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시골에 갑니다.
'전화 효도'로는 어딘지 모르게 한계가 느껴지기에 말입니다.
어머니 혼자 계시는 집은 '혼자 내음'이 물씬 느껴져 방안에 들어서면 허함을 느끼고 맙니다.
지난 일요일 아침도 평일과 다름없이 눈을 떴습니다.
새들의 노래를 듣고는 그 소리에 가락을 붙이는 시늉을 하다가 벌떡 일어나 집 앞의 텃밭을 거닐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거닐어 나온 뒤 바지를 보니, 발목을 덮은 바지가랑이가 온통 젖어 있었습니다.
순간, 드는 마음이 이랬습니다.
"가을~, 가을은 밤새 밤이 우는 계절이구나.
그래 잎사귀가 넘칠 듯이 눈물이 글썽글썽하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를 만나 좋다고 하는구나.
속에 든 것이 보일락말락하게 조금 바라져서 닫히는 모양으로
'발쪽'대면서 내 바지를 손수건으로 아는구나.
이슬 같은 눈물을 대신 쓰다듬고 있었던 잎사귀가 그 눈물을 닦았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 인기척 그리워, 그리워 하다가 스치는 흔적을 닦으려고 얼마나 아침 오기를 기다렸나'
싶어 다시 풀섶으로 들어가 이러저리 마구 돌아 다녀주었습니다.
내 발길이 지나간 자리는 이슬방울이 떨구어져
주변 풀들에 비해 말끔하게 세수를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나는 듯했습니다.
물기 잔뜩 머금은 바지가 풀을 스칠 때마다 훌쩍이는 소리가 나는 듯 했습니다.
'배시시'한 웃음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가을이면~
"어둠이 밤새 우는구나" 하는 생각,
잎에 내려앉은,
잎에 묻어 있는 이슬방울은
"밤새 울음 운 흔적"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기특한 것이라 속으로 되씹으면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다
"그래, 그 눈물을 감추려고 가을은 또 그렇게 아침나절이면 안개 자욱한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울어 부끄러운 나머지,
햇살에 눈물 시나브로 사라질 때까지 안개 속에서 눈물 감추려 그랬나 싶었습니다.
낮 동안 내리쬔 따가운 태양에 짓눌려,
눈 제대로 뜨지 못하다간,
이내 어두운 밤을 만나면 낮 동안 뜨지 못한 눈,
크게 떠 두리번거리다가,
어둠에 감추어진 추억 더듬다가 흘린 눈물 말입니다.
그 이슬 같은 방울이 깨끗한 것은 순수의 눈물이어 더욱 그렇게 보이는가 봅니다.
오늘밤은 그 우는 소릴 들어보아야 할 듯합니다.
자연이 우는 모습,
울었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여간 행운이 아니었습니다.
동물들의 울음, 웃음은 수없이 보아 왔지만
새삼 식물의 눈물, 그 이슬 맺힌 눈물이 아롱진 보석처럼 보여 한없이 고왔습니다.
식물들의 웃음은 '꽃피는 것'이라고 평상시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웃음만을 보아왔는데,
오늘은 식물의 울음을 보면서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구나' 하는 반성을 하였습니다.
"꽃, 너~ 나에게 웃음을 줘. 그래 꽃피어 줘.
그래 그 웃음 가져다간 내 방에 놓을꺼야.
그래서 너의 웃음을 보면서 나 행복할꺼여"
그랬다 싶어 '못됐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내가 그 식물에게 준 웃음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동물에게 또 준 것은 있었던가.
하기야 동물은 몸짓, 소리로 시늉이라도 하면서
즐거움을 표하기에 간혹 즐거울 수 있도록 머리 쓰다듬기, 맛있는 음식을 주기도 했지만,
식물은 쓰다듬기보다는 꺾어버림을 택했으니 얼마나 잔인한 애정 표현인가.
우리 인간의 웃음과 울음,
그 짓이 수없이 많은 것을 오늘 사전을 찾으면서 새삼 알았습니다.
눈가에 넘치려 삐죽 나오는 '글썽거림',
소리 없이 입만 벌리고 부드러운 눈인사를 던지는 '봉싯거림',
울상이 되어 금방이라도 눈물나올 듯한 애절한 '울먹임',
너무 좋아 흐뭇한 태도를 보이는 '해죽거림',
'흐느낌', 등등.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일부러 볼을 살짝 움직이며 지어 웃는 '살웃음'이 많은가 봅니다.
마음은 시쁘면서(마음에 차지 않으면서) 억지로 웃는 '쓴웃음'까지.
정나미가 떨어지는 웃음보다는 오히려 실큰 우는 모습이 더 고울 때 있습니다.
"그래 실큰 울어라, 울면 더 나을 거야~"
예사로운 일에 자주 부끄러워하는 '잔부끄러움'과
은근하고 진실한 정분으로 아롱진 '속정'이 있는 사람이 흘리는 울음,
그 흘린 눈물에는 진한 애정이 느껴지기에 그런가 봅니다.
흘리고 싶은 눈물,
그 눈물을 오늘은 정말 실큰 흘리고 싶습니다.
한 정에 깊은 정을 붙이면 그에 딸린 것까지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덧정'이 오늘따라 생겨납니다.
아침결이면 이제부터 손수건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