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만의 반란. 그리고 휴가. ......... /글사랑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어딘가 떠나야 한다.


학원 휴가 날짜에 동그라미를 치며 반란을 모의하고 있었다

몸과 마음 모두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쉬는 것만이 약'이라는 의사의 권고가 아니라도 쉬고 싶었다

직업상 책을 많이 읽어야함에 얼마나 가슴 설레였던가?
그러나 두 달에 오십여권의 책을 읽고 분석해야 하는 금년의 방학 준비 과정은 나를 두 번이나 응급실 신세를 지게했다.

15년이라는 세월에 방학 때면 의례히 거치는 행사였고 읽어야 할 책을 책상에 수북히 쌓아놓고 흥분마져 느끼지 않았던가?

한 권 한 권 읽으며 읽은 책을 옆으로 치울 때.
어느덧 읽은 책이 안 읽은 책보다 많아질 때 건방지게 지적 자부심까지 느끼지 않았던가?


그런데 금년은 달랐다.
'오월에 오월에 뻐꾸기가 울었다'는 왜 이리도 내용이 우중충 한가?
다른 때 같으면 '무겁긴 하지만 깊이가 있네.'했을텐 데.
내가 선정한 아니 특히 각 중등학교 필독 도서가 왜 이리 내용이 무거울까?
불평이 늘어났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시골에서 나를 기다리는 남편과 시댁이었다.
나의 휴가는 시댁에 들려 어른들께 용돈 드리고 모시고 바닷가 고향 돌아보고 농사 짓는 남편에게 가서
돌아오는 날은 손이 달달 떨려 운전을 하기 힘들 정도로 실수 투성이인 농사 일 돕는 그런거였다.

학생들 방학이 다가오자 남편과 시댁 형님은 나의 휴가 날짜를 확인한다.
시아버님도 시누이도 나의 의무에 익숙해져 있었다.


반란!
이제는 반란이다.
나도 나를 찾아야겠다
바닷가 콘도를 예약해 놓고 휴가를 기다리는 막내에게 전화를 했다.

"야! 너 그 콘도 나에게 양보해라."

전화 저쪽에서 놀라고 있을 막내의 표정이 떠 올랐다.
평소의 엄마가 아니였을테니까.
그것도 한창 성수기에 온천으로 바꿔놓으라고 했으니...
늘 같은 모습으로 나의 세상살이를 들어주시는 수녀님께도 전화를 드렸다.

쉬고 싶다고...


이렇게 나의 반란은 시작이 되었고 반란에 동참할 동지까지 모였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금년 휴가는 좀 쉬어야겠습니다."

온천으로 수도원으로 간다는 나의 비장한 선언에 시댁에서는 볼멘 목소리만이 들려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쩔꺼야.이혼할꺼야?"


친구!
영화 '친구'는 관람을 하지 않았지만 나의 친구만은 못 하리라.
지칠대로 지쳐 온 몸이 늘어져 버린 나를 친구는 싣고 수안보로 달려주었다.

"나 쉬고 싶어.수안보 가자."
"그래? 가지 뭐."

우리에겐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늘 골골대던 한 친구는 지친 나를 보며 씩씩한 척 해주었다.
떠나던 날 아침에는 서울 지역에 호우경보가 내려져 있었다.
앞이 안 보일 정도의 세찬 빗 속을 친구는 농담까지 하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나의 반란에 놀라기도 하며 때론 안쓰러워 하기도 잠시 옛 얘기에 빠져들 땐 차를 갓길에 세우고 웃어야 할 정도로 즐거웠다.

2박3일의 온천 휴가는 날씨마져 우리 편이었다.
가는 곳마다 활짝 개인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곳곳마다 물난리 소식인데 비는 우리 뒤만 따라오는 듯 했다.
수안보의 온천에 몸을 담그고 문경새재 골짜기의 물에 발을 담그고 보낸 휴가는 지친 나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


이젠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으리라.

나의 반란에 선뜻 응해주는 친구들이 있는...
에미의 요구에 한 마디 질문도 없이 인터넷 앞에 붙어앉아 여행 일정을 맞추어 주고,
예쁜 옷도 사주고,
몰래 통장에 여행비도 입금 시켜주는 자식들이 있는데...

바다가 훤히 보이는 마산의 수도원으로 안내하여 마음을 씻게 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있는데...


일주일 간의 나의 반란은 끝을 맺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엄마! 전 언제나 엄마처럼 떠나봐요?"

세살 다섯살 남매를 키우는 딸아이가 전화로 묻는다.

"30년 더 기다려.나도 결혼 35년만의 반란이야."


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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