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늘 소 한 마리가 매여 있다. 삼촌이 사오고 우리 어머니는 삼촌을 도와 꼴을 베어 먹이고 해서 새끼를 낳으면 그 송아지는 어머니 몫으로 하기로 했다.
아직 큰 소가 되기에는 멀었지만 우리 마당에 들어올 때 벌써 송아지를 밴 상태였다.
순하게 생긴 얼굴, 커다란 두 눈, 귀에는 군청에서 달아준 노란 번호표를 달고 있다.

인간이 원시농경사회 이래 소와 함께 살아온 것은 2천 년도 넘을 것이다. 우리의 어린 시절만 해도 소는 재산 목록 1호였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어린 시절의 소에 대한 추억은 잊을 수 없다. 여름이면 산에 소 먹이러 가는 일은 아이들의 몫이었고 그 소먹이에 대한 추억은 정말 무지개 빛으로 우리들의 마음에 남아있다.
소의 목에 걸어 둔 풍경이 딸랑딸랑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머루 다래를 따먹고 씨름판을 벌이고 호수에서 물장구 치던 시절의 아련한 추억은 이제 장년의 나이에도 새롭다.

거친 콩깍지와 볏짚 썬 것을 푹 삶아 주기만 해도 무럭무럭 자라나는 소다. 식성도 좋아서 큰 가마솥에 끓인 쇠죽을 한 끼에 다 먹어치운다.
소는 걸음걸이가 무척 느리지만 그 걷는 속도는 일정하다. 등에 무거운 짐을 실었을 때나 아무것도 싣지 않았을 때나 그 걸음의 속도는 비슷하다. 바빠도 무거워도 한가해도 가벼워도 소는 항상 뚜벅뚜벅 같은 속도로 걷는다. 그리고 끝내는 갈 길을 다 가고야 만다.
미련하다고 하는 그 소의 걸음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람은 힘이 남는다 싶으면 너무 조급히 내달리다 벼랑에 떨어지고, 조금만 힘이 들면 주저 앉아버리는 인간들의 속성과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70 년대까지만 해도 시골 사람들은 대학을 상아탑이란 말 대신 우골탑이라고 불렀다. 어려운 형편에 자식들을 대학 학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서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드디어 소를 팔기로 한다. 소가 뭐 대단하냐고 하지만, 그 당시의 소는 열 사람의 몫을 해내고 있었다. 그 소를 팔고 나면 힘든 농사일은 사람이 감당해야했다. 소가 하던 일을 사람이 하려면 너무나 힘이 들기에 온 집안 식구가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달리 학자금을 마련할 방도가 없음에야 어떻게 하나. 자식의 장래를 위해 부모는 등골이 휘어지는 고초를 각오하며 소를 팔았던 것이다.
팔기가 아까워 쓰다듬고 또 쓰다듬으며 울면서 소를 팔았다. 우리는 이런 부모와 소 덕분에 가까스로 공부를 한 세대이다.

소는 인간에게 절대적인 신뢰의 상징이며, 인간과 영혼으로 교감을 하고 있다. 송아지 한 마리를 사오는 순간부터 집안에는 새로운 희망이 생긴다. 저 소가 크면 아들 딸 시집 장가보내고 새끼 낳으면 막내 학비 마련되겠지 하면서 큰 기대를 하고, 소는 그 기대를 져버리는 일이 별로 없었다.

예전의 시골의 밤은 무서웠다. 큰 고개를 밤에 홀로 넘으면 범과 같은 짐승들이 사람을 노리곤 했다. 어쩔 수 없이 밤에 큰 고개를 넘어야 할 때, 사람들은 소를 몰고 갔다.
캄캄한 밤 고개 모퉁이에서 황소가 숨소리를 크게 내쉬며 떡 버티고 선다. 순간 앞에는 뭔가 날쌘 짐승이 휙 지나간다. 사람도 소도 얼어붙은 채 서로의 교감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소는 주인이 있기에 힘을 얻는다. 사람은 소가 있기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 둘의 교감에서 얻어진 기는 어떠한 짐승도 이겨 낼 수 있다. 넘어야만 하는 고개이기에 소는 콧김을 내뿜으며 앞으로 뚜벅뚜벅 나아간다. 소는 주인을 믿고 주인은 소를 믿고 캄캄한 밤 고개를 넘어간다.

절대적인 신뢰의 힘이란 이렇게 대단한 것이다. 인간과 인간이 이러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일을 함께 도모한다면 세상에 못 이룰 것이 있겠는가. 친구, 부부, 형제자매, 동업자, 회사의 동료간에 이러한 절대적인 신뢰만 형성된다면 이 세상이 바로 천국일 것이다.

소는 덕의 상징이다. 그저 묵묵히 주어진 일만 할 뿐, 절대로 게으름 피우거나 투정하는 법이 없다. 그리고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과 뼈 어느 것 하나 남김없이 모두 인간을 위해 베풀고 간다. 짐승만도 못한 인간은 정말이지 소만도 못한 사람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축생계에서 인간계로 올라오는 마지막 윤회의 삶이 소의 생애가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토록 덕성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가 있겠는가.

지금은 소 대신에 경운기로 농사를 지으므로 소는 오로지 사람을 위해 고기를 줄뿐이다. 그래도 소는 그 성스러운 본성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소를 가만히 보면 너무나 배울 것이 많다.

오늘 우리 소가 팔렸다. 삼촌이 급히 돈이 필요해서 팔아야 한다고 어머니와 합의가 되었다.
왠지 섭한 마음 떨칠 수가 없어 오늘 저녁은 맛있는 사료와 풀을 많이 주었다. 말 못하는 짐승에게도 정을 쏟고 나면 이별은 결코 기쁨은 아니다.
몇 달을 내 손으로 먹여 키워 낸 것이 떠난다니 서운할 뿐이다.
내일 아침해가 뜨기 전, 새로운 주인에게 넘겨질 때는 나는 내다보지 않으리라.


(작가 : 느티나무, 200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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