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국민정당의 국회의원이 된 유시민의원의 신선함을 나는 좋아한다.
그는 스스로를 '지식소매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연구자나 전문가들이 내놓은 경제학(그의 전공)에 관한 것을 쉽게 전달하는 책이나 역사책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 단체의 성명서와 선언문을 수 도 없이 썼고, 중편소설로 등단도 했으며 텔레비전 방송 드라마 대본도 써 보았고 신문의 시사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MBC 백분토론과 라디오 대담 프로그램을 진행했음을 또한 우리는 안다. 한마디로 그는 우리 사회에서 선호하는 '엘리트 지식인' 이라는 호칭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그런 그가 이제 새 정당을 만들고 국회로 갔다. 그 첫날, 그는 국회에서 의원선서를 하는 그의 첫 '일'에서 그를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묘한 '부딪힘'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그의 복장의 문제였는데, 의사당에서는 양복을 입는 관례를 무시하고 면 바지에 면 티를 입은 평상복 차림의 그를 다른 선배 의원들이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다음날 와이셔츠에 타이를 맨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나와서 의원선서를 했고, 그날 함께 의원선서를 하게 된 다른 두 의원보다는 다소 긴 인사말을 통해 "어제 옷을 그렇게 입은 것은 튀려고 그랬던 것도, 넥타이 매기가 귀찮아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다만 이제 국회는 나의 일터가 되었으니 일하기 편한 옷을 입어보겠다는 뜻으로 그랬다" 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선배의원들 앞에서 싱글거리며 자기주장을 끝까지 피력하는 그의 여유를 보면서도 왠지 나는 유쾌하지만은 않음을 느꼈다. 튀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라는 그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날 분명히 튀었고, 일하기 좋은 복장이란 말 또한 선서를 하는 그날의 '일'에는 별 해당사항이 없어 보였다.
그날, 그의 홈피에는 찬사와 격려의 말들이 쏟아졌다. 양복입고 싸움질 이나 하는 국회의원보다는 평상복에 일하겠다는 의원이 얼마나 좋으냐, 의사당에 진짜 사람다운 사람이 서있는 것 같았습니다, 퍼포먼스라도 좋고 시선 끌기라도 좋습니다 등등.... 참 좋은 말들이다. 누군가에게 기대를 건다는 것, 우리에게 그럴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사실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러나, 한번쯤은 생각해볼 일이다. 국회를 열어놓고 욕지거리와 패싸움질 같은 양상을 보이던 그들에게 양복이 아닌 평상복이 입혀져 있었더라면 아마도 그보다는 몇 배 더 흉악한 우리의 국회의원 꼴상을 보게되지는 않았을까....
한 벌의 털옷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동물과는 달리 때와 장소를 따라 옷을 구별하여 입을 줄 아는 衣服의 문화를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 옷이 가져다 주는 시사성은 참으로 크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의원선서를 끝내고 돌아서는 그에게로, "다같이 소중한 관례는 지켜나갑시다" 라고 말했다는 박관용의원의 말을 그가 흘려 듣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를 너무 치켜세우지 않아서, 그가 자칫 판단을 흐리게 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그를 향한 우리의 사랑은 그의 '일함'을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며, 혹시라도 잘못된 길을 가려 할 때 있다면 바른 소리를 들려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지식인의 敵은 '자기확신'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확신이 없는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도 곤란하겠지만, '자기확신'만이 너무 강해서 다른 이의 주장에는 전혀 귀 기울이지 못하는 정치인은 더더욱 곤란하다. 그것이야말로 옛 중동의 바벨성에서 야훼께서 흩어버린 교만의 바벨탑을 다시 쌓는 일이 될테니말이다.
선거유세를 할때 재래시장을 돌면서 그가 "내가 당선이 되면 재래시장을 살리겠다"는 공약을 하자 측근의 한사람이 "왜 그런 지키지 못할 말을 하느냐"고 했고, 그 말에 "꼭 어려운 경제의 재래시장을 살려보고싶은 마음 에서 그런 말을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럴만한 아무 대책도 내겐 없으니 그 말은 그야말로 公約이 아닌 空約이 되어버렸군요"라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며 "그 말의 뒤에는 당선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나도 모르게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 말을 하며 씨익~하고 웃었을 그를 떠올리며 말없는 기다림의 응원을 그에게로 보내어본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지금처럼 그가, 정치꾼이 아닌 바르고 멋진 정치인이 되어주기를 빌면서.
오늘 이 대청에서 어떤 쓸쓸함을 견디기 위해 부르는 한 곡조의 노래처럼...
솔향 / 20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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