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무소유에 보면
(기억나는대로)
스님에게 난분이 몇 개 있었는데...외출을 해도 밤낮으로
걔들 걱정이 되어 발걸음 재촉하시다가
어느날 문득 깨달음이 있어 아끼는 난들을
다 내려놓고 나니(지인들에게 나누고)
그렇게 홀가분 할 수가 없으시더란다.
그 게 바로 무소유 책의 첫머리에 있었지 싶다.
요즘 항간에서 말하는 미니멀리즘이 아닐까 한다.
나도 버리고 살자......버리자!
무소유가 소유고
소유는 무소유이거늘~~
꼴랑 금침,난분 하나 앞에 두고 사설도 기일다~~
난분이 몇 개 있는데..
혼자(남편은 아니고) 키우기 너무 힘들어서,
예전같으면 양 손으로 화분을 두 개씩 번쩍 들었겠지만...이젠 하나 하나 들어 옮겨야 되니 그것도 욕실에 들여 놓고 가끔씩 물을 흠뻑 줬다가 다시 제자리로 옮기려니 - 그러다가 내가 또 중심을 잃고 다칠 것 같은 불안한 생각에
아예...죽으면 말고....하면서 바깥에 내싸두었다.
안그랬으면 지난 염천에 얘들 벌서 다 죽었을 터이다.
마침 정오쯤 되면 큰 나무 그늘이 가려져서 그나마 반그늘이 되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마당에 호스로 물을 뿌리면서 얘들도 예외없이 마구 뿌려주었다. 집에 있게되면 조석으로,
결혼 하기 전...
부산에서 난애호가 협회장님을 만나 난분을 분양도 받고 친절하게 호도 지어주시고 해서.."수석과 난" 이었나?
잡지도 받아보고 꽤나 열정을 피우다가 결혼하고 애기들 키우고 하는 사이에 하나 둘....다 죽어 나갔다.
실은 자식들이 더 소중하니까....
아들의 사무실이 이전하면서 몽땅 우리집으로 보내왔다.
여기저기 검색해서 네임텍도 붙이고 하였건만 이리저리 다 빠지고 흩어져서 이젠 모르쇠로 그저 물만 주고 있었다.
주로 회사로 들어오는 건 양란은 차치하고라도 동양란으로는 채홍,철골소심, 대국, 관음소심, 보세, 서화, 보산, 등이어서 꽃이 피기 전은 청맹과니 눈에는 다 비슷하긴 하다.
동양화를 그린다고 이것 저것 집적대다가
한국화? 수묵화?
다 보류하고 사군자를 바탕으로 문인화에 주력하기로
마음먹었다.
문인화는 물론 글씨를 함께 해야만 한다.
한문은 글쎄...많은 대중들에게,,,(ㅎ 잘 모르는 글씨체로)
적어도 나 같은 수준에는 ...감동을 덜 닿고,
그림이 마치 중국산 같은 내 생각?
정겨운 한글 서간체로 詩를 쓰고 싶어졌다.
쓰다보니 서간체가 캘리같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캘리그라피, 손글씨를 하고도 싶고....
아무튼 이번 소요산전국서예대전에서 梅,蘭,菊으로 삼체상을
받을 것이란다.(심사후 집으로 날아온 통보서)
좀 더 잘 그릴려면 난에 가까워지기 위해 관찰에 들어갔다.
집안으로 들여놓고 자세히 보니 꽃줄기 마다 이슬방울이 맺혀있다.온종일 그렇게 이슬처럼 매달려 있다.
첨 보는 진기한 장면이다.
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竹은 아직 작품으로는 근접을 못했는데....
지난 울산여행때 대숲에 들어가서 혼자 놀아보았다.
아직은 어린 죽순이 쑤욱 어른 대 만큼 자라올랐지만 흔들면
흔들흔들 유연성이 있던....
대나무와 한참 더 놀아봐야 그림도 잘 그려질 것 같다.
대나무 사진도 올리고 이야기도 옮겨 써봐야겠다.
매,난,국,죽,송...에 이어 패랭이, 비파, 동양화에 자주 등장하는 식물들을 그리고 싶다.
마당에 은솔이(犬)를 매어놓지 않고 키우니 게다가 숫늠이어서 다리를 올리고 오줌을 여기저기 싸는 바람에 여러 친구들이 죽어나갔다.
거기다가 고라니처럼 겅중겅중 뛰다못해 날아다니니...
며느리 애기 신발 놓는 것을 가져다가 누이고
난분을 꽂으니 따악 안성맞춤이다.
◀신발정리대가 별도의 난 거치대가 없는 우리집에서 얼마나 요긴한지~~
아니면 개발에 닭알처럼 며칠 못가 다 아작 냈을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