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추사에 미치다

저자: 이 상국

출판사: 푸른역사

출판일: 2008,7,21. (3쇄 12.11)    독서일 2014.3.31

 

- 유가는 ‘…할 자유’라면 도가는 ‘…로부터 자유’이다. 유가의 자유의 키워드는 ‘낙(낙)’이며 도가의 키워드는 ‘유(유)’이다. 유가는 현실을 멀리 벗어나지 않는 ‘바로 이곳’에서 즐거움을 꾀하지만, 도가는 현실을 아예 떠나고 잊는다. 도가는 뒤돌아보지 않지만, 유가는 뒤돌아옴을 전제로 한 벗어남을 가치로 삼는다.

 

- 사나움(광)은 차라리 가르침으로 풀겠으나 오만함은 가르쳐서 고쳐진단 말을 듣지 못했네.

오만은 덕을 망치니 사람 되지 못함이다. 너는 어찌 못나서 이런 이름을 얻었단 말인가. 칭송 받는것에 참된 무엇이 있듯이 비난 받음에도 어찌 이유가 없겠는가. 군자가 오만하면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요 소인이 오만하면 화를 부를 뿐이다. 네가 지금 궁지에 빠졌으나 욕을 듣는 게 마땅하다. 비록 누가 너에게 심한 말을 한다 하더라도 너는 네 스스로를 풀어주어선 안 된다. : 추사의 <잠오(箴傲)>

 

- 저 사람이(추사) 글씨는 잘 아는 지 모르지만 조선의 붓의 헤지는 멋과 조선 종이의 스미는 맛을 잘 모르는가 보다. : 이 삼만.

 

- 추사가 만년에 그린 <불이선란(不二禪蘭)>과 초의에게 준 <명선(茗禪)>

 

- 나는 70년 동안 벼루 열 개를 구멍 내고 천 개의 붓을 몽당하게 닳게 했다.

(七十年 磨穿十硏 禿盡千毫)

 

- 추사는 벼루를 구멍 냈으나, 종요는 손가락으로 이불을 구멍 냈다.

 

- 판교의 난초는 행서가 그림으로 뛰쳐나온 서화동심(書畵同心)이었다면, 추사의 팔분(팔분)의 예서를 쓰는 듯이 난을 그리고 있었다.

 

- 화법유장강만리 서예여고송일지 (畵法有長江萬里 書藝如孤松一枝)

그림 그리기는 끝 없이 펼쳐진 긴 가람이며 글씨 쓰기는 외로운 소나무 한 가지와 다름없구나.

 

- 일독이호색삼음주 (一讀二好色三飮酒)

 

- 지란지교와 이태동잠(異胎同岑: 태생은 달라도 생각은 같이 한다)

 

- 몽정은 중국 사천성의 몽산에서 나는 명차라고 그래. <농촉여문>이란 책에 몽산의 상청봉 꼭대기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일곱 그루의 차 나무가 있대. 바위에서 솟아난 이 나무에서 딴 차는 워난 귀해서 명 나라 때에는 황실에서만 마셨어. 그리고 노아는 강소성 방산에서 나는 명차인데 당 나라의 이조는 <국사보>라는 책에서 차의 명품으로 이것을 꼽았다고 한다.

 

- <명선>은 송나라 선승인 백운 선사의 <다당청규>라는 책에서 ’명선’을 차 수련의 하나로 꼽고 있다.

 

- <노규황량(露葵黃粱)>은 ‘소박한 밥상’에 대한 예찬이다. 다산은 ‘끼니는 혀와 위를 속이기만 하면 된다. 그것을 공들이는 것은 지식인이 할 일이 아니다.

 

- 위대한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고, 훌륭한 모임은 부부, 아들 딸, 손주이다.

(大烹豆腐瓜薑采 高會夫妻兒女孫)’

 

- 독서가 만권에 달해도 율(율)은 읽지 않는다. : 소동파.

 

- 대개 예서를 쓰는 법은 ‘拙졸’할지언정 ‘奇기’함이 없어야 하고, 예스럽되 ‘怪괴’하지 말아야 한다. ‘기괴’의 두 뜻은 서버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경계를 하는 것이 좋다. 비록 천변만화하더라도 ‘괴’라는 한 글자에 대해서는 깊이 금절해야 한다. : 동암 심희순에게 보낸 편지.

 

- 파르스름한 새 찻 주전자에 차를 끓이고, 누런 노트에 시를 베껴 쓰네.

(淺碧新瓷烹玉茗 硬黃佳帖寫銀鉤)

 

- 삶은 속박이며 모든 예술의 질료는 구속이자. 지필묵(紙筆墨)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물과 욕망의 지배를 받지 않는 절대 자유로 나아가고 싶은 것이다, 이것을 사(肆)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 붓은 가벼운 쪽이 양이 되고 무거운 쪽이 음이 된다. 글자 가운데 두 개의 곧은 획이 있으면 마땅히 왼쪽은 가늘고 오른쪽은 굵어야 한다. 그리고 글자의 기둥이 되는 획은 굵고 나머지는 가늘어야 한다.

 

- 등석여의 전서혁명이 일어난 직후, 왕희지에게서 채우지 못한 갈증을 풀어주는 글씨의 신천지는 예서였다. 서한시대의 예서는 전서의 필의가 많이 남아 있었는데 이를 고예(古隸)라 부르고, 동한의 예서는 팔분(八分)이라고 부른다. 팔분은 전서의 기운이 20%이고 나머지 80%는 새로운 글씨를 의미한다. 파세(波勢), 갈고리, 파임이 강조되기 시작한 글씨로 변화감이 뚜렸하다. 왕희지의 해서와 행서는 종이가 공급되고 글씨가 중요한 소통수단으로 유통되기 시작하던 때에 발전한 글씨다. 글씨의 수요가 급증하고 글씨 쓰는 속도가 빨라졌다. 서체는 매끄러워지고 결구는 물 흐르듯 흘러 내렸다.

 

- 추사는 좋은 벼루와 좋은 먹 그리고 좋은 종이가 명필을 만드는 필수라고 주장한다.

지필묵이 다 중요하지만 정녕 한 인격과 동행할 수 있는 것은 붓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글씨에는 붓이 없다는 점이다. 남는 것은 먹과 종이다. 그러나 먹과 종이만 있다고 글씨가 될 수 없다. 거기엔 다섯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글 쓰는 사람이며, 둘째는 벼루이며, 셋째는 먹이며, 넷째는 붓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는 물이다.

 

- 필가묵무(筆歌墨舞) : 붓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먹은 춤추기 시작한다.

 

- 서(書)는 접(接)이 만들어 내는 예술이다. : 조수호.

 

- 추획사(錐劃沙: 모래에 송곳으로 쓰다)

 

- 붓의 만 개의 터럭이 움직이는 기운들을 제어하고 운용하는 솜씨, 글씨를 써가면서 생기는 운동성, 고정되어 있지 않은 붓이 먹을 머금고 종이에 닿는 접(接)을 생각하며 그 접의 흔적이 글씨가 되는 일을 생각하는 미감과 철학이 곧 서예다.

 

- 동파가 말한 청필(聽筆: 붓을 듣다)과 지상유성(紙上有聲: 종이 위에 소리가 난다)을 느낄 수 있어야 추획사에 이른 것이다.

 

- 봄바람의 큰 부드러움은 만물을 받아들일 수 있고,

가을물의 물 무늬는 티끌 먼지가 더럽힐 수 없다.

(春風大雅能容物 秋水文章不染塵)

봄바람 같은 시는 세상의 모든 사물을 다 받아들인다.

가울 물빛 같은 산문은 세상의 한 범 티끌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깨끗하다.

 

- 끝 없는 푸른 하늘

구름이 일어나고 비가 오네.

빈 산에 사람도 없는데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 : 송 나라 황정경.

(萬里靑天 雲起雨來 空山無人 水流花開)

 

- 탑(榻)이란 돌이나 쇠에 새겨진 글씨나 그림을 그대로 박아내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천이다. 탑포라고도 한다.

 

- 잔서완석(殘書頑石): 고집 센 돌이 여전히 물고 있는 남은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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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열공하기 전 마음다지기 발췌문 퍼올려봅니다.

교수님 ㅡ 붓발이 원, 새 붓발 내가 하나 줄께요.

나 ㅡ 아녀요.새 거 집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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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십여년만에 다시 꺼내는 나의 꿈 보따리!

묵혀두었던 붓, 붓발이 이제야 숨을 제대로 쉬는데....

 

이제 아이들 셋 다 짝지어 보내고 손자들 다 받이놓고

다시금 하고싶은 내 일을 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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