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어렸을적 우리집 뒷마당에는 대봉시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팽이처럼 생긴 큰 감이 많이 달렸는데 어른들은 동이감이라고 했다.
감나무는 그리 높지도 않고 옆으로 아담하게 벌어져 열매를 어찌나 많이 매다는지 봄에는 감꽃이 하얗게 떨어지고 약을 칠 줄 모르니 여름에는 쐐기(송충이)가 떨어졌다. 겨울이면 감나무 주변을 장작을 뱅 돌려가며 쌓곤 했는데....그 그림이 어린 눈에도 보기에 좋았다.
내가 여고생으로 자랄즈음 아버지가 가지치기를 하신다고 톱을 대고는 그만 나무는 애석하게도 죽어버렸다. 따라서 우리 형제들의 감나무에 대한 추억도 함께 사라져갔다.
시집가서 첫 아이로 지금의 딸아이를 가지고 얼마나 과일이 땡기든지...7~8개월 쯤 된 가을에는 감이 어찌나 먹고싶던지 누가 내게 감나무를 한 그루 선물하지 않나 하는 엉뚱한 망상의 나래를 펴보기도 했다. 그런 며느리의 입맛을 눈치채신 시어머님은 시가에 다녀가는 내게 잘 익은 대봉시 몇 개를 잘 싸주셨다.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도중에 감 생각 뿐이어서 살짝 몰래 다른 사람들 눈치 못채게 그 걸 꺼내 먹고는 체해서 혼이 나기도 했다.
누가 그렇게 감을 좋아라 한다는 내 글을 읽고는 대봉시 한 박스를 선물로 보내겠단다.
눈물이 핑 돌도록 고맙지만...그렇게 넙죽 받을 그런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주소를 물어오길래 여행스케쥴이 계속이어져서 아이의 학교 연구실로 받았다.
집에서 자주 오가는터라 어차피 감도 나눠 먹어야 할 터~~
딸아이는 감을 별로 좋아라 하지 않았다.
- 이상하구나 뱃속에서는 그렇게 감 들어오라 성화를 부리더니 혹시 병원에서 바꿔온 건 아닐까?
그랬더니 배시시 웃는다. 물컹해서 저는 싫단다.
감을 받은 날 동료들과 먹어볼까해서 개봉해서는 먹으려니 탄닌이 덜 빠져서 포기하고 창가에 두었더니 라디에터가 있는 자리라 감이 절로 말랑말랑 하더란다.
전화가 왔다.
-엄마 나 감 괜히 먹었어요
-응? 무슨말이니?
-여태 감 맛도 몰랐는데..이제 낼 모레면 미국가서 오늘 먹은 이 맛을 못잊으면 어떡해요?
-난 또..... 역시 뱃속에서 감을 청하든 네가 맞긴 하구나....ㅎㅎㅎㅎ
너무 맛나더란다. 언젠가 먹어본 반건시 곶감 속의 말랑하고도 아주 달착한 연시맛처럼~
혹시 미국에서 입덧으로 그 대봉시가 먹고싶다면 이 엄마가 부쳐줘야제 별 도리 없잖냐? 옛날 임금님께 진상했다던 감인데...네가 이제사 그 맛을 아는게지~~
연시를 빨리 익히려고 사과상자에도 넣어봤지만 별 효과는 없는 듯하다.
뉴스에도 나오고 신문에도 그러더라만....걍 세월의 시간 속에 묻어 두었던 게 더 나은 것 같다.
오늘도 감을 먹으며....그냥 반시와 대봉시의 그 연시맛 차이가 격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제 해마다 가을이면 다시금 대봉시를 주문해놓고 아마도 겨우내내 끼고 살아가야 할 듯 싶다.
먹기위함보다는 이 나이에 옛날로 되돌아가듯 추억을 되살리는 실마리가 되어줄 듯 해서이다.
아련한 옛날이 문득 그리워지면 달착한 감을 옛 기억처럼 하나씩 꺼내어서 먹어 보련다.
찬 겨울 날씨처럼 이가 시리다.
쨍- 가슴 한 켠이 시려온다.
글/이요조
예전 글 http://blog.daum.net/yojo-lady/281408
화장실 이야기(화장실 사진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아직도 잘 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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