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중학교 동창들이 모였을 때다.
동창들이 모인 자리에 재테크와 주식 그리고 부동산
특히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30년만에 만난 여자 동창을 남자 동창은 복부인이라고 자꾸 놀린다.
하긴 내가 보기에도 차림새라든가 풍기는 분위기가 그런 부류로 보인다.

주식을 했는데 얼마 날렸다는 이야기와
아파트를 사야 하는데 어디가 살기도 좋고 가격에 대한 전망이 좋은지
뭐 이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 대해 생각하거나
직접 투자한 적 있느냐고

할 돈이 없어 못했다는 내 말을 모두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굳이 아니라고 설명하기 싫어서 그냥 두고는
나는 겁이 많아 투자 같은 것은 하지 못하고
100원 벌면 100원 쓰고 1,000원 벌면 1,000원 쓰는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만약 이 돈을 날리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했다.

내 대답이 조금은 엉뚱했는지 아니면 황당했는지
좌중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남자나 여자 다) 재테크에는
어느 정도 일가견들을 갖고 지금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는
그네들에게 내 말은 어쩌면 이상한 나라에 사는 엘리스의 말처럼 들렸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나를 어찌 생각했는지 모른다.
둘이서 맞벌이 하고 직장생활도 꽤 했으니까
어느 정도 기반은 잡혔으리라는 생각에서 한 말인지도 모른다.
그네들의 잘못이 아니다.
나이에 걸맞게 기반을 잡지 못한 우리가 잘못인 것이다.

남들 다 갖는다는 비자금 통장도 없고
남편이 벌어다 준 돈을 뻥튀기 하지도 못하고
가끔씩 목돈을 내밀어 남편을 감동시키지도 못한다.
남편이 남들에게 **에 관한한 우리 마누라에게 물어봐 하는 말도 하지 못한다

난 겁이 많다.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사람들에게 내가 부담이 되지 않을까
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데 그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을까
사교성이 부족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로 인하여 밀리지 않을까
만약에 이 돈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한다냐......

무슨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하늘이 무너질까봐
세상에 나가지 못하는 사람처럼 걱정이 참 많다.
막상 닥치면 생각하라는 충고도 많이 받는다.
미리 생각해서 기를 꺾거나 될 일도 안되게 만들지 말라는 말도 듣는다.

하늘이 무너질까봐 걱정하지는 않지만
자그마한 일에서부터 건곤일척을 다루는 일까지
이러면 안되는데 어쩌나 하는 걱정에 선뜻 내밀지 못한다.
비록 하늘이 무너질까봐 나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정한 하늘이 무너질까봐
쇠기둥만 잔뜩 박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맞을 것이다.

이제 쇠기둥은 그만 박고 싶다.
하늘이 무너지든 말든
무너진다 해도 또 다른 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 있을텐데
그 하늘을 이고 살면 될텐데
마음은 항상 떨쳐야지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기우에 빠져 산다.

100원 벌어서 1,000원은 만들지 못하지만
자동대출이나 현금서비스를 받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우리가
결코 가난하거나 못났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떳떳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작가: 잠탱이, 200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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