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역을 찾아갔다.
화본역(花本驛)은 경상북도 군위군 산성면 화본1리에 위치한 중앙선 간이역이다.
1938년 일제 감점기때 지어진 역사라 증기기관차의 급수대와 역사가 일제시대 건물로 보존이 되고 있는 곳이란다.
끝간데없이 이어진 간이역의 철길을 바라보노라면 그 무엇에 대한 향수, 아련한 그리움과 이어져있음을 느낀다.
어릴적 철로길에 귀를 대노라면 뭔가 다른 세상 끝하고 연결 되어졌을....이상향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었을테다.
기차를 타면 기차가 먼-꿈속의 세계로 데려다 줄것만 같은.....그런 묘한 그리움이 있었다.
어찌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복잡한 역에서 그런 생각이 들까?
한적한 간이역, 그 모퉁이에 혼자 가만히 기차를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은 그런 생각이 이어져 끝없이 달려가는 추억!!
누군들 그런 아련한 추억 한 자락 없을까보냐~
찾아가는 화본역에 대한 미리 얻은 정보라야 기껏
역 구내에 급수탑이 아직 남아 있으며, 화본역은 산 속에 둘러싸여 접근성은 상당히 떨어지지만 하루에 상행 두번 하행 두번이지만 교통이 발달되지 않아
아직은 주변마을 사람들의 의존도가 높다 한다. 역 광장에 박해수 시 '화본역'의 시비가 있다며 해설사님은 정말 산첩첩 물겹겹인 군위군 화본 간이역의
젖꼭지같은 詩를 낭낭히 읊어주는 속에 도착한 버스는 화본역마당에 우리들을 게워놓았다.
처음 맞닥뜨린 화본역은 핑크빛으로 아담하게 단장되었다.
예전의 모습은 탈피하여서 아름답다고 표현하기에는 좀 그렇긴하다.
여느 간이역처럼 그저 깨끗하고 앙징맞고 고즈넉하다.
그런데....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라!!
마치 지금은 다 늙어버린 나를...내 모습을 누군가가 실눈을 지그시 뜨고 아득한 시절, 그 예전의 아릿따웠던 젊은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기억해 내려는
情人의 자세로 말이다. ㅎ~
필자는 어릴적 일본인의 주택에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다 보냈다.
역사가 이제는 세월의 뒤안길에서 본래의 제 모습을 잃고 많이 변모했지만 일제강점기의 젊은 시절의 아름다웠을 驛舍의 모습을 작금에 손에 잡힐 듯
반추해 본다는 것은..... 내겐 하나도 어려울 게 없는 나잇살이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과연 역사의 옛자태를 제대로 가늠이나 할 수나 있을까?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절을 미처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화본역사는 그 옛날 일인들의 건축물이 다 그러하듯, 아름다운 목조건물이었을테다.
지금은 이중 하이샤시 구조로 되었지만 격자로 짜여진 자잘한 나무로 이어진 홑 유리창문이었을테다.
요즘에사 유리가 잘깨어지지도 않고 한 번끼우면 갈아낄 일도 없어 실리콘으로 고정시키지만....예전 유리야 어디 그런가?
둘러보면 깨어진 유리창은 꼭 있기 마련이고 유리창도 자잘해서 증기기관차가 무서운 굉음을 내며 드나들 때마다 자그마한 유리창들이
일제히 사시나무 떨 듯 덜덜대며 달그락거렸을 것이다.
아니, 좋게 표현하자면...드나드는 기차에게 환호의 박수갈채를 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처럼 지붕의 모습은 아니고 기와지붕이었을테다.
벽돌로 지은 집도 아니고 쪽을 낸 대나무를 지지삼아 그 속에 흙을 채운 나무와 흙으로 만든 건물이었을 게다.
역사의 정면은 손님들이 하나 둘 모여들므로 가운데 현관지붕은 비맞이 정도로만 되어있고 역사 뒷쪽은 한꺼번에 내린 승객들의 집표를 할라치면
역사구조는 테라스 지붕처럼 돌출되어 있어서 한꺼번에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의 비나 눈을 가려주어야 할 것이다.
나무기둥으로 덧댄 테라스의 형태가 잘 보존되어 정감을 불러 일으켰다.
역무실로 들어갔더니 반갑게 맞아주셨다.
기차여행을 하려면 이왕지사 이 곳에 내려 어떤겅로의 교통을 이용해야느냐고 여쭈었더니....난감해하시는 낯빛으로
기차가 닿는 시간과 하루에 몇 번 있는 버스 시간대가 맞지 않단다.
역무실에 들어오시면 콜택시를 불러줄 수가 있고 대략 요금은 2~ 30분 거리에 1~1,5000원 정도라 한다.
군위군은 불교문화의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싶을만큼 둘러볼만한 사찰과 문화유뮬이 아주 많은 곳이다.
한 군데는 잠시 들러서 경유하고 두 군데 사찰정도는 한 샷에 너끈히 방문을 할 수가 있을 듯 싶었다.
아쉽지만 기차여행은 그런 경로 뿐이었다.(화본역 ☎ 382-7788 )
필자는 수인선 협궤열차도 타 보았던 증기기관차를 기억하는 세대다.
요즘의 ktx화장실은 마치 비행기의 화장실처럼 페달을 밟으면 무서운 압력에 의해서 소리를 내며 깨끗이 사라지는 그런 화장실이다.
그 때는 증기기관차의 화장실은 높이가 달랐다. 덜컹거리는 열차, 퀴퀴하고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찌르는 좁은 화장실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바들바들떨며 높은 곳에 딛고 올라서면 화장실의 구멍은 달리는 철로가 휙휙 지나가는 그런 화장실이었다.
아참참!! 미리 옷을 대충 벗고 올라서야지 위에서 두 손을 이용해서 옷을 벗다가는 화장실 바닥에 내다곤지르기 쉽상이다. 그 요령이이 매우 중요하다.
철로위에 배설물이 비명을 내지르듯....흩어져 산산이 부서지던....
지금의 철로와는 좀 달랐다. 역사내의 철길은 그 골이 얼마나 깊이 움푹 패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기차가 역구내에 들어올 때와 벗어날 때 사용을 금지했었던....그런 웃지못할 시절도 있었다.
뾰족한 지붕곁에 나무로 굴뚝처럼 만들어진 것이 바로 페치카의 굴뚝맞다.
그 굴뚝과 연결된 건물의 중앙이 바로 손님맞이 방인데 우리나라 계절 특성상 겨울은 길다.
기차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을 때, 이 곳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추위를 녹여주는 난방역활을 했던 벽난로 굴뚝의 모습이다.
지금은 그냥 건물의 기둥처럼 보여져서 아무도 모르고 지나치지만 바로 실내에서 불을 지피는 아궁이 역활을 한 셈이다.
물론 불을 지피는 재료는 증기기관차 시대이니 당연 기차역에는 석탄이 넘쳐난다.
건물은 가벼운 흙벽에 홑 유리창문이지만....상상컨대 철도 역무원들의 방바닥은 절절-- 끓었을테고,
한낮에는 손님맞이 방에 지금은 벽이되어 침묵하고 섰지만 기둥 아래에는 땔거리 석탄과 쇠로 만든 부지깽이와 갈탄에 찌들은 시커먼 쓰레받이가
놓여지고 그 아궁이에는 갈탄 덩어리가 빨간 혀를 낼름거리며 피어오르고 있었을테다.
그 주위에 사람들은 옹기종기 서거나 앉아 세상을 이야기하고 오랜만에 만난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을 것이다.
지금의 그 난방굴뚝(실제의 페치카)은 70년 전의 시치미를 뚝 떼고는 거울을 하나 달고 서 있었다.
단 한가지 의문점으로 가득 찬 것은 증기기관차의 급수탑이다.
70여년의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담쟁이의 흔적이 마치 노파의 주름진 손등처럼 힘줄이 툭툭 불거진것처럼 담쟁이 덩쿨이 그 세월의 궤적을
대변하고 있었다.
급수탱크가 아닐까 생각했던 내 생각은 기우였다. 첨성대처럼 중간 중간 구멍이 숭숭 뚫려져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아름다운 아주 작은 창문이다. 옛 모습 그대로인 창문 맞다.
어떻게 급수를 했을까? 기차가 들어오면 물을 대어야하고 그 물이 있어야 기차위에서 화구에 석탄을 불때고, 그 불로 물을 끓이고 그 증기에서 힘을 얻은
기관차는 '기차화통을 삶아먹었나' 라는 속담을 낳을만큼 정말이지... 어렸던 기집애는 양 손으로 귀를 막고도 공포에 질리고도 남을 만큼의 상상할 수 없는
굉음을 맘껏 내지르며 무섭도록 크고 시커멓고 육중해보이는 쇳덩어리가 탄력을 받으면 가볍게 달려나가는 것을 보았다.
궁금하면 물어봐야한다.
오늘은 포스팅을 하다말고 화본역에다가 전화를 했다.
이우섭님(010-3520-0154) 이 받으셨다. 고맙게도 탑내부의 사진과 그 방법을 알아서 멜로 보내주신단다.
화본역의 궁금점과 아름다움에 흠씬 눌러 앉고 싶은데...그러고 싶은데,
팸투어 화본역을 마지막 여정으로 서울로 향할 길을 재촉하느라....아쉬운 귀경길에 올랐다.
기차역에서 내리면 만나지는 화본역 뒷모습, 아래 집표함이 아직도 있고. 자전거도 어울리는 풍경으로 세워져 있다.
보이는 창문들은 모두 나무문이고 그 나무문에는 자잘한 격자틀사이로 홑 유리창이 끼워져 있었을테다.
지금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난로, 페치카의 굴뚝이 지붕위 나무로 덮씌워진 모습으로 남아있다.
급수대
오랜세월의 담쟁이 넝쿨과 작고 아름다운 창문
급수대 창문은 나무창틀 그대로 온전하게 있는 것 맞다.
화본역 가을풍경
역전앞? 역전상회
이용객들의 숱한 사연들의 발자국이 스쳐지나간 화본역 앞길
코레일의 프로젝트의 하나, 간이역의 아름다움을 살려보자는
간이역의 이름이 '김유정' 시인의 이름을 지니기도 하고....간이역 마다에 시비를 세우기도 하고....
간이역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화본역 이용객은 주로 가까운 신녕과 영천을 오가는 지역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지역인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다.
기차시각 변경 알림표가 나붙었다.
오래된 花本驛의 페치카
지금은 기둥으로 시치미떼고 선 거울이 달린 바로 이 벽의 기둥이 난로였단다.
국화화분이 놓인 자리에 갈탄이 놓여져 있고 그 기둥은 막혔지만 언제나 따뜻한 열기로
열차 이용객들을 추위에서 보호해주는 불길이 붉게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였다고 한다.
역사 앞마당의 버짐나무(푸라타너스)는 붉게 낙엽으로 물든 나무 한 그루와 함께
얼마간 뚝 떨어져 내외하듯 그렇게
시무룩~ 무심한 듯 섰다.
푸라타너스 잎이 푸른 계절에는 그 그늘이 시원한 바람에 흔들리고 있겠다.
푸라타너스를 보니 갑자기....'헨델의 라르고' 음률이 떠오른다.
'옴브라 마이 퓨~♪ 리베제....타아비레~ ~♬'
콧노래를 가만히 흥얼거리며
상경길 버스에 올랐다.
글;사진/이요조
군위군 문화해설사님도 막연히 급수대라고만 하기에
급수조쯤으로 상상, 알고 갔었는데....
막상 현장에서 만나 본 급수대의 모습은 의아하게도 군데 군데 창문이 뚫렸고
내부를 보니 도저히 이해가 불가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우섭님도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증기기관차에다가 급수를 했는지...
님도 자세한 방법은 잘 모르겠다는군요,
이참에 잘 알아보고 멜로 연락을 주겠다 했으니
급수대의 사용방법 전문이 도착하는대로
첨부하겠습니다.
급수대 내부 모습은 이렇답니다.
급수대로 들어가는 문이 없어서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상상을 한 번 해 보세요!!
퀴즈로 낼까요?
.
.
댓글에 요리왕님이 정답을 맞추신 듯 하여이다.
아름다운 사진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그리고.. 수인선 합궤열차가 무언가요? ㅡㅡ? ㅎㅎ
이런일이....수인선협궤열차 대답을 못했군요,
전 40년 전에 타보았지요.수원인천간,,말 그대로 철로가 아주 아주 좁은(표준궤도의 절반인 76cm) 예전 전차길보다 좁은같 길의 기차지요.
그러니 그 열차란 폭이 얼마나 좁은지 상상이나 되겠어요. 전철처럼 마주 앉았지만...사이좋게 바라볼 수 밖에요.
아주 정감이 물씬 풍기던 그런 열차였답니다.
그 당시엔 수인선을 타면 요즘처럼 여행객들이나 카메라를 든 사람은 없구요.
수원과 인천을 오가는 생업에 찌들은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라....기차안은 다라이나 짐보따리들이 사람보다 더 많았지요.
집으로 돌아가는 오후에 데가 탄 듯......아주 분위기는 <하하호호 화기애애>했더랬지요.
배고픔에 싱싱한 오이도 댕겅 잘라 나누면서 말입니다.
여행객인 제게도 건네주었는데요.
그 향기가 아직도 콧끝에 살아있답니다.
서쪽 바다로 난 풍경은 죽 ~ 연이어 눈부시게 흰 염의 풍경이 이어진답니다.
얼마나 신기하고 아름다웠는지....
지금 그대로 보존되었다면 <세계적인 명소>아주 좋은 관광열차가 되었을텐데....
세월은 야속하게도 야금야금 옛것을 다 갉아먹고 시멘트 건물이 자리잡고 텃세를 부리고 있답니다.
...................
훈아님 답글 늦어 죄송합니다. 검색해도 충분한 자료를 얻겠지만 실제 ,협궤열차>를 타 본 세대에게서 듣는 이야기란...더 리얼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