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한인현


      계란 폭탄


      가끔 뭘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얼마 전엔 갑자기 계란이 먹고 싶어 계란 하나를
      주전자에 넣고 가스렌즈에 올려놓은 채 외출했다.
      그리고 곧 잊어버렸다.
      몇 시간 후 아들이 시험기간이라 열쇠를 놓고 갔다며 빨리
      집에 오라는 전화를 받은 순간까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3시간 후 집으로 돌아오니 온통 탄 냄새와 연기 다 타 버린
      재와 시커먼 주전자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들이 일찍 발견해서 그나마 천만다행이었지 가스 사고가
      남의 일이 아니었으니 놀란 가슴 쓸어안고 그만하기를 감사했다.


      이런 얘기를 친구한테 했더니,
      그 친구는 더 놀랬던 자신의 얘기를 해주었다.
      신혼 때 갑자기 계란이 먹고 싶어 가스 불에 올려놓고
      잠깐 졸다가 갑자기 펑하는 소리에 놀라 깨어 보니,
      솥뚜껑은 천장에 맞아떨어지고 많은 계란이 천장에,
      벽에, 창문에, 온통 붙어 있었단다.
      그 참담함이란 정말 .....


      오래 전 TV에서 보았던 또 하나의 계란 사건이 생각났다.
      한 아파트에서 창문으로 연기가 나자 이웃 주민의 신고로
      소방차가 오고 난리였는데,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가
      연기 나는 곳을 바라보니 자기 집이었다고.
      사연인즉 계란을 올려놓고 아들을 찾으러 내려왔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 얘기하다 보니 깜박 잊어버렸단다.


      하루에 수만 개의 뇌세포가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그때의 생각이나 할 일등을 메모하는 습관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때때로 잊어버리는 나이임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잊을 것은 잊어야 하겠지만 정말 이런 일들로 인해 자신이 슬퍼지는
      일들은 없었으면 좋겠다... 계미년 새해에는.
      ......




      친구의 건망증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나이 탓일까.
      배를 잡고 깔깔대며 웃는 일이 건망증 이야기이다.
      나의 실수이건 남의 실수이건 어쨌든 좀 모자란 이야기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친구가 하루는 길을 가다가 누가 인사를 하기에 아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인사를 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한참을 걸어가다가 생각해 보니, 그분은 자기가
      10년 넘게 다니고 있는 교회 목사님이었다고,
      이럴 수가...


      또 한번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차안에서 누가 반갑게
      인사를 하기에 옆에 있는 친구에게,
      "누구지? 나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모르겠어." 하니
      "우리 교회에 같은 나이또래 여전도 회장이잖아."
      매사에 이 정도였다.


      언젠가 청주에서 올라와 터미널에서 만났을 때도,
      차표를 두 번이나 샀다고 속상해 했다.
      금새 잊어 버렸다나...
      그런 이야기는 계속 되었고 우리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었다.
      그 친구는 겸연쩍은 듯 이렇게 변명을 한다.
      "아니야, 수술을 여러 번 해서 그런 거야..."


      그런데 친구 남편은
      "다 잊어도 괜찮으니 남편만 잊어버리고 말아 달라"
      했다고 한다.
      아내의 건망증이 수준 이상인데도 나이가 보여주는
      중후한 넉넉함이 멋있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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