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월드컵 구장 전경*
월드컵 구장이 지어진다고 진흙 밭을 파헤치기 시작 할 때
나는 반신반의하며 지나쳤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세계.
피 끓는 젊은이들의 놀이터.
교통이 더욱 혼잡해 지겠구나.
언덕배기 땅갗에 붙은 달동네에는
그네들 남루하고 고달픈 삶만큼이나
어설프고 초라한 플래카드가 내어 걸리고
<결사반대> <생존권 보장>
선혈처럼 낭자하던 붉은 구호는
어느 샌가
미처 수혈을 받지 못해 죽어간 행려병자처럼
소리 없이 잦아들어 버렸습니다.
IMF가 대중음식점 메뉴 앞머리에 붙어
등가죽에 붙은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쥐어짜는 짓을
하지 않을 수 없던 목마른 땅에서
헐떡이던 불도저도 탈진하여 두 다리를 뻗고 주저앉아 있을 때,
아무 것도 없는 집에서
하필 연명도 힘든 보릿고개에 무슨 잔칠 벌리겠다고 사방팔방 손님을 청해
망신을 자초하는 거냐고 생각하면
소견머리 좁은 아낙의 가슴이 부글부글 끓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필요한 것도 많건만
그럴 때마다 사또님은 월드컵 잔치 끝날 때 까진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그리 알라고,
불편한 거 다 알지만 그래도 참으라고 숨통이 막히게 하고............
시큰둥하여
진흙 밭 곁을 지나칠 때면
애써 고개를 돌렸습니다.
맥 빠진 꼴을 보면 한심스럽고
가슴까지 답답해지는 것 만 같아서.....
어느 날 잔치를 하기 전에 일단 와서 살펴보라는 기별을 받고
반 어거지로 떠밀려 그 진흙 밭엘 갔습니다.
시름시름 언제 다시 일어섰는지
우뚝, 건물 하나가 벌판에 을씨년스레 서 있었습니다.
허기는 허나 부다. 안 헐 순 없으니까. 그렇게 궁시렁 거렸습니다.
사실은
조금 놀랐습니다.
경기장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우람하고 늠름했으니까요.
코흘리개 적에 관심 없이 스쳐 지나쳤던 이웃집 아이가
어느 날 문득 훤훤 장부가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지요.
다음 날부터는
그 앞을 지나갈 적마다 내내 목을 빼고 경기장을 살펴보았습니다.
누가 묻는 이도 없는데 중얼중얼.......
“으음, 화단설치 작업 중이군. 저긴 채송화도 어울릴 텐데. 내부 정리는 다 됐나?“ 하면서-
드디어 한, 프 개막전이 열리고
나는 생전 않던 내기를 이사람 저 사람과 벌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이긴다고 하면 어림없는 소리 말라고들 비웃었습니다.
“아무튼 지는 사람이 차 사기예요.”
왜 겨우 차 한 잔을 걸었었는지 후회가 됩니다.
나는 매 번 내기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니까요.
남편도 어느새 슬그머니 나와 내기하는 일을 그만두어 버렸습니다.
어제는 내가 “오늘도 우리가 이길 거예요. 그죠?”
했더니
“맞아, 당신 말이 옳아.” 하면서 제 머릴 쓰다듬습니다.
아주 어린 동생에게 하듯 말이죠.
치이, 몇 살 더 먹지도 않았으면서.........
선수들이 지칠 때면 안타까움에 가슴이 타들어 가고
선수들이 부상을 입으면 누나처럼 가슴이 미어지고
황 선홍 선수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다시 뛰겠다고 들어오는 걸 보며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우리의 응원은 어땠구요?
우리는 언제고 중요한 순간에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한 응원의 현장, 현장들.
잠시 툴툴거리며 마음이 맞지 않아 외면한 것 같았던 사람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하나가 된 우리.
어때요? 멋있잖아요? 그 것만 생각하면 힘이 나요.
월드컵을 치루기 위해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잔치를 치루는 일에 힘을 모으며 견디는 이웃들의 희생도
참으로 고맙게 생각 됩니다.
승리자가 있으면 패배자도 있는 법이니
잔디 위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외국 선수들 모습에
가슴이 아렸습니다.
하지만 스포츠란 본디 승패에 대해서도 깔끔한 처신으로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하고
한 번 패자가 영원한 패자가 되라는 법도 없음에.........
오히려 순수한 스포츠 정신을 벗어난
또 다른 제 3의 복잡한 계산법이
스포츠 세상에 너무 깊숙이 침투해 있음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요!” 우리의 젊은이가 외치던 한마디가
가슴에 깊은 파장을 일으킵니다.
오늘의 하나 됨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그 무한한 가능성.
이 불씨가 우리의 가슴 속에 언제나 꺼지지 않는 소망의 빛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남은 기간도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파이팅!
멋진 대한민국
멋진 우승을 향하여 전진!
2002, 6, 23. -하닷사-
이야기속의 수원 경기장
사진제공: 牧野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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