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

강가에 노을이 비낄 때면, 불타는 그 아름다움에 넋을 읽는다.
하루 동안 세상을 비추고 서산으로 기울어 가는 태양은 하얀 솜 같은 구름에다 붉은 그림을 그린다. 벌레들도 제 분신을 위해 집을 짓고 떠난 지 오래, 그 강가의 언덕에는 갈대의 노래 소리가 노을에 실려 온다.

누가 나이 들어감을 서럽다 했는가?
힘겨운 전장에서 물러 나와, 젊음을 불태우던 한 마당이 아련한 꿈길처럼 느껴진다.

한가한 시간, 그토록 갖고 싶어하던 나만의 시간이 이제 여기 있다.
산이 좋아 산에 가면, 인생의 호연지기가 거기 있어 좋다. 물이 좋아 낚시가면,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이 자연 속에 묻힐 수 있어 좋다.
평생 동안 벼르기만 했던 선현들의 지혜를 찾아 책 속에 묻히니 마음이 살찐다. 내 몫을 위해 남의 마음을 아프게도 했는데, 이제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으니 이 또한 뿌듯하지 않는가. 적은 돈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좋다.

내 전철을 밟는 젊은이들을 보며, 세월이 무상함을 알려 줄 지혜가 있으니 이 또한 아름답지 않는가. 닫혔던 내 마음을 열어, 세상을 바라보니 배신과 투쟁이 한 줄기 바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푸근하다.

뭔가 못마땅하던 아내의 얼굴에 하나 둘 주름이 생기는 것을 보고, 나 같은 바보 만나 고생만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측은한 생각이 앞선다. 소원했던 친구들을 가끔 만나 추억 어린 정담을 나누니 그 옛날의 우정이 살아난다. 젊은 혈기에 눌려 버렸던 양심이 다시 고개를 드니 인생의 의미가 새롭지 않는가. 추억 속의 친구들, 철없이 소홀했던 친척들, 내 인생에 큰 획을 그어준 은사, 나에게 조그만 도움을 주고 훌쩍 떠나버린 사람들, 이런 인연들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둥지를 떠나는 자식들을 바라보며 대견스러움과 안쓰러움과 걱정이 교차되지만,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낡은 둥지는 내 몫이지 저희 몫은 아니지 않는가.

이런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장년의 지혜요 아름다움이다. 무엇이든지 완성은 아름답다. 더러는 젊은 시절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자신의 걸어 온 길을 후회할 지라도, 이 모두가 한 줄기 바람이었으며, 잠시 일었다 사라져간 구름임을 알면, 참으로 마음이 편하다. 이런 사람은, 비록 세월의 풍파가 자신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떨어트리고, 한없는 자괴감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그 황혼은 아름답다. 인간적인 양심에 따라 살았기 때문이다.

이웃과 스치는 인연들에게 자신의 양심을 내 보일 수 있는 인생은 아름답다. 어린아이의 해맑은 마음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낼 수 있는 황혼은 아름답다. 온갖 삶의 지혜의 창고를 열어 세상에 빛을 주는 황혼은 빛이요 소금이다. 노욕을 버리고 자연스럽게 새록새록 늙어 가는 황혼은 저녁 노을 보다 더 아름답다.

그렇다. 우리는 마음을 비우려는 사람을 우러러 본다. 마음을 완전히 비운다는 것은 무척 어렵지만, 비우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아름답다. 고운 말 쓴 말을 웃으며 받아넘기고, 잘못하는 사람을 용서해주고, 꼭 바로잡아야 할 사람은 준엄하게 꾸짖을 수 있는 사람은 어디 가든 거침이 없다. 비록 주머니에는 먼지만 날려도 떳떳해서 좋다.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황혼은 사랑과 자비 그 자체이다. 젊은 시절에 움켜쥐기만 하던 주먹을 풀어, 어려운 사람을 향해 내 밀수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얼마나 기쁘겠는가. 주는 참 기쁨을 아는 황혼은 아름답다.

사랑의 마음으로 하루를 여는 열린마당의 님들도 아름답다. 주고받는 글들 속에는 삶의 애환이 서려있고, 남을 위하는 마음들이 너무너무 보기 좋다. 나는 열린마당의 님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글 또한 진솔한 인생이 있어 참으로 좋다. 다듬어지지 않은 글 속에서 나는 님들의 진주 같은 마음을 읽는다.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읽는 재미는 솔솔하다.

누가 늙어 감을 서럽다 했는가. 열린마당의 님들을 보노라면 즐거움이 마음에 가득하다.
서산에 걸린 노을과 강가의 갈대의 노래 소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황혼의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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