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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가 생기면



    내가 지금 일하는 곳으로 온 지 6일자로 10년이 지났다.
    서울에 살면서도 한 번도 와 보지 못한 곳 노원구 성냥갑 같은 아파트만
    넓은 벌판에 자리 잡고 있어 나는 아주 낯선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예전에 마들평야라고 부를 정도로 기름지고 넓은 벌판이 콘크리트
    아파트촌으로 변모했다.


    여기 오기 전에는 강동구로 출퇴근했다.
    직장 근처에 올림픽공원이 있는데 출퇴근하면서 버스 창 너머로 보이는
    공원에는 영화 모정에 나오는 나무와 언덕이 있었다.
    올림픽회관 앞으로 지나는 길에서 보면 아주 운치 있게 보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곳은 언덕이 아니라 위례성이라고 한다.


    아무튼 잔디가 파랗게 깔린 언덕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면
    영화 모정에서 주인공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이 떠오른다.
    나도 나중에 애인이 생기면 올림픽공원 저 곳에서 남자의 무릎을 베고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으며 다정하게 속삭일 거야.
    퇴근 시간에 보이는 그 곳은 노을 빛으로 반사되어 나를 몹시 들뜨게
    만들었다.


    연애도 해보지 못하고 결혼하였다.
    그렇다고 남자들을 싫어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소설에 나오는 근사한 연애를 하고 싶었다.
    그런 연애를 얼마나 동경했는지 모른다.
    나는 나중에 남자가 생기면 꼭~


    가보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곳.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남자를 그려보지만
    항상 마음뿐이었지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남자가 생기면 꼭 함께 가고 싶었던 곳..........남산이다.
    남산순환도로 중 주말이면 자동차가 통행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
    인적이 뜸해 데이트하거나 마음에 맞는 사람과 걷기에 그만한 곳이 없다.
    그 길을 둘이서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해야지.


    또 다른 곳................................ 여의도 윤중로다.
    물은 없지만 천변으로 둑이 길게 연결되어 있고
    사람의 왕래가 드물며 특히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 차가 너무 많아 탈이지만 벚나무가 좀 더 자란다면 멋있을 거야.
    봄에 꼭 와야지.


    그리고 올림픽공원 모정의 언덕이다.
    휘파람을 잘 불거나 기타를 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금상첨화고
    그도 아니라면 이야기를 많이 해야지.
    반드시 내가 무릎을 베고 누울 거야.


    남자가 생기면 꼭~
    하고 별렀던 일들은 많았지만 한번도 하지 못하고 결혼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아쉬움만 남는다.
    지금은 남편과 간다고 한들 그 기분이 날 것이며
    애인이 생겨 간다고 한들 불륜이라는 죄책감에 그 기분이 나겠는가.


    벚꽃이 흐드러질수록 남자가 생기면 했던 마음을 즐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남편이 가지 않는다면 나 혼자서 무슨 재미로 가겠는가.
    올 봄에는 남자가 생기면 했던 기분을 늦게라도 맛보려 했는데
    꽃은 활짝 피었건만 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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