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아팠었다
식중독으로(?)…….
그런데 그 아픔이 또 다른 부작용을 몰고 왔다.
아마 봄을 함께 앓았나 보다.

자주 들락거리던 카페가 시들해졌고,
나의 잡동사니 글이 시들해졌다.
말로만 봄~봄~ 외쳐대며,
입으로만 입춘대길~~ 어쩌고 가
아~ 나의 그 정체성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회색의 도회 속에서……
회색의 블록 속에서…….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음에….
나는 그저 앵무새의 습관처럼 중얼거렸을 뿐…..

누구의 詩에서처럼
귀한 흙이라도 뚫고 솟아오른
햇살보다 더 눈부신……
노오란 민들레가 보고싶다.

내가 바랐던 봄은,
그 지긋지긋했던 눈(雪)에서 풀려나는 해방 감 이었고….
모질게 추웠던 영하의 기온을 어떻게 든
모면해 보자는
형편없는 핑계였다.

그저 이 겨울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눈 많은 겨울을 불평하고
“하이든의 종달새” “봄의 소나타”
“김화용의 봄 처녀”
같은 음률이나 기억하는 걸로
내게 봄이 오는 줄 알았다.

그런 나에게도….
봄이 드디어 찾아왔다.
연두 빛이 아닌 노란 색으로…..
풋풋한 자연의 바람과
녹아내리는 질척거리는 뻘과….
한줌의 햇살처럼 …….
나의 메일 함에 들어 있었다.

초면 이였다.
그런데 오래 전,
마치 옛날부터 알고 지냈던 동생처럼
다정하고 상냥스러웠다.
봄의 전령사답게…….

나의 시답잖은 글들을 읽고
건네 온 답 글 이었다.
편지를 쓰다 말고
장 닭이 홰를 치며 운다고 쓰여져 있었다.
나는 그녀의 편지보다
그 늠름하고 멋질 장 닭이 실은 더 궁금해서
다시 답신을 보냈다.

그녀는 여주 어디 메쯤
전원주택에 사는 주부였다.
몇 계절을 세상과 동떨어져 살며
이웃집에서 분양 받은 닭 몇 마리를 키운단다.
장 닭 한 마리에 암 닭이 서 너 마리…
처음엔 부부 한 쌍과
좀 앳된 암 닭 두어 마리를 드렸는데
이젠 그 장 닭이 본처는 돌아보지도 않는단다.
그 아줌마 닭은 잘 낫던 알도 낫질 않고,
어쩌다 장 닭 곁에라도 가려 하면
젊은 새댁들이 쫓아 낸단다.
젊은 새댁들은 이미 병아리를 깠고
그 병아리들을 아줌마 닭에게 맡긴 채
지네들 끼리 마실을 다닌단다.
그래서 아줌마 닭이 불쌍하다고……
나도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랬다.

아직 춥다.
옷깃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썰렁하다.
누가 그랬던가?
“보리 푸름에 (봄에)중 늙은이(설 늙은 이) 얼어죽는다” 고
마치 그 아줌 닭이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의 자화상 같은 생각이 들어
연민이 다 생길 지경이다.
그나마, 봐 줄 병아리 손자들이 없으니……다행일까?

그녀는 또 편지를 보내왔다.
해토(解土)하는 땅이 질척거려
닭을 못 꺼내 준 안쓰러운 이야기….
봄 방학 중에 아이들 데리고
잠시 서울로 올라와
꽃무늬 예쁜 찻잔으로 차 마시는 여유를
한 겨울 덧신에 방한복을 챙겨 입고
기르는 동물(개도 두 마리)밥 주러
나가지 않아도 되는 거드름의 자유를….

질척이는 땅….
흐르는 물 소리에….
엊그젠 벌써 나온 개구리 소리를 들었다고
전해 주었다.
난, 반갑다기 보다 상대적 허무를 느꼈다.
봄을 낯 선 메일 속에서만 그려야 하는 나,
노오란 병아리 떼들….
삐약거리며…뛰뚱대며…..
살아있는 봄, 곰실대는 봄,
샛노랗고, 햇살보다 따스하고 보송거리는
병…아….리….
그 건 생명이다. 시작이다. 약동이다. 환희다.
여리고 예쁜 부리로 물도 먹고 흙도 헤집을….여린 발가락,
의욕이다. 희망이다. 욕구다 도약이며 본능이다.
자연이다…..살아있음에….바야흐로 봄이다.
말 그대로 튕겨져 오르는 ,스프링이다.

정말 봄이 오긴 왔었구나…
봄 소식을 이렇게 접하고 앉은 나 자신이
유모로 자리매김한 늙은 암 닭같이
내 정체성을 어디에선가 상실해 버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다.
요 근래 몇 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야
“어? 봄이네”
문득 꽃이 져 버린 어느날
“어? 벌써, 덥네”
이러고 살아 온 나였던 것 같다.

그래,
무거운 외투를 벗어 던지듯 벗자.
일어나자.
………………………………
이런 핑계로, 저런 핑계로,
나를 가둔 건 자신이 아니든가?
알 낫기를 거부한 암 닭처럼
나 스스로 포기한 부분이 없지않아 있다는 걸
인정하고
이 봄을 두 팔로 열정적으로 뜨겁게
뜨겁게 꽉 껴 안자.
내 인생의 그림에 덧 칠이라도 하면
누가 또 아랴
내 인생의 누런빛이 또 다시 샛노란 빛이 될지…….

3월 2일 잠 오지 않는 새벽에









'가납사니 > 사람들·舊,미루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 때문에,  (0) 2001.03.21
사람과 사람사이  (0) 2001.03.09
꿈의 정의  (0) 2001.03.02
매향  (0) 2001.02.28
산다는게 무언지....  (0) 2001.02.2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