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를 갔더랬지요.
계룡산 한자락을 빌어 자리잡은 갑사(寺)....불교신자가 아니라서가 아니라...그저 그런 유명산에 속해있는 절이겠거니 지레 짐작하고 줄레줄레 따라갔더랬지요.
계룡산이 지리산에 이어 국립공원으로 버금가는 山인줄이사 익히들어 알고 있지만.....벌써 갑사(甲寺)1 들어서는 숲길이 범상치 않아 보이데요.
길이 우선 마음에 쏘옥 안겨오도록 아름다워 보이는 거 있지요?
길이 아름다운건지...숲이 아름다워서인지...?
아무튼 숲에 나를 맡기려고 작정... 낙엽이 발목을 휘감는 오리길을 걸어 갑사를 올랐어요.
매혹적이더군요. 이미 낙엽도 다 떨어져 내린 초겨울 날씨지만...누구의 배려인지 주홍빛 감이 꽃등보다 더 아름답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어요.
숲해설사를 만나 설명을 들어보니...오리(5里)숲길이 보통 유명한 숲이 아니더군요,
갑사가는 길가에는 봄이면 황매화 노란 길이 아주 환상적이라는군요,
앙상한 잔가지 부수숭한 황매화의 흔적만 보아도 대충 화사한 봄날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네요. 좋겠어요.
그런데...제가 찾은 이 계절도 만만치만은 않더군요.,
갑사 가는 길의 감나무를 담아온 풍광을 한 번 보실래요?
그냥...감나무만 찾아보세요. 갑사도 문화재 보물이 많은 절이라지만.....전 감나무에 더 정신이 팔려버렸군요., ㅎ~~
임진왜란 당시 승병궐기에 거점이 되었다는 갑사를 자세히 둘러보러 황매화 눈부시게 노오란 봄날에 한 번 다시 찾아야겠어요.
봄이면 노오란 황매화길.............지금은 스러졌지만 양 길가에는 이런 황매화가.....줄을 이어 있었다.
저렇게 갈라진 감나무도....열매를 매달았고
이 감나무는 속이 곯았는데도 열매는 빨갛게 잘 매달았네요.
낙엽이 하도 많아서...되돌아 나오는 길에는 이렇게 에어로 바지와 신발을 털어준다는 배려가 참으로 고마웠어요.
이 곳 벤치에 앉아 가을 분위기 물씬나는 사진도 찍었지요.
사찰 경내에서 보이는 숲 한 번 바라보세요...반송등...기가 막히는 소나무 숲이 보이지요?
요사채에 내걸린 곶감
염불보다 젯밥에 관심이 더 많다고...갑사 구경보다 오리숲 구경이 더 근사했어요. 제겐...
갑사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52
☎ 041 -857 -8981
- 동학사, 신원사와 함께 계룡산의 대표적인 사찰의 하나로서 갑사구곡(甲寺九曲)의 경관을 배경으로 풍부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갑사는 계룡산의 여러 사찰 중에서도 가장 문화재가 풍부한 사찰이며 공주시에 가까이 위치해 있다. 420년(백제 구이신왕 원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전언이 있다. 그 이후 웅주 출신 승려 현광(玄光)이 중국의 남악혜사(南嶽慧思, 514~577)에게서 법화삼매를 얻어 득도한 뒤 계룡산에 머무르며 895년(진성여왕 9) 등라동암(藤蘿洞菴)을 세웠다고 한다. 갑사 사적비에는 신라 진흥왕의 꿈에 금빛 사람이 나타나 천축의 상서로운 신표를 주고 흰말이 나타나 비결을 바침으로써 절이 창건되었다는 설화가 소개되고 있다. 왕도 웅진과의 지리적 근접성 등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갑사의 창건은 백제시대일 것으로 보인다. 갑사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거찰로서 발전한 것은 통일신라기의 일이었다. 의상대사는 1천 칸에 달하는 사찰 건물을 경영하였다고 하며, 이때 신라의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번영하였다. 그 이름이 ‘해동화엄 10찰’의 하나로서, 최치원의 글에 등장하고 있다. 갑사의 철당간과 당간 지주(보물 256호)는 통일신라기의 유산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여기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갑사 대적전의 주변에 당시 갑사의 금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갑사 대적전의 주변에 남은 통일신라기의 잘 다듬어진 초석이 당시의 면모를 전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갑사는 영규대사를 중심으로 왜군에 대항하는 승병 궐기의 거점이 되었다. 영규대사는 왜병이 북상하자 승려들을 이끌고 궐기, 충청도 의병장 조헌이 이끄는 의병들과 연합하여 청주성을 수복하고 충청도를 침략군으로부터 지켜내는 큰 공을 세웠으나 금산에서의 싸움에서 장렬히 순절하게 된다. 1738년(영조 14) 건립된 경내의 갑사 표충원은 임란의 대표적인 승병장 휴정과 유정, 그리고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갑사는 1597(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침입한 왜군들에 의하여 소실되었다가, 인호(印浩)·경순(敬淳) 등이 1604년(선조 37년) 대웅전과 진해당(振海堂)을 중건하는 것을 시작으로 다시 재건되기 시작하였다. 갑사 대적전 부근에 있는 높이 3미터의 공우탑은, 갑사의 재건 작업에 힘쓰다가 죽은 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어 당시의 중창 작업과 관련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1654년(효종 5)에 사정(思淨)·정화(正華) 등에 의하여 건물의 개축과 중수가 크게 이루어졌다. 1885년(고종 22)에는 불상과 탱화 등이 새로 조성되었으며 1899년(고종 36년)에 적묵당이 건축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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