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병 달고 특별 휴가 차 고향에 갔다가 전우들과 나눠 먹으라고 부모님이 정성껏 싸 준 떡이며 과자나 부랑이며 바리바리 싸 들고 귀대 길에 오르려고 열차를 타는데 승강대에서 묘령의 처자가 앞에서 되게 거치적거려 확 밀치고 힘겹게 좌석을 찾아 앉았다.
아뿔사 바로 그 처자가 옆자리 손님이 아닌가. 이런 낭패가...
마산역을 출발하자마자 사과 겸 꼬실 겸 수작을 걸기 시작했다. 마산에는 우짠 일로 왔으며 저기 보이는 저 산이 노비산인데 노산의 집이 바로 저기 있으며 가고파에 나오는 바다가 바로 저기 보이는 저 바다며 여기는 어쩌구 저기는 저쩌구 해대며, 전우 먹이려고 싸 준 보퉁이를 마다 않고 끌러 축을 내가면 서리 기차가 서울역에 도착하기까지 장장 예닐곱 시간을 바짝 붙어 잘 드는 입에, 씩씩한 용모에 바리바리 싸 온 음식까지 그 처자의 마음은 확실히 안 잡았겠느냐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그 때 만일 제대로 일이 풀렸다면 절반 이상 남은 궁짜 낀 군바리 생활도 주말 면회 오는 묘령의 처자로 인해 꽤 빛났을 거라는 그 점을 당연지사로 믿고 있다. 지금까지...근데, 그 놈의 '무숙녀' 한 구절만 그 때 떠오르지만 안 했어도 말이다.
기차는 종착역을 앞두고 영등포역에서 잠시 정차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멋진 모습을 보여 강렬한 인상을 심겨 줘야지.
"제가 읽은 무숙녀란 소설에 보면 주인공 청년이 열차 여행 중 여주인공(평소 가장 존경하는 소설가의 딸)과 모르는 채로 우연히 동석을 하게 되는데, 그녀는 얼굴도 마음도 참 아름다운 처녀였으나, 그땐 목적지조차 없는 빈곤한 무숙녀였죠. 그런데 먼저 목적지에 다다른 청년이 이런 말을 하죠. 기차에서 만난 아름다운 인연일랑은 기차역을 빠져 나오면서 잊는 게 근사한 것이라 생각한다 고요, 우리의 우연한 동행도 참 아름다웠다고 생각합니다. 보문동 댁까지 잘 들어가셔요. 내내 즐거웠었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하여 한결 가벼워진 보퉁이를 들고 으쓱하기 조차한 폼으로 걸어나오는데, 등으로 아쉬워하는 그녀의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와수리 행 귀대 버스를 타기 위해 마장동 터미널에 와서 보니 왠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제기동까지 지하철을 타고 오는 동안은 찜찜한 채 참을 만 했는데 말이다.
이건 아니다. 가만 버스 시간이? 보문동이면 바로 저긴데, 어 택시, 택시 막차 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보문동을 휘젓고 다닌 깜냥은 우연을 가장한 멋진 조우를 기대한 몸부림에 틀림없는데, 긴 여름 해가 다 저물도록 효과는 없었다. 되도 안한 폼 잡다 큰 껀 수 놓쳤네, 그랴.
서부 영화보고 나오는 관객의 손이 극장 출입구를 빠져 나오는 한동안 건맨의 손처럼 흉내내고 있고, 25시를 관람한 후 빠져 나오는 관객의 눈가가 요한 모리츠의 그것처럼 젖어 있지 않던가?! 그러나 영화야 잠시 그러고 말지만, 요놈의 소설은 비슷한 상황이 벌어져야 딱히 한 번 써먹는 거 아닌가...
문학이 나에게 준 병폐 한 가지를 실감한 셈인데, 다만, 가곡 '그 집 앞'처럼 보문동이란 아름다운 동네 하나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