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이 순환하면 역사가 바뀌고 세월이 가면 강산이 변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동서 이념의 대립으로 인하여 민족이 분열되고 국토가 분단되었던 지구상의 몇몇 나라들은 이미 오래 전에 분단의 비극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세계의 등불로 불리어오던 5천년 찬란한 역사의 우리는 아직 지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그 동안, 6. 25전쟁을 비롯하여 무수한 무력 충돌이 이어져 수십만 동포 형제들이 목숨을 잃었고, 최근에도 서해 상에서 남북 함정이 불시로 교전하여 무고한 우리의 자식들이 귀중한 목숨을 잃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

우리 겨레의 끝없는 눈물과 통한을 어디에 비할 것이며, 그 누구를 원망해야 한단 말입니까 ? 또 조국 광복을 위하여 국내외에서 순국하신 선열들 영전에 무슨 말로 사죄해야 한단 말입니까 ?

그 동안, 여러 차례 남북 정부간에 평화 통일을 위한 협의가 있었고 공동 합의문도 발표한 바가 있었지만, 이제 까지 별 성과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에겐 실망과 불신만 깊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는 눈물을 닦고 새로운 희망을 내다보게 되었습니다. 경의선 철도와 동해안 교통로를 개통하는 기공식을 보았습니다. 그래도 반신반의했는데, 몇일 전에는 평양에서 남북교향악단의 합동 연주회가 있었고, 또 9월 27일에는 평양대극장에서 이미자의 평양동백아가씨 공연이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상상치 못했던 감격스러운 장면들이었습니다.

나는 보았습니다. 공연을 관람하는 북녘 동포들의 뜨거워진 눈 어저리를. 그들은 과거 공산주의 혁명전사의 살벌한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증오나 경계심 대신, 천진한 웃음과 순수한 예술적 감동의 장면을 보았습니다.

노래 공연 중, 그들의 뜨거운 열기는 겨레에 대한 사랑과 평화에 대한 갈망을 역연히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아시안 게임에 참여하기 위하여 수 백 명의 조선 선수단이 날아왔습니다. 이번 기회는 아시아의 축제일 뿐 아니라 한반도 남북 겨레가 진정으로 화합하는 축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는 또 속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이제 우리는 한 많은 지난날의 일들을 깨끗이 씻고 우리 남북 동포가 함께 어우러져서 즐거운 봄 노래를 목청 높여 부를 날이 꼭 오기를 기원합니다.
이대로 휴전선 철조망을 걷어냅시다. 백두에서 한라산까지,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어디든지 걸어갑시다.

그런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저주스러운 휴전선을 마주 보며 혈육이 총을 겨누고 살기 어린 눈으로 쏘아보는 일도, 무력증강, 전쟁 준비에 국력을 허비하며 민생을 도탄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 동족 상잔의 조국이 싫다며 국외로 유랑하거나 유리걸식하던 내 동포 형제들이 다시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겠지요 ? *

-바람과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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