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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야기] <<「이광수」와 소설 「이순신」>> - 서 부 련 -
얼마 전 딸아이가 하도 재밌다고 추천하는 바람에, "신라의 달밤”이란 영화를 Better-half와 본 적이 있다.
젊은 애들 수준으로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고 생각되는 황당한 만화버전 오락물 정도였다.
수학여행 간 고교생들이 광란의 파티 장에서 노래를 하는데 순진한 모범생인 박영준(이성재분)이 분위기에 안 맞는 청승스러운 “신라의 달밤”이란 노래를 부르자,
야유가 쏟아지며 마이크를 뺏어 그들의 호프 최기동(차승원분)에게 넘겨서 다시 싸이키한 음악의 광란의 도가니로 빠지자 박영준의 멍청하고 겸연쩍은 표정이 클로즈업되고 이어서 집단 패싸움이 벌어지며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나중엔, 경주 수학여행의 그 날의 패싸움 사건이 계기가 되어, 모범생이던 박영준은 조폭의 중간 보스가 되어 깡패의 길을 걷고,
깡패 같던 문제아 최기동은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훈육하는 서로 상반된 인생길을 걷는다는 것이 영화의 골격이다.
영화! 영화는 이렇게 “쪼다”를 “짱”으로, “짱”을 “쪼다”로 만들 수도 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소설도 얼마든지 한 인물을 작가 마음대로 각색할 수 있는 분야이다.
하물며, 역사적인 실존인물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실존적 존재의 의미가 묘한 존재로 둔갑할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일제시대 때 자칭 민족지(?)라고 자부하던 동아일보에 연재하여 불후의 명작(?)으로 남은 춘원 이광수의 소설 "이순신”이 아닌가 한다.
이광수는 민족사의 구국영웅으로 추앙되고 있는 “이순신”을 우리 민족을 “열등한 민족”으로 부각시키는데 교묘하게 이용하여 “친일의 도구”로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광수가 “이순신”을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시기(1931.5.30~1932.4.2)는, 일본이 만주사변(1931년)을 일으켜 중국대륙의 침략을 시도하던 때이다.
“이순신”이 누구인가? 일본으로서는 조선정벌을 실패하게 만든 천추의 한이 된 "조선의 구국영웅”이 아닌가.
그런 인물을 일제식민지 시대에, 그 것도 중국을 침략하려고 만주 사변을 일으킨 해에 조선민족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는 인물을 주제로 한 소설을, 신문에 연재하도록 했으니---,
그 당시 일본 놈들의 머리가 돌지 않았다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전선에서는 일본제국의 운명을 걸고 피 터지게 싸우는 판에, 후방에서는 왜적을 물리친 조선의 “호국영웅”을 자칭 민족지(?)라는 “동아일보”에 연재하게 하다니---!
“만세”만 불러도 감옥으로 가는 그 암울하고 살벌한 시국에 ---- ?
당시, 조선 총독부가 제정신이라면 “동아일보”를 폐간하고, 이광수를 당장 서대문 형무소에 처넣었을 것이 아닌가!
조선총독부는 그렇다 치고, “이광수”와 “동아일보”는 죽기를 작정하고 “민족혼”을 고양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휘발유를 지고 불속으로 뛰어들었단 말인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신문뿐만 아니라 출판물에 연재하는 창작물은 모두 지금이나 그때나 그 집필의도와 대강의 줄거리를 사전에 편집자와 협의 또는 고지하도록 하는 것이 관행이다.
대충 짐작이 되지 않습니까? 당시, 조선총독부와 동아일보, 이광수의 관계가------.
이광수는 상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주필 자리를 때려치우고 귀국한 다음, 조선과 그 민족에 대한 이야기라면 입에 게거품을 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했다는데 -----.
그는 1922년 자신이 발표한 “민족 개조론” 이라는 글에서, 전국에서 일어 난 3.1운동을 “무지몽매한 야만인종이 지각없이 일으킨 사건” 이라며,
조선인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게으르고, 믿을 수 없고, 비겁하고, 이기심으로 얼룩진 더러운 종족”이라고 비난하고, 그러한 타락한 민족성 때문에 조선은 독립능력이 없다고 못 박았다 한다.
이광수 왈, 우리는 조선민족의 존재를 버리고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한 일본민족으로 통째로 바꾸어야 하며,
우리와 같이 더러운 민족성을 가진 "조센진"은 독립일랑 꿈도 꾸지 말고 문명국가 일본제국의 보호와 지배를 받아야 “타락한 민족성”을 개조해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그런, 적극적인 친일파 이광수가 동아일보에 소설 “이순신”을 연재하며 묘사한 임진왜란 당시(1592년, 선조25~31)의 조정대신들은,
허구한 날 당파 싸움이나 일삼고 계집질이나 하며 중국(명나라)에나 의존하다 나라를 말아먹은 병신들의 집단이었다.
또한 그 당시 조선국왕은 우유부단한 겁보에다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는 소심한 소인배이고, 백성은 한심한 족속들의 무리에 불과한 것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순신”만큼은 사리사욕에 들끓는 아귀다툼의 당파 싸움 속에서도 초연하고 간신무리들의 모함에도 불구하고 "백의 종군"하여 나라를 구한 유일한 "호국영웅"으로 묘사하였다.
이광수는 “이순신”을 부각 시킨다는 것을 빙자하여, 조선의 임금은 물론 조정대신들과 백성들을 모조리 싸잡아서 자연스럽게 쓰레기들로 묘사하여,
일반 대중들(독자들)로 하여금 조선민족이라는 자신의 출신에 대하여 스스로 모멸감을 갖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의 "소수의 사람을 잠시는 속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을 항상 속일 수는 없다”는 유명한 말이 생각납니다.
어쨌든, 이광수는 임진왜란 때 비록 일본이 조선을 집어 삼키지 못했지만, “이순신”같은 걸출한 영웅이 없는 지금의 시대(일제식민지 당시)에 탐관오리들의 후예들만 판을 치던 "조선은 망해도 싸다"는 것을 부각시켜, "우리 민족은 일본의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을 자연스럽게 전파 시켰던 것이다.
그와 같이,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해에 “동아일보”에 소설 “이순신”을 연재토록 한 것은 “망해도 싼 나라”를 정복하는 것은 “정의의 징벌”이고, “침략”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의식을 암암리에 조선백성들에게 심어주고자 한 조선총독부, 동아일보, 이광수 등이 치밀하게 계획한 야비하고도 파렴치한 작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순신! -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 해군의 신화 “도오고오”는 누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독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영국의 넬슨이야 감히 내가 견주겠지만, 조선의 이순신 장군은 제가 신발에 끈을 맬 자격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한다.
더구나, 조선 민족이면 누구나 추앙해 마지않는 “이순신”을 소설로 이용하여, “이광수”는 그 반대급부로 이순신을 제외한 모든 조선인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고도 철저하게 부각시킨 것이다.
그 여파가 면면이 계승되어, 일부 철딱서니 없는 작자들은 아직도 "식민사관"에 물들어 있어서 “엽전은 어쩔 수 없다”는 패배의식을 지금까지 갖고 있음을 잊지 말라!
그 후부터 "엽전들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는 말이 유행했다나!
즉, 이광수는 소설 “이순신”을 통하여 조선민족의 열등함을 자학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썼던 것이다, 문학을 통한 세뇌교육은 그토록 무섭고도 질긴 것이다.
임진왜란이 어떤 전쟁이었던가! 일본은, 처절한 100년 동안의 세력다툼을 거처 "도요또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방금 섬나라를 통일한 시기였다.
싸움이 이제 막 끝나 뒤숭숭한 섬 나라에서, 싸움이라면 이골이 난 사무라이들이 여기저기에서 득실거리는 것이 내심 못마땅하고 불안하여, 그 쓸모가 없어진 “싸움 꾼 사무라이”들을 나라 밖으로 내몰아 정권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의도된 전쟁이 아니던가----!
석 달이면 조선을 정복할 수 있다고 장담한, 싸움으로만 단련된 일본이 조선민족의 끈질긴 7년에 걸친 처절한 저항 끝에 결국 퇴각하게 된 저변엔,
이광수가 그렇게 한심한 족속들로 매도한 조선백성들의 힘이 있었던 것이다.
선비는 붓 대신 칼을 들고, 농부는 농기구를 무기삼고, 아낙네는 행주치마에 돌을 나르며, 승려는 목탁 대신 창을 들고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30만이 넘는 사무라이들을 상대로 석 달이면 족하다는 전쟁을 7년이나 버티다 끝내는 물리쳤던 것이다.
그런, 조선민족의 면모를 이광수는 “이순신”이란 연재소설을 빙자하여 그렇게 매도하며 친일에 앞장섰건만, 민족의 단죄는커녕 해방 후에도 위대한 소설가로 추앙 받도록 교육을 시킨 이 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나라인가!
독립투사의 자손은 못 먹고 못 배워 병약한 몸으로 길거리를 배회하고, 친일파의 자손은 해외 유학에 물려받은 재산으로 떵떵거리고 사는 이 나라---,
하긴 독립군을 뒤쫓던 일제시대 때 경찰간부가 해방 직후에도 경찰간부로 행세하던 나라꼴이라니!
요즘 이런 광고를 본 적이 있다. 모두 “예”라고 할 때, “아니요” 라고 할 수 있는 사람. 모두 “아니요”라고 할 때, “예”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제기랄! 아서라, 말아라. 그런 광고 믿다간 멍청한 “쪼다”되기 십상이지---, 순진하셔! 그래도 나는, 자기에게 불리할 줄 알면서도 당당하게 소신을 굽히지 않는 순진하고 멍청한 쪼다(영악한 놈들 눈엔)가 좋더라!.
- 시나브로 핀 연꽃 -
2002.2.20 .y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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