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추석 쇠고 만나자고해 어제 밤에는
무교동에서 그와 술 조금 푸고 헤어졌습니다.
무교동은 낙지골목으로 유명하지만
골목마다 비지니스 크럽이 벌겋게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불경기라서 그런지 직장인들이
출입하는 이곳은 겨울 밤처럼 썰렁했습니다.
그 친구와 열 한시 쯤 헤어지고 종각을
지나 종로 2가 쪽으로 혼자 내려 가야
했습니다.
왜나면 내가 20 대 초반에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놀다 통행금지에 쫓겨 허겁지겁
배회했던 곳이고 지금은 서울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북적거리는
먹자 골목으로 음식이 무지하게
싸고 맛 있어 두발로 걸어와 네발로 기어
나가는 대표적 명소로 알려져 있는
곳이므로 거울에 나를 비추어 보듯이
이곳에서 그 어린시절의 나를 찾아 보고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마음의
거울로 확인 하고 싶어 헬리우스 라이트
크럽을 지나 KFC가 있는 곳까지
걷는 동안 썰렁한 무교동과는 달리
수많은 젊은이들이 몰려와 휘청거리는데
4, 50 대의 남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이곳은 이미 나의
구역이 아닌 젊은이들에게 빼앗긴
땅이었습니다.

세상은 넓지만 50 대인 나의 구역은
자꾸만 침범당하고 젊은이들에게
탈취당해 동네 노래방이 나의 유일한
땅이 돼버린 지금 , 내 마음은 이 거리가
황량한 황무지처럼 느껴졌습니다.

거리는 완전히 낮선 건물로 탈바꿈 해
내가 조잘거리던 어릴 적 골목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라이트 크럽이며
카페며 노래방이며 주막들이 무섭게
활활 불타고 있었고 20대들의 자유분방함과
건강미가 철철넘치는 부러운 힘과 원색의
세련되고 화려한 옷과 빨갛게 오색으로
물들인 헝크러진 머리들이 아름답게
휘날려 어느 낮선 미지의 세계에 온
기분이었답니다.


이곳은 용강로처럼 뜨겁게 끓는 젊은이들의
천국이었고 골목에서 연인끼리 껴안고
키스하는 흉물의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이미 마음의 거울로
구부다 보지 않아도 될 자연스런
현실이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다된 흉물이었습니다.

50대인 내가 추억인지 뭔지를 비춰 볼려고 낡고
녹슨 마음의 거울을 들고 거리를 걷는 자체가
흉물이고 공자 맹자 이야기나 하는
구닥다리임을 깨달았습니다.
요즈음은 공자 맹자보다도 더 깊고 복잡한
최첨단 소프트 웨어가 세상을
지배하고 인간을 통제하는 벅찬 밀레니엄
시대이니까요.

세월이 정말 무섭게 뒤집히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변화를 거부하지 않고 그들에게
쳐지지 않으려고 항상 몸과 마음을 갈지만
내가 낄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들과 대등하게 낄려고 노티나는
양복 대신 청바지에 야한 티까지 걸치고
이들 젊은이들과 나란히 섰으나 역부족이었답니다.
그들과 함께 어울려 호홉하기에는 강물이 흘려도
너무나 아스라히 흘러가 버렸고
흘러간 강을 그리워하는 나는 역사의 퇴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황무지를 걷다보니 인사동 골목 입구가
검게 보였습니다. 얼마 전 모 카페 모임이
그 곳에서 있었고 나는 처음 보는 낮선 회원들과
철없이 떠들고 어울렸는데 오늘 밤 여기
젊은이들이며 내 어린 시절이 그리워 흉내 내느라
그토록 몸부림 친 주책이었나 봅니다.


나이 때문인지 서글픈 어둠만 한없이 쌓여
나뭇꾼처럼 밤을 무겁게 등에 진 나는 이
어깨의 짐을 확 털어 버리고 나도 신나는
20 대가 되고 싶습니다.진정 몸도 마음도
녹슬지 않고 늙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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