히는 슬픔을 맛본다.

    그 옷은 새로 사 입혀서 보냈을 옷일 수도 있다. 체취가 묻혀질 겨를이 없는 옷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의 옷임을, 아들이 내 벗어 던지고 간 옷임에 어찌 가슴이 메이지 않을까? 어느 에미의 심정이 이와 같지 않을까?



    그런데...
    이것은 엄청난 비약일까? 병원에 있으면서 물건이나 그 무엇이 아닌 생명에다 이입시켜 생각해 본다.

    생명...그 육신, 영혼을 담아 왔던 그릇이 그 수명을 다 하려한다.
    난 보았다.
    숨지는 날까지의 고통 그 이별들...
    숱한 애환들...



    병원 실내 방송을 통해 울려 퍼지던 코드블루의 외침..그 외침에, 영혼을 담았던 그릇에서..혼백이 날아간다.
    혼백이 날아 나간다.


    10층 냇과에 내려갔더니....사람의 형국이 아니다 이건 악마의 노리갯감이다.
    어쩌면 이리도 처참할 수가...
    양치질을 하다가도 출혈이 멈추질 않는단다.

    얼굴은 짚단같이 붓고...피는 줄줄 흘러내린다. 흉흉하다.

    어찌 애달프지 않으랴...
    하물며..쓰던 바늘이나 바가지 하나 깨어짐에도 서러움이....

    혼백을 담았던 질그릇 육체에..
    금이 간다.
    금이 간다.
    완전히 깨어져서 못 쓰게 되려한다.

    사망은 어디로 가고..
    육신의 고통만 남았는가?
    병원은 사망이 올 때까지 끊임없이 메스를 가한다.
    마치 악마의 시종자라도 되는 양 열심히 난도질해댄다.

    그냥 보내면 안될까?
    그냥 깨끗하게 보내면 안될까?

    10층 내과 질환 쪽으로 가서는 캄캄한 벽을 만난다.
    생명의 절벽을 마주본다.

    나에게 왜 이런 모습을 보여주시는 걸까?
    왜 나에게 이런 시간을 어렵사리 주시는 걸까? 왜 하나님은?

    왜 가족들에게 정을 들이게 하고 데려가시는 걸까?
    왜 마음에 상처를 주시는 걸까?

    하물며 곁에 두고 쓰던 물건도 그러하거늘...
    사람의 생명을 정들이게 해 놓고
    싹뚝,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서 매몰차게 탁, 끊어 놓는다.

    그 영혼은 어이하라고 그 질그릇을 깨 버리시는가?
    마지막 혼불을 훅- 불어 끄시는가?
    흔들거리는 잔명을.. 사정없이 불어 끄시는가?

    유일무이한 질그릇을..깨박치시는가?
    살아 남은 자들의 가슴을 칼로 저며...그 저민 곳, 소금을 뿌리듯,고춧가루를 뿌리듯, 쓰라리게 만드는..
    .......

    그렇게 떠나ㅡㄴ 영혼들은 어디로 가는가?
    어디로 흘러가는가?

    슬퍼서..애도의 노랫가락조차 나오지 않는 꽉 막힌 억장 가슴을...어이하라고, 어이하라고...

    영혼의 허물 , 빈 껍데기....나무 등걸 같은 육신을...그 옷가지들을 부여잡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꼭 데려가려는 자를,
    가는자를 아무도 막지 못하거늘...아무도 막을 수 없거늘...

    손 때 묻은 물건 하나에도 그 정령이 깃든다는데..사람과 사람사이에  깃 든 그 정령? 은 누가 어떻게..
    그 파랗게 불켜듯 날 선..인불을 어이 감당하라고...

    보낼 때는 보내야한다.가려는 사람은 잡지 말아야한다.선선히 보내 주어야한다.

    답답하다. 숱한 금 간 질그릇들을 보며....

    감쪽같은 땜질로
    사망이 눈속임 당할 때까지...
    사망을 속이기까지..

    눈치싸움을 벌인다.
    처절하게
    아궁이



    사망아 내려가라 장례식 설교


    뉴 올리언즈의 어떤 흑인 사회에서는 장례식이 애도하는 시간이
    라기 보다는 축하행사에 가깝다.
    이런 장례식을 생각해 보면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성경적이다.
    진정한 크리스찬이라면, 당신은 자신이 천국으로 가는 도중에 있으며.
    그러므로 죽음은 당신을 그분에게 데려다 준다는 점에서
    환영할 친구라는 것을 알고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죽음을 재촉하는 어떤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그 분의 말씀이 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찾아올 때,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영광스러운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의 말을 빌자면 이렇다.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빌 1:2~3: 고후 5:8).

    시의 형태로 되어있는 이 이야기는 이 점을 분명히 해준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자매가 죽었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울지않아야한다.
    그녀는 이제 마침내 진짜 자기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 것은 제임스웰던 존슨의 아름다운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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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지 말라,  울지 말라. 그녀는 죽은 것이 아니다.
    그녀는 예수의 품에서 쉬고 있다. 
    가슴이 아픈 남편이여--더이상 울지말라. 
    슬픔에 잠긴 아들이여--더이상 울지말라. 
    외로운 딸이여--더이상 울지말라.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저께 아침,하나님께서 크고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 보시며 모든 자녀들을 살펴보고 계셨다. 
    그리고 그분의 눈이 캐롤라인 자매에게 머물렀을 때 자리에 누워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보시고 
    하나님은 마음이 너무도 아프셨다. 너무도 아프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보좌에 앉으셔서 오른쪽에 서 있는 키 크고 밝은 천사에게 명령하셨다. 
    사망을 불러와라! 
    그러자 키 크고 밝은 천사가 외쳤다. 천둥과 같은 목소리로사망을 불러와라! 
    --사망을 불러와라! 
    그러자 그 메아리가 천국의 거리를 지나 어두운 곳에까지 퍼져갔다. 
    거기서 사망은 그의 창백하고 흰 말들과 기다리고 있었다. 
    사망은 소환 명령을 받자가장 빠른 말을 탔다. 
    달밤의 백짓장처럼 창백한 말을사망은 황금의 거리를 질주해 갔다. 
    말발굽이 금과 부딪치자 불꽃이 일어났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사망은 백보좌에 나아가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렸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내려가라 사망아, 
    내려가라. 조지아 산바니로 내려가라. 

    야마크로에 내려가라가서 캐롤라인을 찾아라 그녀는 고통의 짐을 앓고 있다. 
    그녀는 내 포도원에서 오래도록 일했다. 
    그녀는 피곤하다.....그녀는 지쳐있다.....사망아 내려가서 그녀를 내게 데려와라. 
    사망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창백하고 흰 말의 고삐를 늦추었다. 
    그리고 핏기없는 옆구리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그는 아래로 힘껏 말을 몰았다. 
    천국의 진주문을 지나태양들과 달들과 별들을 지났다. 
    사망이 달리는 길에그의 말이 일으키는 거품이 하늘의 혜성같았다. 
    사망이 달려간 자리에는번갯불같은 번뜩임이 있었다. 
    그는 곧 바로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우리가 그녀의 침대 곁에서 지켜보고 있을 때그녀는 눈을 돌려 먼 산을 바라 보았다. 
    그녀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늙은 사망을 보았다. 
    그가 유성처럼 오고 있는 것을, 그러나 사망은 캐롤라인 자매를 위협하지 않았다. 
    그는 다정한 친구처럼 그녀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우리에게 속삭였다. 
    나 집에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사망이 그녀를 아기처럼 안았다. 그녀는 그의 얼음같은 팔에 안겼다. 

     

     

    그러나 그녀는 차가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사망은 다시 말을 타기 시작했다.
    저녁의 금성을 지나 아침의 샛별을 지나 영광의 밝은 빛 속으로 백보좌 앞으로 
    그리고 거기에 캐롤라인 자매를 내려놓았다. 
    예수의 따뜻한 품에,
    그리고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셨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서 주름을 펴주셨다. 
    그리고 천사들은 작은 노래를 불렀다. 예수께서는 그녀를 팔에 안아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쉬거라,쉬거라, 쉬거라,울지 말라-- 울지 말라. 
    그녀는 죽은 것이 아니다.
    그녀는 예수의 품안에서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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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은 "영혼을 깨우는 이야기" 제리뉴콤/편집의 오헨리, 도스토 옙스키,찰스 디킨스 등의 글들을 모은 책에서 발췌한 일부분입니다.

    그제 일이였습니다. 병상에서 딸아이가 책을 읽다말고 내게 "엄마도 여기 좀 읽어 보세요" 하며 펼쳐 준

    이 페이지를 읽으며, 이 시의 감동도 (쓰라린)감동이려니와 나는 딸아이 몰래 기어이 눈물을 훔치고 말았습니다.

    '지지배 왜 하필이면?'그래서일까요 아이는 아마 잊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날 밤, 아이는 그날 밤 무려...3~ 4시간을 지옥의 진통속에 헤메야 했습니다.

    온 병원이 떠나가라 소리지르고 차라리 죽여달라고 악을 썼습니다. 아이를 아무도 어떻게 손 쓸 수도 어쩌지도 못했습니다.

    전 낮에 이 시를 에미에게 들려 준 ...기억이 나서.....소름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차라리 곱게 데리고 가시라 기도할까? 차라리...?

    아냐 절대 그럴순 없어 안돼!!

    "난 어느새 앙다문 입으로 기도 했습니다.

    주님의 질투의 신이시니,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를 치시리라고....

    모르겠습니다. 성경 어디에 씌여있는지, 난 모릅니다.

    어느새 제 기도는"하나님..전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습니다""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잘못아셨습니다. "전 이 아이를 절대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두 대의 진통제와 먹는 진통제~ 붙이는 72시간짜리 패취 진통제, 5시에 시작된 진통이 8시가 넘어서야 흥건한 땀에 젖은 아이는 몽롱해져 갔습니다.

    에미인 나도 앙다문 입으로 기도하던 턱 뼈가 긴장에서 놓여났습니다.

    긴장과 이완! 주님,요즘 제가 그리합니다.

    이젠 주님 자주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행복하니까요.

    완전 릴렉스된 상태로....

    주님!언제나 깨어있게 하소서!

    글/이 요조

     

     

    배수로

     

    
    

     

     

     

    EnYa-Pilg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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