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앙상한 가지에 11월 열아흐레의
싸늘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조금 더 지축이 돌고나면
그 가지에 찬 바람이 불고,
별들의 속삭임마저 냉랭한 겨울이 오실테지요?
그대...
아마도 작년 이맘때의 일이었어요.
그 날도 나는 여늬 때와 같이 양학동 등산로에
혼자서 등산을 갔습니다.
꽃동무는 어디 두었느냐구요?
무슨 일이 그리도 많은지 아무리 달래고 꾀어도
일핑계로 따라 나사지 않았답니다.
풀들은 다 마르고, 활엽수 나무들의 잎새들도
거의 다 지고, 미처 떨어지지않은 마른 상수리 나무의
잎새들이 부는 바람에 팔랑이며 울부짖어
보는이의 마음을 애처롭개 하고 있었지요.
그대,
호기심이 많은 나는 야산인 양학동의 등산로이지만
이 곳 저 곳, 이 길 저 길을 거의 다 다녀 보았는데,
그 날 두 번째 운동기구와 쉼터가 있는 곳에
다다랐을 때, 왼쪽 아래로 이제 막 몇 사람이 다니기
시작한 길을 처음 보게 되었어요.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 쪽은 경사가 급해서
거의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데,
몇 사람이 간 흔적을 보고는
"나처럼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도 있군...!"하는
마음으로 흥미를 느끼며 내려깄습니다.
조금씩 미끄러지며 잠시 후엔 작은 도랑이
있는 골짜기에 도달 하여 도랑을 막 건너려 할 때,
마른 잡초위에 맛있게 보이는 노란 밀감 한개가
탐스럽게 있었습니다.
그대...
그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밀감을 주워 들었지요.
그리곤 땀이 조금 나고 목이 마르던 차에,
'잘 됬다. 웬 횡재야!' 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그 밀감을 먹기위해 껍질을 벗기려는 찰라에
불현듯 번개같이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그 '생각'이란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 이 밀감안에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불 특정인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찬 어떤 사람이 '독극물'이라도 넣었다면...?"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다음 순간,
나는 자신에게 말 했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마음 비우겠다는 너도
밀감을 빠뜨린 사람 하나 믿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영악한 속물에 지나지 않는 구나!" 라고...
그리곤, 내마음은 잠시 실로 근복적인 갈등을
해야 했지요.
"이 밀감을 버린다면, 아마도 저 멀리 제주에서
한 해 전에 씨눈으로 잉태되어 봄에 꽃피우고,
주인의 알뜰한 보살핌으로 여름을 자라 나
가을에 수확되어 포장되고 팔리고 운송되고
또 몇 번을 팔려서, 어느 분의 등산 가방에 넣어졌다가
여기에 와서 그냥 썩어 버릴 운명리라니...
밀감의 한 생은 얼마나 허무할까...?"라고 말입니다.
이 말에 그대는 웃을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의 내마음은 목적을 위해 우리와 함께
있는 모든 사물과 생명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다는
인간이란 실존 자체에 대한 긍정이냐 혹은 부정이냐
하는 문제로 클로즈업 되었던 것이지요.
그대...
"말감 한 개의 단순한 문제를 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느냐구요?
그 밀감 한 개 버리면 그만인 것을 가지고
머리 아프게 사느냐구요?
그래가지고 이 험란한 세상를 어이 살아내려 하느냐구요?"
글쎄 말입니다.
편하게 살면 그만인 것을 말이지요.
나도 전엔, 아니 그 무렵도, 지금도 내 삶의 대부분은
아마도 그렇게 살고 있겠지요.
그 날 처럼 어쩌다 내 내부에 있는 거부 못할 그 무엇이
되살아 나면, 그렇게 되니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답니다.
하지만, 조용히 마음 가라앉히고 묵상 해 보면,
가끔씩 예고 없이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유성처럼
혹은, 어린 시절 그 낭낭하던 어머님의 목소리처럼
아름답게 내 존재를 꿰뚫어 오는 메시지를 내가
외면 할 수 없음을 나는 압니다.
어느 술 좌석에서 이 얘기를 약간 했더니
환갑기에 든 어느 분이,
"그런 생각으로 밥은 어떻게 먹어?" 하더이다.
나의 마음이 비록 그 분의 말씀과 맥락은 같을지
모르지만, 차원이 다름을 그대는 이해 하실테지요?
그대...
마지막 순간, 나는 내 생명을 건 모험을 하기로
무작정 결정했습니다.
영리하다 할 수는 없을 테지만 내 경험상으로
주위 상황과 시간, 밀감의 상태 등을 분석,
나름대로의 과학적인 결론에 의해 그 상황을 대처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밀감 껍질을 벗겨 그 탐스런 밀감을
아주 시원하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불과 몇초 내지 십여초에 일어난 상황이었지만,
내 '생명을 건 밀감 한 개의 모험'은
얼마나 큰 기쁨으로 다가왔던지요!
'막가파'라든가 '조폭' 그리고,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보복성 범죄'로 많이도 상했던
내 마음의 갈등과 갈증을
그 새콤하고 상큼한 밀감의 맛은 다
씻어내고 있었지요.
그대...
그리고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나는 아직 살 만한 세상에
살고 있는거야...!"라고.
그대...
우리 함께 앙상한 가짓 새로
저만치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러 가지 않을래요...?
늘 건강해야 하오.
20002년 11월 열아흐레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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