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기하자! 육이오!
상기하자는 말, 그 단어 자체도 이젠 아슴츠레 잊혀져가는 말이 되었다.
'상기'와 '육이오'는 마치 한 세트처럼 붙어다녔고, 딱 어울리는 언어의 결합이었다.
내 머리 어언 희끗해졌지만 나도 육이오를 잘 모른다.
요즘 젊은이들이 어찌 알까?
나는 전후의 피난세대와 나란히 책상머리를 맞대고 자랐기에 그런 육이오의 증후군으로 반추되는 추억을 갖고 있다.
부산, 남부민국민학교
이 나이에도 한 학년은 아마 9학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 바로 남동생(53년생?)은 그 옛날 초등과정에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었으니....더 말 해 무엇하랴?
지금은 그 곳에 수산센터가 자리잡았다고 했지?
충무동 5가?로 기억되어지는 그 곳은 전쟁피난민들의 천막집으로 이뤄진 판자촌이었다.
간혹 친구따라 가보면 판자촌 동네의 좁은 골목길.....이북식으로 벽도 없이 방과 부엌이 함께 있던....천막안이었지만 제법 규모있게 살만하게 만들었던, 그런 집으로 기억한다.
어린 내 눈에는 마치 임시 나들이 나온 텐트처럼 재밌게도 보였으니, (나는 철도 되게 없었나보다)
화장실은 바닷가에 세워진 공중화장실로 변을 보면 바로 바다로 떨어지던....그런 앉았으면 밑으로 파도가 치고 옆으로는 남의 엉덩이가 보이던...중국식 화장실 같은 모습이었다.
국민(초등)학교는 언제나 미군이 상주해 있는 듯했다. 마치 설립자가 미국인 것처럼~~
운동장에 마사토를 깔아주기도 하고...돌이켜 생각하면 아마도 우리학교가 그 특혜를 많이 받은 듯도 하다.
언니 학예회때 사진을 보면 (제법 발레복까지 차려입은 언니)중앙에 교장선생님 그리고 그 등뒤로 미군들이 꼭 있었다. (사진 보내달라고 해야겠다)
종이드럼통에 우유가 한 반에 한 통씩 지급되는 날은 너도 나도 선생님마저도 가져가시는 날이다.
그 날은 보자기에 싼 양은 밥통을 챙겨들고 가는 즐거운 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가축이나 먹는 탈지분유였던 걸로 기억한다.
(동양인들 우유소화력 없는 걸 알고 배려했음일까?)
하얀 우유를 가득 가득 퍼담아 주시던 선생님, 유난히 뽀도독 소리를 내던 하얀가루!
집에오면 양은 도시락에 어머님이 쪄 주시면 딱딱하게 굳었던 하얀 우유과자!
우리는 그 것을 물고 다녔다.
학년이 좀 올라가자 체계있는 급식이 시작되었는데....
옥수수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당번들이 가서 한 들통씩 받아오면 반 절반의 아이들에게 돌려지고
식은 찬밥보다 고소한 강냉이 죽이 더 좋은 우리는 모두 친구들과 죽조금 밥조금씩 함께 나눠먹으며 자랐다.
어느날 부턴가 죽이 사라지고 급식을 만드는 곳에서는 구수한 빵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강냉이빵으로 대체되었다.
하기사 그릇도 수저도 필요없고 뜨거운 것을 날라다 떠서 먹는 불편함이 사라졌으니~~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갓 쪄진 옥수수빵은 죽이 넘볼 수 없는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죽은 집에 가져갈 수 없었지만 빵은 얼마든지 가져갈 수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 걸 먹지않고 집으로 가져가기도 했나보다.
집에 있는 동생이나 엄마에게 드릴려고,
지금 생각해보니....아마도 눈치없는 나같은 아이들은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친구의 마음은 전혀 헤아리지 못했을 터이다.
아무튼 빵은 넉넉해서 간혹 우리들에게도 주어지고
아니면 밥으로도 바꿔먹기도 하고.....
이 모든게 나의 육이오에 대한 기억 뿐이다.
충무동 5가로 기억하는 그 판자촌은 어느날 대형화재가 났었고.....
내 어린 날 기억은 그 이후로 연결 짓지를 못하고 있다.
.
.
.
.
625행사로 주먹밥을 만들어 나눈다는 보도는 보았다.
그러나 이번 육이오는 일요일이어서 (월드컵의 열기에 묻혀 퇴색하고)그도 없을 터~~
어제는 차가 밀리는 곳에서 길거리 옥수수빵을 하나 사왔다.
맛도 무지 없다.
.
.
그 시절
노란 옥수수 죽이 먹고싶어서 죽을 끓였다.
찹쌀을 갈아 넣었더니 때깔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 ㅡ.ㅡ;;
주먹밥을 만들어 보았다.
그저 그랬다. ㅜ,.ㅡ
.
.
.
.
.
이맘 때면 학교에서
반공 표어를 지어오라,
반공 포스터를 그려라~
글짓기를 해와라~
웅변대회를 연다.
미술시간이면 칠판에다 선생님이 제목을 써 주신다.
"상기하자! 육이오!" 이 무슨 그림의 해괴한 제목인가?
전쟁의 쥐뿔도 모르는 우리들은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무섭게 뭐든 거리낌없이 쓱쓱해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웃긴다.
얼마전 도봉산 입구에 나붙은 현수막을 하나 보았다.
"625를 잊으면 625가 다시온다!"
맞는 말이긴 하다.
근데...이 현수막을 누가 새겨 보고 새겨 들을 것이며,
그나마 이 걸 본 나도 뒷 맛이 씁쓰름한 이유는 과연 뭘까?
아무튼 이 아침에 내린 결론은 동족상잔의 부끄러운
치욕의 날로 상기할 일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625 아침에 이요조
'요리편지 > 엄마의 요리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딸아 과일깎기 스크랩이다. (0) | 2007.05.12 |
---|---|
요리책 촬영현장 이야기 (0) | 2006.07.22 |
제철식품과 음식 (0) | 2006.04.25 |
팽이버섯, 부추, 미나리 씻는 법 (0) | 2006.03.05 |
오늘은 동생에게~ (0) | 2005.10.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