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새벽예불을 드리다.

 

 

 

 

 템플스테이 첫날 밤 잠자리를 배정받았습니다,
진봉스님께서는 그저 남,여 방만 따로 배정해주려 하시지만 나름 여행자들의 내밀한 사정들을

잘 아는 터라...진봉스님 등뒤로 돌아가서 간절한 말씀을 드려본다.

<실은 스님, 부부 방이 필요합니다>
<부부가 왜요?>
<대화가 절실히 필요해서요!>
<그러지요~> 선선히 허락하신다.
그러자니 또 한 부부가 걸린다. 그렇게 방은 애초에 두 개에서 5갠가 6개로 늘어나고
산사의 윗채까지 어두운 밤길을 벌써 접어든 사람도 있고 나머지는 승합차를 타고 올라갔다.

새벽예불을 드릴 사람은 해우소 옆에 있는 요사채로 인도되었기에

인솔자인 나도 새벽예불을 함께 해야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뚝 떨어진 산사 별채까지는 올라가지 않았더니 방 하나는 새벽이 되도록 냉골이었다 한다.
늘 뜨뜻한데서 편히 잠자고 생활하다가 절집 냉골방에서 온기 보시를 한 셈이다.
참으로 죄송스러웠지만...새벽예불 드릴 사람들이 (7~8명)묵은 방은 무척 따뜻했다.
........

 

황사경보가 내릴 정도로 심란한 날씨였다.
서울은 낮하늘이 밤같이 어두워지면서 황사비도 흩뿌리며 외출하기가 무서운 공포속의 하루였다 한다.
이 곳은 순천만에 머무는 오후에 잠시 흐리더니  밤새 바람이 유난하다.
산사에서 밤내내 나뭇가지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의 울음소리를 듣느라...잠을 설쳤다.
잠깐 잠이 들었는가 싶은 순간 새벽 3시 인경에 접어들자 순라꾼처럼 목탁을 두드리며 조용히 예불 참여자들을 깨웠다. 

그 게 <도량석>이란다.

 


 

새벽 3시 목탁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립니다.
도량석을 하는 이유는 산사의 모든 생물체를 깨우는 행위입니다.
대웅전 앞에서 시작하여 도량을 한바퀴 돌아 다시 대웅전 앞으로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정도 소요됩니다.

도량석의 시간은 사찰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새벽예불은 금고의 종성으로부터 시작하여 불전사물을 치고 불전사물이 끝나면 50여분간 새벽예불이 진행됩니다.
사찰에 사는 비구.비구니는 물론 우바새.우바니까지 전대중이 참석합니다.

 


절집을 누비고 다니던 밤 바람은 우리처럼 늦은 잠에 빠졌고 산사의 새벽날씨는 한겨울처럼 쨍하게 추웠다.  밤새 윙윙대며 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황사를 멀리 일본까지 쓸어 보내느라 그렇게 밤내내 청소를 했었나보다.

다음날 아침은 가을하늘처럼 푸르고 청명했다. 이 세상에 이유가 없는 게 어디 있을까?

우리가 이렇듯 무슨 인연으로 순천하고도 선암사까지 흘러 들었는지....

 

새벽 도량석에 모두는 졸린 눈을 비비고 바깥으로 나섰다.

절간에 늦게 들은지라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채 소리만 듣고는 홀리듯 따라갔다.

요란한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보니

추워서인지 문은 닫기고 벽 위에는 창으로 터진 곳에서  나는 소리!!

새벽을 깨우듯 하는 대단한 소리의 발원지를 찾았건만 보이지 않아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엊저녁 진봉스님께 법고시간에 맞춰 사진을 찍겠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법고를 두드리는데 그리많은 인원들이 시각을 기다리며 오랜시간을 숙연히 기다리는 줄 몰랐다. 

순서는 먼저 금고의 종성으로 불전사물을 치고...법고를 친다고 하는데  감히 어줍잖은 취재로 카메라 들이대기가 그렇다.

후레시없이 몇 장 찍었지만 워낙 캄캄한 밤중인데다 따뜻한 방에서 금방 나온 추위에다가 사진은 모두 흔들려서 사용불가였다.

새벽예불하는 대웅전을 찾아가느라...더듬거리다가 갔더니 스님들은 연신 108배를 하신다.
난 또,,새벽예불을 드리겠다는 참관자들이 불교신자들인 줄 알았다. 7~8명 중에 보살은 단 한 분~ 이 어이없이 생뚱맞은 발상은  어디에서 왔는지?  모두는 108배도 제대로 드릴 줄 몰라 허둥지둥~ 곁눈짓으로 스님들  따라하기에도 급급하다.
절 한번에 유체이탈, 방석이탈~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일배드리고 날 때마다 커다란 방석자리를 벗어나기 일쑤다.

스님들은 한 눈이 아니라..반 눈에도 처억하니 알아보셨을터~~108배 드리는 폼새 하나로도 몇년차 신자라는 걸 아시고도 남을터인데...
오늘 새벽 템플스테이 예불참여자는 <ㅉㅉㅉ!!! 고단할텐데...걍~ 더 자지 왜 새벽에 깨어서 나왔니?>

그런 말을 들을 정도의 말짱 .....노랑 병아리들이다.

그것도 걸음마도 제대로 못떼면서  절집에 왔으니 절집에서 하는 예식을 따르려는....천진난만한 애기들 같이 ,,,

부처님 보시기에 얼마나 기특하며 귀여웠을까?~~ ㅎ`ㅎ`ㅎ`

꿈보다 해몽이다.
  

 

대웅전을 찾아 더듬대며 나섰다. 밤동백이 화사하다.  

 

예불 준비를 하는지 문이 활짝 열리고...

우리는 소리나는 곳으로 뭔가에 이끌리 듯 '

몽유병자들 처럼 선잠에 취한 듯  어찔어찔대며 몰려갔다. 

금고의 종성인가?

비록 문도 닫기고 담장이 가로막았지만...그 소리의 울림은 아직도 공명음으로 이명인 듯 남아있다.

새벽을 깨우는 소리였다. 그리고 종루의 불전사물이 끝나고(후래시없이 사진이 흔들렸음) 우리는 대웅전을 찾아들었다. 

 보물인 삼층석탑이 있는 대웅전 마당이 캄캄하다.

 

선암사에는 세가지가 없다하여

 선암사 三無 

첫째--사천왕문

          일반적으로 사찰 일주문을 들어서면 사천왕문이 있으나 선암사에는 사천왕문이 없다.

        이유인즉 두가지설이 있는데,

    1. 조계산의 주봉이 장군봉이라 장군이 지켜주기 때문에 불법의 호법신인 사천왕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2. 일주문과 범종루사이가 너무 협소해서 사천왕문이 들어설자리가 없어서 만들지 못했다는설이다.

 

둘째--주련

       주련이라하면 대웅전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로 기둥(柱)마다.

        시구를 연달아 걸었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내용은 부처님 말씀이나 선사들의 법어가 주 내용인데

       주련은 부처님께 다가가기 위한 또 하나의 관문이라한다.  이러한 주련이 선암사 대웅전에는 없다.

       선암사는 개구즉착(입을열면 들린다)라고 하여서

       곧 깨달으면 말이 없다는 뜻으로해서 주련을 달지 않았다한다.

 

셋째--어간문

        어간문이란 대웅전의 정중앙에있는 문으로 다른 사찰에는 정중앙문에도

         사람의 출입이 가능하지만 선암사에는 부처님처럼 깨달은 분 만이 어간문을 통하여

         통과할수 있다고 하여 어간문을 만들지 않았다한다. 

 

참조/맨위엣 사진을 보면 큰스님 뒷쪽으로 사람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문턱이 아주 높다.

 

 

 

문화재로 등록된 선암사의 해우소 

 

내가 느낀 절집 해우소의 느낌은 외관은 아름다웠고 내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 낭패를 어찌하랴~ 배변구가 크고 높아서 빠질까 무서워서 앉아 정호승님의 싯귀처럼 울기는 커녕 이 큰덩치가 덜덜 떨렸다.

나중에사 다시 확인한 바로는 여자화장실 세군데 중에 제일 첫 군데가 큰 어른용이고 그 다음이 작고 그 다음은 더 작아 어린이용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절집에는 어린이들도 드나드는 곳인데... 지레 큰 배변구만 보고 겁을 먹었던 내 자신이 멋적다.

사진을 좀 더 제대로 찍질 못한 게 제일 큰 아쉬움 중에 하나다. 

 

 

정호승님의  ‘선암사 해우소'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사진빌려옴

 


 

 

 

 단 하나 건진 사진은 겨우 쭈그르트리고 앉아 찍은 글귀는 <파리야 극락가자>

 쪼그리고 앉으면 저 창살로 바깥 수풀의 녹음이 보인다.

 

정일근 ‘선암사 뒷간에서 뉘우치다’

 

템플스테이의 새로운 경험은 단 며칠일지라도 사람의 시야를 바꿔놓을 수 있다. 음식을 먹고 나면 단무지로 그릇을 닦아 깨끗이 비운다. 발우공양이다. 오체투지(五體投地)로 탑돌이를 하노라면 온몸은 땀에 젖고 옷은 흙투성이어도 마음은 가뿐하다. 촛불을 켜 들고 범종 소리를 들으면 온몸에 전율이 울려 퍼진다. 깨달음은 해우소(解憂所)에도 있다.

‘무위도식의 오후, 불식(不食)을 했다면 선암사 뒷간으로 찾아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녁 예불시간 뱃속 근심이 큰 장독에 고인 물처럼 출렁거려 뒷간에 앉는다. 사실 나는 내 죄를 안다. 그리하여 범종소리 따라 한 겹 한 겹 밀려와 두꺼워지는 어둠에 엉덩이를 깔고 뉘우친다…뒷간 무명(無明) 속에 발 저리도록 쪼그리고 앉아 진실로 뉘우친다// …근심은 버리려 하지 말고 만들지 말아라. 뒷간 아래 깊은 어둠이 죽비를 들어 내 허연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친다…나는 내 몸의 작은 뒷문 하나 열지 못하고, 단 몇 푼의 근심조차 내버리지 못한 채 선암사 뒷간에 쪼그리고 앉아 뉘우친다.’

 

해우소에 쪼그려트리고 앉아 울긴 커녕 후들거리는 다리로 바깥에 나오자니

내 스스로 심히 부끄럽고 안쓰럽다. 

밤 적막을 깨트리며 쫄쫄쫄~~ 물 흐르는 소리로  돌확이 대신 울어주고 있었다. 

   

공양간엔 불이 환하다. 벌써 스님들 아침 발우공양할 시간이 다가오나보다. 

나무도 공양을 하려는지...길다란 그림자로 계단을 올라  공양간 안 깊숙한 곳까지 기웃대고 있다.

 

하룻밤 절집에서 신세지며 묵고는 가지만 우예된 심산인지 잠은 한 숨도 못잤다.

안그려도 버릴 게 너무 많은데 입으로 먹고 또 눈으로도 잡다히 너무 많은 걸 포식하여 도저히 편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채 버리지도 못하고 뛰뚱거리며 산을 내려오는 내 뒷자태를 보며 누군가 희죽 웃었을테다.

비웃었을까? 아니다. 하물며 그악스런 파리도 극락가자는데 ....

이 못난 중생에게도 어찌 그 흔한 덕담 한 말씀 없었으랴!!

 

 

글/나비야 청산가자/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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