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석불좌상
백제 불교문화를 제대로 알려면 부여정림사지 박물관에 들리고 오층석탑을 반드시 둘러 봐야만 한단다.
부여정림사지는 지금 발굴 중, 정림사가 아니라 정림사지라함은 절은 없고 빈터만 남아 있어서다.
정림사 박물관은 어린아이서 부터 어른가지 불교문화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시도했다.
퍼즐맞추기라든지 영상관이라든지 벽에 걸린 지도위를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설명하는 브라운관이라든지 여러 형태의 디오라마라든지... 불교는 우리 민족들에게 스며든 역사가 하 오래되어선지 익숙하긴 하다.
백제 불교와,,,고구려를 거쳐 신라로 들어온 불교의 경로는 중국이지만 길은 달랐다.
박물관은 불교를 이해하고 불교와 친숙해지는 공간이다.
불교의 문양을 돌로 깍은 퍼즐로 이어맞추기 하며 그냥저냥 한 바퀴 잡담하며 둘러나와도 좋을 아주 편한 공간으로 만들어 둔 것 같았다. 보기에 아주 좋았다.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은 돌인데도 그 느낌은 부드럽다.
마치 낯 선 사람과의 첫 대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낯설지 않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6월 뜨거운 뙤약볕에 그늘을 벗어나기가 무서웠지만 오층석탑 뒤로 보이는 곳이 부쩍 궁금해졌다.
가까이 다가서자, 어떤 놀라움!!
천년의 세월을 견디다 못해 불타고 사라진 정림사지에서 찾아내어 조각을 맞추었다는 석불....
그 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왜 나는 한하운님의 시가 떠오르는 걸까? 坐佛이 아니라 다리가 문드러진 그런....욕되게도 그런 생각이 듦은 어쩔 수가 없다. 마침 하늘위로 새가 날아올랐다
한하운님의 파랑새?...........난, 백제의 불교지에 와서 천년역사를 가진 석불 깨어지고 문드러진 , 역시 님의 전라도길을 떠올렸다. 발가락이 빠진 게 아니라 무르팍이 다 닳아 없어진 형상이다.
어찌보면 돌하르방을 닮아있는 듯 해학적으로도 보이고, 아마도 시대적 불상을 대표하는 거겠지 생각한다.
불상은 민중을 닮는다고 한다, 아마도 그 시대의 백성들이 이렇게 얼굴이 둥글고 평온하였지 싶다.
마침 누군가 수박 한 덩이 보시한 것이 사진상 그 크기를 가늠하기 쉽게 한다.
연좌대는 그런대로 모양이 살아있어 뭍사람들의 기도의 손길이 닿아서 반질반질 윤이났다.
파아란 하늘에 구름은 둥둥..흘러가고... 옛날의 흔적을 되찾으려도 오층석탑과 석불좌상은 아무 말이 없고
아직 발굴중인 정림사지 빈 공터엔 개망초꽃, 강아지풀 금계국이 바람에 흔들리며 피고 있었다.
글/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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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상공에 잡힌 새 한 마리
이 석탑은 익산(益山) 미륵사지(彌勒寺址) 석탑(石塔)과 함께
백제시대(百濟時代)에 세워진 귀중한 탑으로,우리나라 석탑의 시조(始祖)라고 할 수있다.
정림사지 5층석탑
* 위치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 건립시기 : 7세기 중반
* 크기 : 현재 높이 8.8m
* 국보 9호
* 특징 : 백제 석탑의 정형화된 모습을 볼 수 있는 대표적 석탑이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9호로 지정되었다. 흔히 백제오층석탑이라고도 한다. 화강석으로 되었으며, 높이는 8.33m이다.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기만 남아 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다.
좁고 얕은 단층 기단(基壇), 사각형 우주(隅柱)에 보이는 엔타시스의 수법, 얇고 넓은 각층 옥개석(屋蓋石)의 형태, 옥개석 각 전각(轉角)에 나타난 반전(反轉) 등이 목조탑파(木造塔婆)의 구조와 비슷하며, 또한 이런 점이 특징이다.
제1탑신(塔身) 4면에는 당나라의 장군 소정방(蘇定方)이 백제를 평정한 후에 새긴 기공문(紀功文)이 있어 속칭 '평제탑(平濟塔)'이라고 불리어지기도 하였다.
각부에서 보여주는 특이한 양식은 한국 석탑 양식의 계보를 정립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다. 세부 수법은 맹목적인 목조양식의 모방에서 탈피한 정돈된 형태의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이며, 전체가 장중하고 명쾌하여 격조 높은 기품을 풍겨 후세에 모방품(模倣品)이 많이 나왔다.(검색)
목 윗부분은 찾을 수 없어 근세에 맞춰넣은 것이라 한다.
정림사지 박물관
정림사지 (부여)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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