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중목욕탕에서 일이다.
목욕 후 거울 잎에 섰는데 ㅡ나야 뭐 시크하게 머리나 대충 빗고 비치된 싸구려 로션을 쓱쓱 바르는데
ㅡ이렇게 모진 추위가 아니면 그냥 나간다.
철판같은 내 피부는 별반 땡김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
거울 앞에 선 할머니 한 분이 아주 정성스럽게 눈썹을 그리신다.거을 속에서 그만 눈이 따악 마주쳐 버려 머쓱해진 나는
<눈썹 안그리셔도 넘 예쁘세요>했더니 방그레 웃으시며
< 눈썹을 안그리면 아픈 사람처럼 생기가 없어보여서 ㅡ 또렷해 보이라고 >
< 내가 몇 살로 보여요? > 하는 아주 곤란한 질문을 던지신다. 거짓말을 부르는 질문이다.
< 음 ㅡ 많이 봐도 일흔? > 했더니 깔깔 웃으신다.
<일흔다섯인데 ㅡ>
< 어머 도저히 그리 안보여요 > 화들짝 놀래드렸다.
아마 여든다섯 이랬다면 실로 좀 놀랐을 것이다.
<댁은 얼마예유? >
<저요?전 보기보다 훨 많아요 ㅡ > 하며 싱긋 웃어드리곤 자리를 떴다.
왜 그런 질문들을 즐겨 하는지 모르겠다.
가뜩이나 잘 안돌아가는 머리 알피엠 높여가며 이쪽 저쪽 다 맞추려는 우문우답을 바라는 건 쓸데없는 죄다.
나처럼 스스로 미리 할머니로 지칭하면 얼마나 재미난지 모르는데 ㅡ
tv드라마를 보면서 집을 떠나 한동안 고생한 극중인물을 보고 한마디 하며 초로의 우리 부부는 웃는다.
노인놀이 참 재밌다.
<그러게 집 떠났으니 저 얼굴 좀 봐라 꺼칠하니 반쪽이네 >
옛날 울 어머님 <하이고 부자간에 꼭 닮았네 ㅡ>
그러실 때 왜그리 어머님께 면박을 드렸는지 모르겠다.
나 한참을 모지란 며느리 맞다.
한 술 더 떠서 좀 더 즐겁게 맞춰드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폭설로 제주도 여행객들이 사흘이나 발이 묶였단다.
그 뉴스를 들으며
< 하이고 우리 제주도 안가길 얼마니 잘했노? >
< 그러게 선견지명이 있어서 해약하길 진짜 잘했다 그지? >
아이들 셋 다 보내놓고 심심했던지?
우리 부부는 노인놀이 대화에 요즘 재미 들렸다.
쬐끔 맛난 별식 반찬 차려놓고
<어이그 나 먼저 죽고나면 누가 이리 맛난 거 챙겨주노
낼 부터는 당신도 나 없다 생각하고 된장찌개라도 끓여 아침 즘 차려보쏘 나도 이제는 편하게 받아 먹어보자! >
이젠 번갈아 가며 식사준비 놀이도 곧 잘 해봐야겠다.
재미나게 ㅡ
놀이처럼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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