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가에서 바라본 윤증고택 전경. 사가 정원에 자리한 연못치고는 그 규모가 꽤 크다. 원래는 연못 주변으로 담장이 있고 솟을대문도 있었다는데,

그사이 다 무너지거나 소실되고 지금은 전체적으로 담장이나 경계물 없이 꽃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을 뿐이다. 좀개구리밥이 연못 전체를 다 덮고 있다.

 

 

예정에도 없던 프로그램이다. 잠깐 부근에 있는 고택을 들러갈 것이라 한다.
名題도 헷갈렸다. 파평윤씨 문중 고택이라 해서 윤중고택인줄 알았다.
논산시에서 꼭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에 우리는 멋모르고 갔다가 눈도 마음도 카메라 렌즈마저 즐거워지는 살아 숨쉬는 고택을 만났다.

후손이 아직도 부지런하게 기거하고 있는 집이라 빈껍질이 아닌 윤기 반질반질한 아름다운 고택을 만났으니 아름다운 한옥을  피사체로 신들린 사람들처럼 우리 모두는 렌즈에 고택을 담느라 말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채 뒤로 돌아가면서 장에다가 깨끗히 빤 수건이 차곡히 놓여있고 치솔들이 있어도 그저 고택체험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그 곳을 벗어나 육군항공학교 쯤 이르렀을 때 나는 아차 싶었다.
3년 전인가 인터넷으로 논산 명재고택을 접하고는 가보고싶은 마음에 형제들에게 논산으로 가자고 전화까지 넣었다.
논산까지? 거기에 머시기 입영할 때 갔더니 아무것도 없던 걸....<아냐 그 게 아냐~~> 하며 반론을 제기하다가...

내 마음에 불만 지르다가 그냥 잿불 사그라들 듯,  그렇게 잊혀져 간 그 곳!   바로 몇 해 전만해도 간절히 가보고 싶었던 그 고택임을......

 

명재고택이 바로 윤증고택임을.....윤증선생의 호가 명재임을.....아!! 그렇게나 가고싶었던 곳을 돌아서서야 알아보다니,

그리운 이를 앞에 두고도 지나친 무심함~~ 그리웠던 님을 미처 못 알아채고  돌아선 마음이 이토록 쓰릴줄이야~~

 

 

 

 

 

▲ 사랑채로 가는 가운데 길과 안채로 들어가는 길(좌)이 나뉜다.

왼쪽 측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 정면에 보이는 한 칸 높은 건물이 사랑채 누각. 

 

17세기 말 소론의 거두였던 명재 윤증(明齎 尹拯) 선생의 사가인 윤증고택. 조선시대 상류 양반 가정의 주택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는 이 3백 살 가까운 고택에는 대를 이은 두 명의 종부가 한 편의 수묵화같이 깊고 단아한 풍경으로 살고 있었다.

 

논산명재고택은 조선 숙종때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는 조선시대 상류 양반가정의 표본이 되는 주택으로 안채는 ㄷ자형, 사랑채까지 포함된 구조는 ㅁ자형의 목조와즙단층건물이다. 안채 북쪽중앙의 대청은 정면 5칸 측면 2칸이고 대청과 연결되어 뒷편 좌우에 고방이 있고, 대청의 서쪽에는 안방(2칸X1칸)과 웃방(1칸X1칸) 그리고 남쪽에는 넓은 부엌이 있고 부엌 위에는 다락이 있다. 대청 동쪽으로 건너방과 웃방 남쪽으로 부엌이 있다.
사랑채 정면 4칸 측면2칸 규모에 2칸통의 대청과 누마루가 꾸며져 있고 중앙의 2간×2간 규모에는 온돌방을 만들고, 온돌방 뒤에 고방과 또 다른 방이 연결되어진다.
특징 안채의 ㄷ자와 행랑채 사랑채가 연결되어 ㅁ자형을 이루며, 대청, 누마루, 고방등의 배치가 검소하고 품위가 있으며, 지붕틀의 특수한 형태는 창경궁의 연경당과 같고, 평면배치, 구조적인 연결, 창호의 처리는 기능성과 다양성이 있다.

 

명재 윤증 선생은 ‘백의정승’으로 불린다. 평생 과거 시험에도 응시하지 않고 벼슬길에도 나가지 않았으나 학문이 높아 세상에 알려지고, 열여덟 번이나 벼슬을 제안받았으나 끝끝내 마다했던 이력 탓이다. 선생을 시조로 모시는 파평 윤씨 노종파의 종갓집이 바로 윤증고택이다. 충남 논산군 노성면 교촌리. 눈앞에 마주한 윤증고택은 생각보다 훨씬 단아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벼슬을 마다하고 학문에 정진했던 학자의 고가다운 정갈한 기품이 느껴지는 외관이었다.

 

안채 대청에 앉아 바라지문을 다 열면 바라보일  뒷마당 장독대가 시골집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뒷마당에서 바라지문으로 대청 마루를 엿보다.

 

광채

안채 서쪽에 위치한 이 건축물은 전면 4칸과 측면 2칸의 규모로 안채(부엌) 쪽으로 출입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부엌 쪽에서 주로 사용함을 알 수 있고 각종 세간살이를 보관하는 곳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도 마루가 있어 수납공간의 기능을 세간살이의 종류에 따라 구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도록 공간의 가변성을 보여주고 있다

 

서쪽 곳간채와 이루는 긴 통로, 지붕 처마가 비스듬하다.

그 이유는 남쪽의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해를 받아들이고

뒷쪽이 좁아지는 것은 북풍을 막고자 함이다. 광채와 부엌이 서늘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건축구조에 고개를 갸웃해서 바라보는 나....드나들 햇빛과 바람의 통로를 잘 알고 이렇게 지었다면 가히 깜짝 놀랄 일이다!!

분명 북쪽 길목 통로도 처마끝도 좁아지는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보면 넓이가 반듯한 통로가 된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만.....그리고 찍힌 사진으로만....귀신 곡할 노릇이다.

해설사도 요즘 발견한 사실이라는데...도깨비통로?

모두들 신기해하며 걸어보고....렌즈에 담아보고...

종이함지박...집안 곳곳에 오래 된 물건들이 산재해있다.

 

안채

안마당은 널찍하고 반듯하며 정갈하다. ㄷ자형의 안채가 정갈하게 자리잡고 있다.

기둥 사이의 간살이가 넓어 보인다. 편안하게 구조된 것이다.

 

 

바라지문으로 뒷마당 장독이 보이고.

좌우 도합 3개인 바라지문을 다 열면 한 여름 더위도 물러갈 대청마루!!

 

가운데 (우측을 향해있는 가운데 문)창살이 드러난 이 창을 불발기창이라 부른다.

 불발기창은 집에 따라 그 살대의 꾸밈이 다르다.

안채에서의 일품구조는 양명한 햇볕이 가득한 넓은 대청이다.

바라지창을 활짝열면 후원이 다가선다.

육간대청이라 하면 썩 넓은 대청을 의미한다. 이집 대청은 8칸이다. 육간보다 2칸이 더 많다.

우물정짜로 잘 짜여진 마루판!

 

 

 

 

▲그 유명한 간장 맛의 비결도 바로 이 샘물에서 비롯됐나 보다.

윤증선생댁의 첫 인상은 아무래도 정갈하게 놓여진 많은 항아리가 먼저 들어온다.

이 댁의 <전독간장>은 300여년간 항아리채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 전독간장 이라 불려지고 노서(윤선거:명재의 부) 종가만의 전통법으로 전수되는 명품이란다.

교동(校東)이라고 불리는 별칭은 향교가 고택옆으로 이전하여 오면서 향교의 동쪽에있는 집이라서 얻은 것이며, 간장을 달이는 날에는 온 동네에 장 냄새가 진동을 하여 몸져 앓아 누워있는 환자도 교동댁의 간장 좀 먹었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할 정도로 간장의 명성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게  신빙성 가는 사실은 장단지가 많은 곳을 그렇게나 많이 드나들어도 장내의 특유한 짠내와 꼬릿한 냄새가 있는데, 이 댁만은 유독 달큰한 장맛이 느껴지는 곳은 처음이었다.  아직까지도 모든 장을 담그는 내가 느끼기에도  장맛이 단 집!!  인정!

 

사랑채, 사랑으로 드나드는(좌측문) 우측공간

누각 내부. 사랑채 삼면이 창이라 문을 열면 더할 수 없이 바람이 시원하다

 

  여닫이 미닫이문 

여닫이 미닫이

경복궁인가 여닫이 미닫이가 있고 사가에서는 국내 유일한 자료라고 한다.

사랑방 아랫목 북쪽 뒷방으로 들어가는 샛장지이다.

만살창으로 만든 네 짝의 미닫이인데 가운데 두짝을 좌우로 밀어 끝의 짝에 겹치게하고 열면 여닫을 수 있다.

밀고 열고...또는 문 자체를 떼내기도 할 수 있는 다용도 문이다.

해설사가 서 있는 곳에  음식을 두면 문을 밀고 사랑안으로 옮기는데...상이 클 경우

문을 열기도 하고...또는 작은 단독의 공간이 필요할 때...문틀채로 떼내서 공간확보를 할 수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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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재미로 찍은 사진 2장   左는 무슨 벌렌지 궁금하고....

右는 방충망에 붙인 엽전이다. 엽전을 붙이면 모기가 방충망에 드러붙지 않는 모양이다.

정성스럽게 꿰어 매달아 둔 정성을 보면....ㅎㅎㅎ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306번지 ☎041-735-1215

*큰사랑 : 12만원
*작은사랑, 안사랑 : 각8만원
*작은사랑과 안사랑 : 15만원
*사랑채 전체(큰사랑,작은사랑,안사랑,누마루) : 40만원
*건너방(마루방포함) : 15만원
*초가(방2개, 단독화장실) : 15만원
*작은도서관(세미나 및 작은공연 가능, 방1개) : 30만원

 

 

 

종학당 시도유형문화재 제 152호

충남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95-1

파평 윤씨 문중의 자녀와 내외척, 처가의 자녀들이 모여 합숙교육을 받던 교육도장이다. 인조 21년(1643) 윤순거가 문중의 자녀교육을 위해 세운 후 종약(宗約)을 제정하였다. 화재로 인해 없어졌다가 1970년 윤정규가 지금의 종학당을 다시 지었다. 앞면 4칸·옆면 2칸으로 가운데 2x2칸은 대청을 겸한 트인 마루를 두었고 양쪽 칸은 방을 설치하였다. 1910년까지 운영된 종학당은 일반 서원이나 서당과는 다르게 교육목표와 교육과정을 두고 학칙도 정하여 시행하였다. ※(1999년 ~ 2003년) 4년여에 걸쳐 원형을 복원하고 주변정비를 하였다.

 

 

우리가 당도하였을 때는 글읽는 소리가 낭낭하였다.

집이 흥하려면 글읽는 소리와 애기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된다는데....

 파평윤씨 자녀와 내외척 처가까지....가 아니고 요즘은 일반인들도 일주일씩 수강 신청을 할 수가 있다 한다.

환경이 이런 곳에서라면  여름 학당스테이로도 꽤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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