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憐憫·


이 요 조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서둘러 가자
모진 채찍에 궁굴어진 네 등짝을 보며 난
단, 두 글자를 쉽사리 헤아려 냈다
차라리 네가 엎디인 긴- 세월의 아픔이
그래 이제야 생각하니 바로 그거더구나
 
'연민'

수 천년 아니 수 만년을 닦아 쓸어 내려도
떠내려가지도 흔들리지도 숨죽여 꿈쩍도 않고 있다가
어느 날 길가던 나그네, 나를 문득 불러 세우고는
뜬금없이 넌, 하늘빛이, 물빛이 곱지 않냐고...물었다.
가던 길 멈추고 퍼뜩 정신차려 고개를 돌려 보니
그제사 나는 끝도 없는 방죽길 안에 갇혀있었고
푸른 하늘이 주는 현기증에 핑글~ 주저앉고 말았구나

그러나 그 때...운 좋게도
나는 그 두 가지 푸른빛을 동시에 다 본 거였다.
정말 내 삶에 있어 진실로 감사할 행운이었지
희망에 감염된 감옥을 그제사 나는 부수기 시작했다.

가자.

그렇게 미련대고 엎디어 있다고
모진 세월의 삭풍이 비켜가더냐 떠나자.
내게 지름길을 안내해 다오
어눌한 내,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물이끼를 걷어내고 흙이나 솔솔-뿌려다오

희망이 두려운 너들은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저기 끝없는 신작로길 모롱이를 돌아 돌아가면
그래 맞어 바로 거기 서서 늘 눈이 짓무르도록
자유를 향해 기립해서 기다리는 '연민'
나는 그를 꼭 만나야한다.

바람이 차다.
나는 알몸인 그에게로 가서 내 저고리를 벗어 입히고
우린 함께 떠날 것이다.

바람조차도 자유로운 하늘을 향해
부드러운 새의 날개 짓을 익힐 때까지

우직한 바위처럼 고집뿐인
너는
항상 바보다.

 

'겨울날 곡운구곡(강원도 화천)에 누운 바위들'을 보며
중얼거리다. 11월 30일 Photo by Lee yo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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