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큰 나무도 울고....키 큰 어느 부부도 울 던 밤!!

 

 

봄비가 여름 장맛비처럼 사정없이 내립니다.

우산을 썼지만....비를 맞다시피 하며 절집을 향해 아무 생각 없이 오릅니다.

너무 생각이 많을 때는 텅 비우 듯 멍-한 상태도 좋은 것 같습니다.

조릿대 잎사귀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계속 두두두득 거리는 소리로 귀로 들어와 가슴에 마음에 내려앉습니다.

그리 싫진 않고 정겹게 들립니다. 함께하는 기분입니다.

선암사 절집이 보이자 그 때부터는 소나무 아래 있는 차밭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습니다.

소리는 조릿대가 한 수 위이군요!

눈을 들어 선암사 해우소 부근을 바라봅니다.

현재 공사 중인 해우소지만 그 옆에 있는 해천당을 눈으로 더듬어 보는 중입니다.

절집에 와서 하룻밤을 묵었다는 인연이 나를 그리하게 합니다.

몇 그루의 키 큰 은행나무가 밤새 그렇게 울었습니다.

그렇게 밤새 이야기 나누며 울었던 부부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 밤 선암사에는 바람뿐이었습니다.
바람 가득 실린 매화 향기에 나는 자꾸 어지러워져서 꽃이 피어있는 나무에 기대고 서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자잘한 꽃으로도 절집 가득 향기를 채워놓는 나무가 있다니-

내 마음속에도 나무 한 그루 심어 가꾸어 꽃을 피워 올려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4년전 3월 하순경 여행자들이 절집을 찾았을 때는 늦은 발우공양을 드리고나니 캄캄해졌습니다.

 

  선암사 템플스테이 (#1발우공양)   http://blog.daum.net/yojo-lady/13745638 (2010,3월20~21)
선암사 새벽예불을 드리다.  http://blog.daum.net/yojo-lady/13745645  (2010,3월20~21)
선암사, 620년 된 홍매화를 만나러~  http://blog.daum.net/yojo-lady/13746721 (2014,3,13)

 


 

"템플스테이 첫날 밤 잠자리를 배정받았다,

진봉스님께서는 그저 남,여 방만 따로 배정해주려 하시지만 나름 여행자들의 내밀한 사정들을 잘 아는 터라...진봉스님 등 뒤로 돌아가서 간절한 말씀을 드려본다.

 

<실은 스님, 부부 방이 필요합니다>

<부부가 왜요?>

<대화가 절실히 필요해서요.>하며 빙긋 웃는데 <그러지요~>하며 선선히 허락하신다.

그러자니 또 한 부부가 걸린다. 그렇게 방은 애초에 두 개에서 5갠가 6개로 늘어나고  산사의 위채까지 어두운 밤길을 벌써 접어든 사람도 있고 나머지는 승합차를 타고 올라갔다.

 

새벽예불을 드릴 사람은 해우소 옆에 있는 해천당로 인도되었기에 인솔자인 나도 새벽예불을 함께 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뚝 떨어진 산사 별채까지는 올라가지 않았더니 방 하나는 새벽이 되도록 냉골이었다 한다. 늘 뜨뜻한데서 편히 잠자고 생활하다가 절집 냉골 방에서 온기 보시를 한 셈이다.

참으로 죄송스러웠지만...새벽예불 드릴 사람들이 (8명)묵은 방은 무척 따뜻했다.

........

 

황사경보가 내릴 정도로 심란한 날씨였다.

서울은 낮 하늘이 밤같이 어두워지면서 황사비도 흩뿌리며 외출하기가 무서운 공포속의 하루였다 한다.

이곳은 순천만에 머무는 오후에 잠시 흐리더니 밤새 바람이 유난하다.

산사에서 밤 내내 나뭇가지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의 울음소리를 듣느라...잠을 설쳤다.

잠깐 잠이 들었는가 싶은 순간 새벽 3시 인경에 접어들자 순라군처럼 목탁을 두드리며 조용히 예불 참여자들을 깨웠다.

그 게 <도량석>이란다

난 또,,새벽예불을 드리겠다는 참관자들이 불교신자들인 줄 알았다. 8명 중에 보살은 단 한 분~ 이 어이없이 생뚱맞은 발상은 어디에서 왔는지? 모두는 108배도 제대로 드릴 줄 몰라 허둥지둥~ 곁눈 짓으로 스님들 따라 하기에도 급급하다.

절 한 번에 유체이탈, 방석이탈~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1배 드리고 날 때마다 커다란 방석자리를 벗어나기 일쑤다.

 스님들은 한 눈이 아니라..반눈에도 처억하니 알아보셨을 터~~108배 드리는 품새 하나로도 몇 년차 신자라는 걸 아시고도 남을 터인데...

오늘 새벽 템플스테이 예불참여자는 <ㅉㅉㅉ!!! 고단 할 텐데...걍~ 더 자지 왜 새벽에 깨어서 나왔니?>

그런 말을 들을 정도의 말짱 .....노랑 병아리들이다.

 

그것도 걸음마도 제대로 못 떼면서 절집에 왔으니 절집에서 하는 예식을 따르려는....천진난만한 애기들 같이 ,,,

 

 

 

그 때 엉덩방아 찧어가며 108배를 드리던 우리를 부처님 보시기에 얼마나 기특하며 귀여웠을꼬?~~ ㅎ 이상은 4년 전 절집에서 1박을 한 템플스테이 이야기로 썼던 글이다. 아래글은 그 때 못했던 이야기다.

 그 다음날은 황사를 멀찌감치 일본까지 몰아내느라 그리도 밤새 윙윙거리던 바람소리가 고마울 정도로 하늘은 구름한 점 없이 맑고 파랬다.스님의 인솔로 선암사에 대한 설명시간인데, 600여년이 넘어 비스듬하게 드러누운 와송앞에서

 문화재로 등록된 선암사의 해우소 이야기와 함께 누가 정호승님의 ‘선암사 해우소'낭독해보라신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그 때 한 방에 기거하도록 해 준 부부의 아내 눈을 보았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런데 그 눈물은 눈물이 아니고 지난 밤 황사처럼 모든 걱정을 물리친 카타르시스의 맑은 눈물이었다.

그녀의 눈이 밤새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어있었다. 그 걸 본 나도 덩달아 콧등이 시큰해져왔다.

 

여행신청을 받으면서 간다고 했다가 못가겠다고 했다가 번복이 많았다.

요는 남편이 여행을 떠날 용기가 안 난다는 것이었다.

버스가 출발할 때만해도...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도 키가 유난히 커서 관광버스에 두 다리가 끼일 정도의

그녀 남편은 눈을 꼬옥 감고 입을 굳게 다문 채 어느 누구와도 어떤 소통도 하려들지 않았다.

 

 

그랬는데...사골 부녀회원들이 정성껏 차려준 점심을 먹고 농촌체험을 하고 떡메치기와 새끼 꼬기 옛날 어린이들이 놀았던 놀이기구 등을 직접시연해보는 내내 의외로 남편분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처럼 직접 나서서 해보기도 하면서요!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 50이 넘은 부부로 호주로 이민 갔다가 공부하는 아이들은 두고 역이민해 온 분들입니다.

전세금도 모자라고 호주에 두고 온 두 아들의 교육비를 어떻게 대야할지 막막해있었던 부부들입니다.)

 

 

그날 밤,  절집 뜨끈한 온돌방에서 밤새 바람소리로 잠 못 이루는 밤에 부부 둘은 도란도란 이야기 물꼬를 트고 그렇게 울었나봅니다.  서울에 도착해서는 환하게 웃으며 제게 다가와....정말 초대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여러번 간다느니 못 간다느니...할 때  잘 참고 기다려 주었다는 생각과 제 스스로 뭔가 좋은 일을 해냈다는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 후로 두어번 더 함께 여행을 하고 그 가정은 좋은 일을 만들고 모든 게 잘 풀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바빠서 함께 여행도 못 다니지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요!!

 

 

여행을 떠나 조용하고 낯 선 곳에서 부부가 깊은 이야기로 도란도란 서로 위로하며 기운을 얻는다는 것!!

절실히 필요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부부, 대화의 물꼬를 트면 샘물처럼 퐁퐁 솟아나는 말그란 사랑이 보이나봅니다.

 

4년 전,  그 때도 이렇게 매화가 피어 진동하는 3월 중순이었습니다.

매화처럼 향기로운 사랑의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게  우리 인생사나 뭬가 다르겠습니다.

우리네 삶도 다 그런 것임을......

 

 

 

 

(이 글은 여성가족부에 기고된 글입니다)

 

 

뒷간으로는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선암사 해우소

이 사진이 밤새 바람소리로 울었던 키 큰 나무들과 선암사 해우소 뒤깐 모습입니다.

 

정일근 ‘
시인은 '내 죄의 반은 늘 식탐에 있다'라고 참회의 말을 꺼낸다.
 
선암사 뒷간에서 뉘우치다’


템플스테이의 새로운 경험은 단 며칠일지라도 사람의 시야를 바꿔놓을 수 있다.
음식을 먹고 나면 단무지로 그릇을 닦아 깨끗이 비운다. 발우공양이다.
오체투지(五體投地)로 탑돌이를 하노라면 온몸은 땀에 젖고 옷은 흙투성이어도 마음은 가뿐하다.
촛불을 켜 들고 범종 소리를 들으면 온몸에 전율이 울려 퍼진다. 깨달음은 해우소(解憂所)에도 있다.

‘무위도식의 오후, 불식(不食)을 했다면 선암사 뒷간으로 찾아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녁 예불시간 뱃속 근심이 큰 장독에 고인 물처럼 출렁거려 뒷간에 앉는다.
사실 나는 내 죄를 안다.
그리하여 범종소리 따라 한 겹 한 겹 밀려와 두꺼워지는 어둠에 엉덩이를 깔고 뉘우친다.
뒷간 무명(無明) 속에 발 저리도록 쪼그리고 앉아 진실로 뉘우친다.
…근심은 버리려 하지 말고 만들지 말아라. 뒷간 아래 깊은 어둠이 죽비를 들어 내 허연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나는 내 몸의 작은 뒷문 하나 열지 못하고,
단 몇 푼의 근심조차 내버리지 못한 채 선암사 뒷간에 쪼그리고 앉아 뉘우친다.’


 

우리가 하룻밤 묵었던 객사 "해천당" 모습입니다.

아래 왼켠 창에 둘러친 비닐이 있는 방에 저는 새벽예불을 드리겠다는 8명과 함께 묵었구요.

공사중인 해우소와 해천당 사이에도  화사한 묵은 매화 한그루가 중간에서 잘 가려주고 있더군요!!

 

 

홍매와 같은 수령인 600년이 넘은 누워있는 '와송'

 

15일 전에 왔을 때는 봉오리였던 홍매가 곱게 벙글었어요!

 

 

 

 

 

 

 

보물 제 400호 (1963.09.02 지정)  문화재 399호 | 문화재 401호
순천 선암사 동ㆍ서 삼층석탑[편집]순천 선암사 동ㆍ서 삼층석탑
(順天 仙巖寺 東ㆍ西 三層石塔)


이 부분의 본문은 순천 선암사 동ㆍ서 삼층석탑입니다.
순천 선암사 동ㆍ서 삼층석탑(順天 仙巖寺 東ㆍ西 三層石塔)은 절 안의 승선교를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대웅전 앞에 좌우로 서 있는 2기의 삼층석탑으로 보물 제395호이다.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규모와 수법이 서로 같아서 같은 사람의 솜씨로 동시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선암사일주문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

자세히보니 배롱나무(목백일홍)이 두 그루 마주 바라보며 서있다.

목백일홍 꽃이 피면 절집 풍경이 또 다시 화사하게 또 다른 모습의 옷을 입게 될 것 같다.

보물 제 400호 (1963.09.02 지정) '승선교' 다리 중심석 아래에 석재가 조그맣게 돌출되어 있다.
고통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건너는 중생들을 보호 수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 돌을 빼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옵니다.


그대에게 나는 지금 먼-산이요.  꽃 피고 잎 피는 그런 산이 아니라 산꽃 피고 단풍 물든 그런 산이 아니라 그냥 먼-산이요.

꽃이 피는지 단풍지는지. 당신은 잘 모르는 그냥 나는  그대를  향한 그리운 먼 산이요.  법능스님 작곡,노래 / 김용택 詩
 

 

 

  선암사 지도법사 (템플스테이) 진봉스님 

 

 난생 처음 발우공양 체험

 

산사(山寺)는 티없는 무욕(無欲)의 땅이다. 고요하고 깨끗하다.

무심코 지나쳤던 별과 달이 유난히 빛난다. 고즈넉한 산사 풍경은 그 자체로 해탈이다.

 

황사가 봄 하늘을 희뿌옇게 뒤덮는 3월 20일, 여행팀들은 선암사로 찾아들었지요. 

선암사는 송광사와 함께 순천을 대표하는 사찰이지요. 

 

 

순천만을 탐방하고 저녁 공양시간에 맞추어 가느라 순천 동천을 옆에끼고 한 40분 넘게 달려간 것 같습니다.

하늘은 황사로 뿌얬고 바람은 이리저리 불었지요. 이 날 서울은 밤하는처럼 캄캄하고 비도 왔다지요.

이 곳은 잠시잠깐 이랬습니다.

황사를 피해 나들이를 잘 온 셈입니다. 산사에서 하룻밤 묵고나니 그 다음 날은 하늘이 얼마나 높고 파란지

마치 맑은 가을 같았지요. 

 

 

선암사에 당도하니 타고 온 차는 버리라는군요.

속세의 홍진에 물든 껍질을 벗듯 타고 온 차를 버리고 주차장에 있는 선암사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산길을 올랐습니다. 봄이라 좀 길어진 낮이 산사를 오르는 일순간에 까무룩 저물어버리는군요. 

당도하자 날이 어두운데도 만나지는 사찰의 첫 풍모에 그만 반했지요. 

꾸밈없이 자연스럽게...천년 고찰의 모습 그대로 인 듯 선암사는 경내의 가람배치나 풍경도 그리 권위적이지 않고 평온한 느낌이 들었지요.  사실은 알고보니 태고종과 조계종과의 소송에 태고종은 그대로 답보상태로 숱한 세월 명맥만 유지해 온 아픈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 게  훗날 더 나을지도 모를일입니다. 요즘 돈으로 짓는 사찰들은 시멘트에다가 단청을 입히고...기와도 무늬만 기와지 강판같은 것으로 그럴 듯하게 꾸미고들 있는 것에 비하면 오감의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발우공양[鉢盂供養]

 

발우는 승려의 밥그릇을 뜻하며, 발우공양은 승려가 식사하는 행위를 말한다. 발우의 유래는 옛날 부처가 가섭이 모시던 용을 밥그릇에 가둬 항복을 받아낸 일이 있는데, 그 밥그릇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항용발(降龍鉢)이라고도 한다. 중생의 뜻에 따라 양대로 채우므로 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발우는 모두 4개로 구성된다. 작은 그릇이 큰 그릇 속에 차례로 들어간다. 제일 큰 그릇은 밥그릇, 두번째는 국그릇, 세번째는 청수그릇이며, 가장 작은 그릇은 찬그릇이다. 밥그릇은 무릎 왼쪽 바로 앞에 놓으며 국그릇은 오른쪽 앞에 놓는다. 찬그릇은 밥그릇 바로 앞에, 물그릇은 국그릇 바로 앞에 놓는다. 목탁이나 종으로 공양을 알리면 모두 대중방으로 와서 조실이나 주지가 중앙문에 앉고 좌우로 순서대로 가부좌한다 /daum 사전

 

발우가 참으로 정갈하게도 얹혀있습니다.

발우공양, 늘 매스컴을 통해 듣고 보고했지만 제가 직접 겪어보기는 처음입니다.

공양은 발우공양과 상공양이 있다네요 상공양은 쉽게 말하자면 덜어먹는  뷔페식이라 생각하면 되구요.

스님들도 매끼니 발우공양이 아니고 아침만 발우공양을 하시고 점심 저녁은 상공양으로 편히 드신다는군요.

 

 

태고종은 조계종과는 사뭇 다른 게 많았습니다.

그 중에도 비구니(승) 비구(승)가  한 사찰에서 도량을 닦으시는 모양입니다.

일반인의 편견이겠지만 단아하고 갸날프고 아릿다운 비구니스님을 보니 왜 그리 가슴이 저릿하도록 아리는지 모를 일입니다.

제일 친하면서 유일한 제 친구도 나이가 오십들어 운문사로 들어갔거든요,.  그렇게 나이 들어 운문사로 들어갔으니~~

발우공양하는 내내 친구를 생각했습니다. 눈물이 핑~~ 돌기도 했습니다. 

 

 

 공양을 마련해주시는 비구니스님들의 손길이

 저희들 눈에는  마치 승무를 감상하듯....나붓나붓하였습니다.

조신조신.....바라보는 저희들이 외려 숨이 터억 막혀왔습니다.

저희를 위해 마련하신 공양은 소찬이지만 정갈하고 담백했습니다.

 저희들은 모두 공양이라는 이름의 퍼포먼스에 함께 동참한

행위예술중입니다.

 지도법사, 진봉스님이 발우를 펴십니다.

모두들 처음인지라 다들 따라하기도 무척 어렵습니다. 

비구니스님의 고운 손길이 일일이 도움을 주십니다. 

 펴기도 어려운 발우~

스님들의 발우는 나무로 깎아만든 것이고 저희들 것은 메라민입니다. ㅎ~

잘못해서 스님의 발우를 가지고 온 것과 비교를 하니

스님들이 사용하는  발우는 정말  멋지고 아름답습니다. 

저는 갠적으로 

발우를 따로 설거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제일 궁금했더랬습니다.

청수를 나눠주시면 그릇과 수저를 먼저 조용히 헹굽니다. 

 밥을 받으면 머리까지 들어서 감사의 예를 표합니다.

제게 건네주시는 밥입니다. 

전체의 밥을 먼저 나누고는 가반(加飯)하라고 권하시는 중입니다. 

익일 비구(승)님의 공양수발은 가반시 총알처럼 스쳐 지나가십니다.

말씀도 웅얼웅얼.,....가반하십시요가 아니라....더 달라면 안돼로 들립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

웃자고 하는 소립니다.

그만큼 비구니스님과 비구스님의 공양수발 느낌은 천양지차입니다. 

아버지가 차려주시는 밥과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 그랬습니다. 

국은 따로 나오고 찬은 이렇게 4찬이 나왔습니다.

순두부가 간이 슴슴해서 담백하고 다음날 아침 냉이 향이 아주 좋았습니다. 

다음날 된장국은 된장에 콩알이 그대로 보입니다.

아마도 이 큰 절에 메주를 쑬 때 일일이 손으로 다 만든 것 같았습니다.

기계로 만들면 콩딱지가 없거든요.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래서 더 진짜를 먹고 왔다는 자랑입니다. 

 

 김도 직접 구웠는지 맛있다고 다음날 아침에는 다들 욕심을 냅니다.

아~~ 저 무서운 단무지...@.@ 

 

 

 

 밥을 주시는 스님의 뒷태를 보세요. 두 발은 가지런히 모으셨습니다.

전 저런 자세로 다섯분에게만 밥과 국을 퍼주고나면 그로키상태가 될 것 같습니다.

소식으로 드신 분들이...대단도 하십니다.

물론 속세의 저는 과잉으로 늘어난 뱃살이 저런 자세를 유지하기에도 힘들고요! 

 "감사합니다"

 각자 찬들을 먹을 만큼씩만  조용히 덜어서 담습니다.

요 정도로 먹어야 심신이 가벼울 것 같은 

이 발우는 제 공양발우입니다.

많이 먹어서 축척되어 거꾸로 독이되어 나를 치는 병이 없을 것 같습니다. 

 

 죽비를 세 번 치시면 공양 발원문을 합송합니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수고로움이 담겨있습니다.

이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먹겠습니다. ----

 

공양을 준비하고 공양하는 곳을 후원이라 하고(식당)
  공양간은 밥을 하는 곳이군요. 공양간은 주방을 뜻하는 말임을 배웁니다.

 공양주 스님들은 임무완수를 다 하신 듯....커튼을 닫아 가리고  공양이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큰사찰에는 공양주스님이 여럿이고  작은 사찰에는 신자들이 도맡아하는 공양주보살들이 있다는군요.

요즘 작은 일반사찰에는 공양주보살을 구하기 어려워 중국동포를 쓰기도 하지만

사람 구하기 어려워 곤욕도 치른답니다. 

 이 공양은 다음날 아침공양입니다. 냉이두부 향이 좋습니다.

단무지는 하나 남겨두어야 합니다. 

김이 맛있다고 욕심 부리는 옆사람 발우입니다.

김으로 뒤덮혔습니다.  제 것 다 먹고 한 장 더 달라고 무언으로 말했더니

죽어도 안줍디다 ㅠ,.ㅠ 

 깨끗이 다 먹은 후에는 단무지 하나를 남겨 그릇을 닦습니다.

깨끗이 돌려 닦아냅니다.

전 이 물을 마시는 줄 알았는데 마실물은 따로 받습니다.....

이 물은 버리는데 진봉스님이 받아온 양동이에 찌꺼기가 있으면

그 줄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나눠 마셔야 한다시는 엄포에 윗물만 버리고 찌꺼기는 단무지와 함께 먹었습니다. ㅠ.ㅠ;;

발우를 깨끗이 닦아서 처음처럼 차례대로 잘 쌉니다. 

 공양이 끝나면 죽비소리에 맞추어 다시 합송을 합니다.

 -이 공양의 고마움을 마음에 새겨 사회 대중을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죽비 3번 합장 후 일어서서 발우 장소에 가서 자기 자리 번호에 공양그릇을 넣어둡니다.

 

 선암사 지도법사이신 진봉스님의 가르침따라ㅡ

죽비소리의 차례따라 발우공양 체험 잘 하였습니다.

 

공양

공양시간이 되면 소종이 울리고 모든 대중스님들이 공양간으로 모여 발우공양을 합니다,

발우란 양에 알맞은 그릇이라는 뜻으로 4개의 그릇에 각각 밥, 국, 반찬, 청수를 담습니다.

똑같이 나눠 갖는 평등, 낭비없는 절약, 공동체 단결과 화합 등을 이루는 마음으로 고양을 합니다.

공양의 시작은 죽비에 맞추어 시작하고 자기의 공양그릇에 담긴 모든 음식은 한톨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야 합니다.

식단은 마늘 등 자극적인 오신채가 없는 채식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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