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

 

[불 밝힌 서울성곽 밤에 더 볼만하다.]편을 썼었다.

http://blog.daum.net/yojo-lady/7045922

 

....

 

불을 그렇게 밤새 켜두면 전기세도 있거니와 애써 치장한 조경수들이 죽을 꺼 아니냐는 우려에 허기사 나도 같은 생각이 들긴했다.

 

서울 성곽주변은 인위적인 조경수도 있지만 자연수림이 더 우거져 잘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성곽주변 등산코스는 생각보다 무척 공기도 신선하고 경관도 좋다.

 

나 역시나 소등관계로 궁금증에 못이겨 일차 전화를 넣었더니...성북구 관할이 아니고 혜화문은 종로구 관할이라는데, 알아본즉슨 헤화문, 문루 그 자체는 사대문안이라 종로구 관할이고 성곽은 성북구관할이란다.

 

혜화문을 다시 찾아갔었다.

관리사무소를 보았기 때문이다.

혜화문은 입구가 두 군데인데...얼마전 까지만해도 늘 닫아두었다가(청소년?들의 방화 문제로)

요즘에는 열어두고 있다한다.

 

동소문로로 난 정식 출구와 성북동길로 난 후문이 있는데, 오늘은 헤화성당과 마주 바라보이는 정문으로 올라갔다.

 

향내가 진동을 한다.

아! 오월의 여왕 모란꽃이다.

 

모란꽃은 크게 세군데 나눠져서 군데 군데 흐드러지게 피고 있었다.

혜화문은 정원에 갇힌 모란꽃 신세나 뭐가 다를까?

 

사람들에게 큰 길을 내어주고 뎅겅 잘려나갔다가 이제는 비껴앉아 홀로 외롭게 門樓 는 노프당하게 자리보존을 하건만 사람들은 모두 복잡한 동소문로를 빠져나가느라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마침 봄이라지만 무더운 날씬지라 관리소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인사를 하고 이런 저런 얘기끝에 소등관계를 묻자

성곽은 성북구관할이라 새벽에 끄는 것 같고 혜화문은 정각 자정에 꺼지도록 설정해 두고 퇴근을 한다고 했다.

 

점등은 계절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직접 지켜본 바로는 5월 10일 현재 오후 7시50분에 전원이 들어와서 10분 후 8시가 되자 제대로 환해졌다. 소등역시 자정에 자동 소등되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성곽불은 더 일찍 들어와 있었고....새벽녘에야 꺼지는 것 같았다.

 

혜화문은 ..요즘 그 문이 활짝 열려있다.

도심속에, 둘러보고 쉬었다 갈 수 있는 곳, 누구나 들어가서 헤화문 문루와 그 성곽에도 올라갈 수가 있다.

 

 

사대문안에서 대문 못잖게 빈번하였다는 동소문,

새들도 너무 들끓어 오죽하면 문의 천정에 새들의 으뜸인 봉황그림으로 물리치려했을까?

오랜세월 문이 닫겨져 있었던 관계로 새들은 커녕 사람들도 출입을 이젠 아예 꿈도 꾸지 않으려한다.

 

누가 그 친근하였던 동소문 성곽을 잘라내고 ....길을 내어 홍화문을 허물더니 이젠 높은 누각으로 비껴 올라앉아 우리에게 목고개 아프게 젖혀야만 보이도록 만들었는가?

 

사라졌다가 다시 복원된 동소문, 역사의 소용돌이에 애꿎게 밀려났던 지금의 혜화문!

개방은 되었어도 오며가며 기웃거리기엔...그 계단은 너무나 높다.

 

 

 

 

 

 

2006,5,10 이요조

 

 

 

 

 

 

 

 

 

 

 

 

 

 

 

 

 

 

 

 

 

 

 

 

혜화성당앞으로 해서 먼빛으로 혜화문을 보며 걸었읍니다.

혜화성당 정문은 못찍었는데...후문과 그 옆에 성당유치원과 그리고 동소문로의 갈라진 성벽을 담아봤습니다.

 

 

 

 

 

 

아래 이미지는 지난(2005} 가을,

 

 

 

 

 

◈ 서울은 청계천만 달라진 게 아니다.

 

 

 

 

 

 

 

 

 

 

 

 

 

 

 

 

 

 

 

 

 

 

 

동성중고등학교 뒷 편으로 둘러 싼  불 밝힌 성곽모습

 

 

 

 

 

 

 

 

 

 

 

 

 

 

 

 

 

 

 

 

 

 

 

 

 

 

 

 

 

▲이 사진은 2005년 가을에 찍은 것임/혜화문 성벽

▼서울성곽 모습 2005년 가을

 


 


     
      *푸른 서울 살리기*

    2005년 가을 무렵, 혜화문은 무슨 공사인지 정자를 세우고 여기 저기 뚝딱거리며 부산하더니

    어느 날부터인지 야간조명시설을 설치해서 밤이면 아주 볼만한 구경거리를 제공했다.

    혜화성당을 뒤로하고 동성고등학교 뒤로 이어지는 성곽에도 역시 불은 밝혀졌다.

    그냥 차를 타고 앞만 바라보며 쌩~ 지나치는 사람들에겐 보일 리 만무하지만 시간 내어 야간

    성곽지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일제감점기하에 도로를 정비한답시고 제일 번잡하였던 동소문을 뎅겅 잘라내고는 문루도 없애고

    석축도 헐어 버렸다한다.

    그 혜화문이 다시 복원되고~~ 이제는 야간에는 컴컴해서 칙칙하던 성곽이 조명까지 밝혔으니...

    정말 역사가 살아 숨쉬는 서울로 차츰 복원 되어지고 있나보다.

    창경궁과 창덕궁의 가로수 길을 나는 유난히 좋아한다. 도심에서 맛볼 수 없는 해묵은 울창한

    푸라타나스 가로수가 여름이면 하늘을 거의 가릴 지경이다.

    고궁(종묘, 창덕궁,창경궁)을 가로지르는 자동차들의 매연을 정화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았던 나무를 작년에는 너무 과감하게 잘라내어 걱정이다  싶었더니 올해 바라보니 그런대로

    다시금 어울려 고궁사이로 난 길의 매연을 충분히 가려주게 생겼다.

    창경궁을 돌아가며 서울대학 병원 후문쯤으로  이어지던  고가도로를  과감하게  밀어  없애고 난 후,

    종묘 뒷담(창경궁과 육교로 이어진 다리 부근에서 현대오일뱅크 방향)에 조금 어울리지 않은 동네가 

    유독 거북살스럽게 부각되어졌다. 심지어는 종묘 담장에 그대로 붙여지은 어울리지 않게  무허가

    건물 같은 판잣집 동네들이 을씨년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런 건물이 고궁담벼락에 붙어있었는지..모르겠지만 그 것마저도 작년에 철거를 하고는

    정화 사업에 들어갔었다.

    그 정화사업도 작년에 시작하더니.,.

    마침 오늘(2006년 4월 26일)아침에 그 곳을  지나치면서 유심히 살펴보니  종묘 뒤 담장은 말끔하게

    새모습으로 복구 되었고 일방통행 길이 반듯하게 나 있었고 공간조경도 잘 정돈되어 꾸며져 있었다.

    청계천만 푸르게 되살려 논 게 아니었다.

    서울은....

     

     

    글:사진/이요조 2006년 4월26.


         

         

        (▼ 아래 글은 검색글)

         

        복원된 문의 비애 : 혜화문

         

        백악에서 동남쪽으로 흘러내려 가던 산줄기는 지금의 성균관 대학교 뒷편에서 '매봉우리―응봉(鷹峯)'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솟았다.
        백악이 342m인데 비해 응봉은 133m밖에 되지 않아 얼핏 보아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응봉은 백악이 서울의 오른편 젖가슴을 이루는 데 대해 왼편 젖가슴을 이루는 봉우리이다. 백악이 젊은 여인의 젖가슴처럼 위로 뾰족히 솟았다면 응봉은 아기를 몇 키운 여인의 젖가슴처럼 펑퍼짐하게 퍼졌다. 그렇게 응봉은 그 자락을 넓게 펴 그 품에 창덕궁과 창경궁, 종묘 그리고 그 옆으로는 성균관을 품고 있다. 도성은 그 응봉을 감싸고 돌아 지름의 명륜동과 북창동을 가르며 끊어지며 이어지며 내려간다. 가다가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삼선교 넘어가는 고개 마루턱에서 동소문로와 만나 혜화문을 이루었다.

        혜화문은 도성의 동소문이다. 태조 5년(1396년) 도성을 짓고 여덟 문을 낼 때 그 하나로 지었다. 그 때의 이름은 홍화문(弘化門)이었다.
        그러나 성종 연간에 창경궁을 지으면서 그 정문을 홍화문이라고 이름을 짓자 중종 6년(1511)에 혜화문(惠化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애초에는 문루가 있었으나 아마 임진왜란 당시 문루가 없어진 듯, 영조 20년(1744)에 가서 이 지역의 수비를 담당하던 어영청(禦營廳)에 명하여 문루를 짓고 현판을 달도록 명함으로써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석축을 쌓고 홍예문을 낸 위에 단층의 문루가 올라앉은 모습으로서 고갯마루에 들어서 좌우의 산세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 문은 소문이기는 하지만 서울에서 동북 방면, 곧 경기도 양주, 포천을 거쳐 강원도, 함경도로 나가는 길의 시발을 이루는 곳이라 실질적으로는 대문 이상으로 통행이 빈번한 곳이었다.
        이러한 문을 일제가 그대로 놓아 둘 리가 없었다. 일제는 도로를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1928년에 문루를 헐어 없앴고, 1939년에는 석축마처 헐어 버렸다.

        혜화문은 1992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94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그러나 복원은 되었지만 혜화문은 더 이상 본래 의미의 문은 아니다. 문이라기보다는 무슨 망루 아니면 정자 같이 5m는 됨직한 높은 석축 위에 덩그라니 앉아 있다. 그곳으로는 차는 커녕 사람도 일부러 올라가 보지 않는 한 지나 다닐 수 없다. 그렇게 밖에 지을 수 없는 담당자들의 고충은 이해가 간다. 왕복 8차선이나 되는 길 가운데 어떻게 문을 내겠는가. 제자리를 찾아 복원을 한다면 현재의 숭례문―남대문이나 흥인문―동대문처럼 길 한가운데 들어앉아 교통 흐름을 방해나 하는 천덕꾸러기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길 한 옆으로 비켜 복원할 수밖에 없는데, 그 지형이 길 좌우로 산기슭이니 하는 수 없이 이렇게 절벽 위에 올라 앉힐 수밖에 더 있겠는가. 이런 사정을 헤아리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복원된 혜화문이 눈에 차지 않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 '지옥'으로 불리는 서울의 교통 사정에서 볼 때 어찌보면 옛 성문을 복원하는 것 자체가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허겁지겁 사는 데서 벗어나 좀 여유를 부리는 데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때때로 사치가 필요하기도 하다. 단 그 사치가 허영이 아닌 제대로 멋을 부리고 진정한 즐거움을 맛보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복원은 되었으나 외면당하고 있는 혜화문은 이런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하고 있다.

         

         

        문화재 가치 빛내는 야간경관 조명, 2008년까지 서울성곽 전역에 설치

         

         

        서울의 밤이 화려해졌다. 어둠이 내리면 회색 도시는 눈부신 빛의 축제를 펼친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20여 개의 철제 구조물은 제각각 색동옷으로 갈아입고 도심을 흐르는 강물까지 오색으로 물들인다. 그 주위로 밤하늘의 별들이 내려앉은 듯 도심의 불빛들이 온갖 빛깔을 내뿜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 상징물인 남산타워도 지난해 12월 리모델링과 함께 이름을 ‘N서울타워’로 바꾸고 매 시 정각에 형형색색의 조명쇼를 펼친다.

        서울 4대문 안의 밤도 한층 화려해졌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친근한 빛으로 꾸며진 숭례문을 비롯해 광화문과 서울광장,세종로,청계천 등은 연중 멋진 야경을 선사한다. 지난 2월부터는 ‘서울성곽’이 혜화문에서 숙정문까지 1㎞의 옛 돌담길을 따라 252개의 불빛으로 수를 놓고 있다. 북한산과 남한산성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야경 또한 낮에는 볼 수 없는 도시의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최근에는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나 민간 기업에서도 야간조명을 설치하면서 서울은 한층 다양한 빛의 도시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말까지 마포대교와 영동대교 두 곳과 덕수궁 돌담길, 서울시립 박물관 등에 야간 조명 시설을 설치한다. 서울의 밤을 더 밝고 아름답게 만들어 국제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코끝에 스치는 바람이 제법 상큼해진 요즘 해질 무렵 가족이나 연인의 손을 잡고 빛의 향연을 즐기러 나가보자. 남산이든 한강시민공원이든 아무곳에나 가서 화려한 빛의 유혹에 한껏 빠져 보자.

         

         




        서울성곽 나들이 더 가까이


        청와대 뒷산인 백악산(북악산) 개방으로 서울성곽의 출입금지 지역이 대부분 풀렸다. 서울성곽은 조선 태조가 한양 천도이후 쌓기 시작한 서울의 내성.

        성곽은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 등 4대문과 혜화문(동소문), 광희문(시구문), 소의문(서소문), 창의문(자하문) 등 4소문을 연결하며 그 둘레가 약 18km에 달한다. 성곽은 일제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고 산업화의 소용돌이 속에 상당 부분 훼손됐지만 복원작업을 통해 현재는 10.5km 가량 옛모습을 되찾았다.

        숙정문 코스와 함께 산책하기 좋은 서울성곽 코스는 낙산, 성북동, 인왕산과 남산 등 4곳. 모두 1~2시간 거리로 산책로가 잘 가꿔져 나들이 하기에 좋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풍광은 서울 역사여행의 덤이다.

        ▲ 낙산코스

        낙산코스의 출발점은 동대문. 지하철 동대문역에서 나오면 이대부속병원 옆으로 난 ‘창신성곽길’이 서울성곽을 안내한다.

        동대문의 시끌벅적 소음이 사라질 즈음 걷기 쉽게 포장된 산책로가 시작된다. 곳곳에 설치된 벤치, 정자와 가로등 등이 성벽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성벽 중간 중간에는 창신동과 충신동을 잇는 쪽문이 나있어 두 동네를 비교하며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석축의 단을 세며 쉬엄쉬엄 오르길 20분, 어느덧 낙산의 정상 낙산공원이다. 옛 시민아파트를 헐고 조성한 낙산공원은 ‘서울의 몽마르트언덕’. 도봉산, 북한산, 인왕산, 남산까지 도심의 산과 사대문안의 빌딩숲이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성북동코스

        성북동코스는 돼지갈비, 돈까스, 칼국수 등 맛집들이 즐비한 성북동 성북초등학교앞 삼거리의 서울과학고 뒤편에서 시작된다. 이곳 산책로도 잘 정돈됐지만 낙산코스 보다 경사가 급하고 계단이 많아 걸음을 자주 멈추게 한다. 성벽 너머의 저택들이 즐비한 성북동 풍경이 볼만하다.

        한 10여분 목덜미에 땀이 배일 즈음, 성벽 너머와 연결되는 쪽문이 나타난다. 문밖을 나서면 마치 시골을 옮겨놓은 듯한 딴 세상이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게 성벽 밖 좁은 터에 오밀조밀 밭들이 일구어져 있다. 허름한 달동네 우리 이웃의 터전이다.

        다시 산책길로 되돌아와 잠시 오르다 보면 군 부대 때문에 길이 끊긴다. 대신 성벽 너머로 산길이 시작되는데 성북동 성곽답사의 진미는 이제부터다. 산길 입구는 곧 숨막힐 듯한 향을 뿜어낼 아카시아 숲이다. 오솔길을 따라 들어서면 성벽에 기대 소나무가 솔잎 터널을 이룬다. 산 위에 쌓은 성곽이라 석축 돌덩이가 작아 몽글몽글 성벽의 선이 곱다. 군사보호구역에 막혀 성북동 약수터쪽으로 다시 내려와야 한다.

        ▲ 인왕산코스

        인왕산 코스는 산책이라기 보다는 산행이 적절하다. 출발지는 사직공원. 경사가 급한 인왕산길(인왕스카이웨이)을 한 10~15분쯤 허덕허덕 오르다 보면 무악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만난다. 무악동쪽 길을 따라 100m 가량 가면 성벽과 함께하는 인왕산등산로가 시작된다.

        인왕의 기암괴석을 감상하며 200m를 오르면 성곽의 성가퀴(성벽 윗부분에 쌓는 지붕이 있는 낮은 담)가 없는 성벽 위를 걷게 된다. 복원이 아직 덜 된 탓이라지만 오히려 성벽이 더욱 성벽다워 보인다. 복원해놓은 성벽의 상당 부분이 세월의 더께로 시커먼 석축 위에 반듯하고 새하얀 돌지붕이 얹혀져 있어 부자연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석축을 디디며 30분 오르면 인왕산 정상이다. 낙산에서 본 서울이 정겹다면 인왕에서의 전경은 호쾌하다. 발아래 경복궁, 청와대는 물론 한강 너머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청운동으로의 하산길은 성벽 원형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답사의 절정. 성벽은 물론 성가퀴도 일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시간에 마모돼 둔탁해진 돌지붕이 정겹다. 인왕산 등산로는 공휴일ㆍ일요일의 다음날은 입산휴식일로 등산이 통제된다.

        ▲ 남산코스

        남산의 서울성곽 답사는 동대문운동장 인근의 광희문에서 시작한다. 시체가 나가는 문이라고 해서 시구문으로 불리는 곳이다. 서울성곽의 위용은 장충체육관 뒤편에서 이어진다. 체육관과 신라호텔 뒤로 성벽은 오밀조밀한 집들을 끼고 남산으로 힘차게 올라간다. 타워호텔 뒤편까지 이어진 성벽은 잠시 끊어졌다가 남산정상에서 순환로를 따라 내려 오는 산책길에 다시 만난다.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謙齋 鄭善)* 의 동소문(혜화문)그림을 볼라치면

        상단부 오른쪽위 건물이 동성고나 혜화성당쯤, 그 右로는 지금의 대학로가 아닐까 싶다.

        현재, 복원된 혜화문은 길을 비켜나서 그림의 좌측, 성북동쪽으로 밀려나 옮겨 앉아 있는 셈이다./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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