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眞伊 이 詩를 누가 모르겠습니까만, 이, 詩를 한 자도 틀리지 않고 꼬박꼬박 잘 쓰시는 어떤 분이 물어 오셨습니다. 작자의 연대가 어떻게 되며 알고 계신 것이 정확한 건지 궁금하다 물어오셨습니다. 짐작 해 보건대 아마도 동짓달 기나긴 밤이 무심해서 한 수 던진 것이라 사료되며, 저도 다시금 문헌을 뒤져가며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향내를 맡으며, 느끼며 미흡하나마 제가 알고 있는 대로 여기 답을 옮겨볼까 합니다.
황진이: 명종때 송도 기생 기명은 明月, 정확한 생존 연대는 알 길이 없으나 추측은 (1520~1560) 마흔을 전후하여 세상을 떠남. 출자(出自)는 황진사의 서녀라고 전함. 출중한 인물과 詩文에 뛰어나 시조 작품에 명작을 내었으며 후세에 많은 전설적 일화를 만들고 있으나 근거는 확실하지 못함 그가 남긴 시조 6수는 이조 시조 문학의 금 조각이며 여류 시조의 으뜸이 되는 걸작중의 걸작임
WINTER SOLSTICE(동짓달 기나긴 밤을) If I could take this long November night And cut it off at this its waist, Roll by roll, I’d roll it up And lay it away beneath the blankets of spring. Then when my love returns, Roll by roll, I’d roll it out And join it to that night
<靑山은 내 뜻이요>
靑山은 내 뜻이요 綠水는 임의 정이
녹수 흘러 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 못잊어 울어 녀어 가는고
<靑山裏 碧溪水야>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웨라
명월이 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청산리: 푸른 산 너머 *벽계수: 푸른 시냇물 *일도 창해: 한 번 푸른 바다에 닿으면
일반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시의 특성으로 이해하려 할 때 ‘청산’과 ‘벽계수’는 나와 님입니다. 이 시조는 왕가의 종실 ‘벽계수’라는 이를 넌지시 희롱하기 위한 시로써, “사람들이 한 번 보기만 하여도 진아에게 혹하니 나는 그 것을 뿌리치고 오리라”하며 큰 소리 친 ‘벽계수’는 왕가의 귀족답게 의젓하고 냉정했습니다. 그가 가을 밤 송도를 구경차 나갔다가... 어디서 낭랑한 시를 읊는 여인네의 목소리를 듣고 혹하여 그만 타고있던 나귀 등에서 낙상하게 됩니다. 물론 양반 위신도 함께...... (연후에 황진이에 매혹당한 일설)
< 어져 내 일이여 >
어져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던가
있으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을 나도 몰라 하노라 *어져: 아! *그릴 줄: 그리워 할 것을
<산은 옛 산이로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이 물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노메라
기생으로써 세상의 허무와... 자조적인 탄식조, 여기서 인걸은 화담을 이르지 않았을까 합니다. 황진이는 서경덕을 흠모했습니다. 그렇게나 사랑해도 덤덤해 하는 서경덕을 위한 사랑의 시가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서경덕 : (1489~1546)호는 화담중종때의 철학자 일생을 학구생활로 보냄 논술로는 <太虛說> <原理氣> <死生鬼神論>등이 있고<珍靑>에 시조가 전함
어느날 황진이는 화담을 찾아가고 문 전에 이르러 화담이 읊는 시를 우연히 듣게 됩니다. 그렇게나 냉냉하던 화담도 진이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이 어린 후니> 서경덕
마음이 어린 후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萬重雲山에 어느 임 오리마는
지는 잎부는 바람에 행여 긴가 하노라
*어린: 어리석은 *만중운산 : 겹겹이 싸인 깊은 산속
이 詩를 엿들은 황진이~ 얼마나 기뻐했을지 눈에 다 선 합니다. ( 이, 이야기 줄거리는 여러 책자를 뒤지다가 맥락을 잡고 제가 얘기로 옮겨 쓴 것입니다. 사이버에서 제가 닉을 언감생심 黃眞伊라고 한 댓가지요 혹시, 제가 잘 모르거나 잘 못된 것이 있다면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립문 뒤에서 숨어 있다가.... 화담의 마음을 우연히 듣게 되고................
아래 시는 진이가 화담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입니다. 여성 내면의 깊은 그리움을 잘 나타냈다고 전합니다.
<내 언제 무신하여>
내 언제 무신하여 임을 언제 속였관데 월침 삼경에 온뜻이 전혀 없네 추풍의 지는 닙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송도삼절(松都三絶) 송도의 유명한 세 존재 서 경덕(서 화담) 황 진이 박연폭포를 이름입니다. 황진이가 서화담을 그리며 지었다는 시가 동짓달~~~ 입니다. 황진이와 서화담의 관계를 재 조명 해 볼라치면 91년도에 초판 된 소설 토정비결 (李載雲作)을 참조해 보시기 바랍니다.(계속 출간 중)
또한 그녀의 멋진 풍류의 뜻을 기리며 황진이의 무덤에 술잔을 올리고, 시를 읊고 치제(致祭)했다하여 빈축을 사고 급기야 파직된 백호 임제의 그 시 한 수 입니다. *임제 (1549~1587)호는 백호, 선조때 사람 시인, 이조정랑, 북평사, 예조정랑 을지냄
<청초 우거진 골에>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다 잔 잡아 권할 이 없을새 그를 설워 하노라”
한국 시조 문학사에서 특히 조선조 시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볼 때 여성의 시조가 전해지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황진이의 일생중 가장 잘 알려진 벽계수와의 만남, 그리고 면벽한 지족대사를 시험하고 괴로와 했던 황진이... 또 진정한 사랑 서화담과의 만남으로 생기는 그녀의 육체와 정신 세계의 정립들..... 그토록 폐쇄적이고 봉건적인 이조시대에 그런 생활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은 그녀의 예술적인 정신세계가 드높았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그녀는 금강산으로 유람을 떠났는데... 거의 무일푼의 방랑자적인 생활로...많은 詩를 남겼다고 하나 후세에는 단 한 편의 시도 전해지지 않은 것을 학자들은 애석해 하고 있습니다.
이제 황진이는 우리 모두의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남긴 시조 6수로 우리는 그 시대 문학의 절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첨부★ 제, 황진이란 닉을 연유로 그녀에게 더 다가가기 위하여 인터넷 자료를 구하고 나름대로 글을 구성하여 보았습니다. 언감생심 제가 그 이름을 감히 쓸 수나 있겠습니까만... 그녀를 좋아한다는 데 있어선 아무도 나무랄 이 없겠지요. 이 글은 2001년도 정초 쯤 쓴 글이온데.. 다시 읽기로 들어갑니다. 그 당시의 제 황진이 그림입니다. 많이 나아졌음도 칼럼을 바라 봐 주시는 여러분들 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