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마지막 토요일 가야금의 거장 황병기님의 국악 연주회를 보러갔다.
딸은 부모님께 해 드리는 거라곤 문화를 책임진 아이처럼 그 덕에 오페라, 연극, 영화, 음악회, 책등으로 자주 선물을 받는다.
지나는 말로 국악이나 정가가 '나이가 들어가니 좋아지더라.' 했더니, 표를 두 장 끊었나보다. 그래도 오페라나 음악회는 꼭 R석을 구입해서 주는 정성이 고마운데...
황병기님의 '미궁' 외국연주회에서는 공연도중 관객이 뛰쳐나갔다는 둥.. 미궁을 세 번만 거푸 들으면 죽는다는 루머등이 나돌아 궁금해서 들어 보니 정말 으스스하긴 했다.
국악이라기엔 메탈같은 음악적 요소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왕이면 황병기님의 ‘미궁‘ 연주를 이 기회에 들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갔었다.
대단하지 않은가?
내가 결혼할 당시 75년도에 이런 음악을 창작해 내시다니 분명 시대를 앞서가는 분임에 틀림이 없으시다.
나는 황병기님의 부인이신 한말숙(펜클럽회장)님을 먼저 알았다.
한 이십년 전 잡지에서 한말숙님 댁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전통한옥이었다.
내가 꿈꾸어 오던 그런 집!
그러다가 네티즌 생활 어언 팔 년차
내 글에 쓰일 음악을 넷에서 서핑 하러 다니느라 국악도 좀 알아야겠기에 '정가카페'에 가입도 했었고, 마음에 맞는 국악을 만나보면 거의가 가야금 '황병기'님으로 되어있었다.
무지한 나도 그제야 알았으니, 황병기님의 명성은 아마도 그 때부터 대중화되지 않았나 싶다.
작년인가 황병기님 과의 대담 TV프로를 보게 되었는데 나는 님의 해학적이고 여유로운 화술에 깔깔대며 재밌어 하다가 그만 사람에 반하게 되었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황병기님도 직접 뵙고 그 말씀도 들을 수 있다기에 갔으나, 연주회에서 실망만 잔뜩 안고 왔다.
연주 한 곡당 15분여~ 일곱 분? 내지 여덟 분? 마지막에 황병기님이 나오셨지만 어째 기운이 하나도 없으셨다.
특유의 미소도 없으시고 그 연주에 심취하신 것도 아닌, 마치 가야금 조율하러 나오신 듯한 그저 그런 표정으로 가야금을 타신다. 서 계실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시더니만,
어제서 그 이유를 알았다.
세종문화회관이 노조쟁의중인 줄 몰랐었다.
문화회관 뒷마당에서 왁자지껄해도 그려려니 했었는데...
세종문화회관 예약공연들의 취소가 속출하고 있다한다.
들어설 때부터 뭔지 이상했었다.
프로그램 팸플릿 하나 사지 못하고 들어갔다. 좌석 안내도 엉망이었다.
공연장은 어린이들로 혼잡했었고, 가야금의 거장이라 불리는 '황병기'님을 처음 뵙는 자리가 그랬었다. 얼마나 속이 상하셨으면, 70 노구에도 아직 열정적이신 분이 그렇게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을까?
국악에 대한 사전 정보나 지식도 없이 그저 사람이 좋아서, 그리고 넷상에 접했던 그의 음악이 좋아서, 다녀왔지만 별반 전율로 이어지는 감흥은 구하질 못했다.
그래도 일개 우리나라의 대공연장 '세종문회회관' 아닌가?
한 이태 전인가? 작가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한 달에 한 번 꼴로 있는, 서너번 참석했는데..이제 그 프로그램은 없어졌는지 메일이나 편지도 숫제 없다.
그 때는 3층이었는데... 그 당시 그런 그냥 일반 조명뿐이다.
음악회에 적절한 조명은 감상의 집중이 잘 된다. 이 건 그냥 세미나식의 조명일 뿐,
그저 밝기만 할 뿐, 황병기님만 부분적으로 비춰질 약간의 스포트라이트도 아무런 조명도 없다. 그냥 초등학교 발표회장 같은 분위기다.
물론 내용에 질을 두겠지만...나는 그래도 가야금에 어울리게끔 조명으로라도 밤을 나타내고 달빛에 흔들리는 댓잎사귀 그림자로도 은은히 비춰질 줄 알았다.(국악은 처음이니까)
나 역시 해금을 아쟁인줄 알았고 대아쟁을 거문고 쯤인 줄만 알고 앉아 있었으니...
R석 중에서도 가운데 좋은 자리건만 바로 옆에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단체로 자리 잡아 지루했던지 운동화 찍찍이를 붙였다 뗐다, 손과 발은 잠시도 그대로 둘 줄 몰랐다. 휴식 시간에 물어보니 강원도 원주에서 왔단다. 관광버스로, 아마도 R석이 많이 비니까 아이들로 보충한 모양이다. 먼저 아무데나 자리 잡았다가 사람이 오면 일어나주는 그런 식이다.
"에구..너희 선생님도 너무하시지 이리 좋은 가을날에 청계천에다 너희들을 풀어놓던지 놀이동산으로 가든지...."
내 말에 부은 볼로 말없이 고개만 주억거렸다.
나는 음악회랍시고 흰 실크 블라우스를 모처럼 다려입고 까만 바지 정장에다 스타킹에다
간만에 신는 딱딱하고 굽이 약간 있는 구두에다 심신이 그냥 지쳤다.
기대에 못 미친 스트레스~~
남편대신 대타로 나온 S는 가을 밤길 걷기에 날씨가 딱이라며 청계천을 걷자고 졸라댔지만 (청계천 광장앞에서)
이 복장으로 청계천을 걷기엔 솔직히 자신이 없어 종로 빈대떡 집에서 막걸리 반 잔으로 갈증만 축이고는 황망히 들어왔다.
글/이요조
넘버3 넘버3 ㅏ@ㅗ Y 2005.11.05 16:10:12
귀기가 서려있군요^^
이거 듣다가 자면 입에 칼을 문채 웃고 있는 처녀귀신이라도
만나겠습니다.
흐흐..그렇지요?
좌절한 인간의 처절한 울음아닐까요? 그러다가(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마음을 가다듬고...다시 시작하는....바로 우리네의 모습,
아주 바닥에 떨어진
신음과 고통 그리고 위로 다시 오르며 시작하는....전 그렇게 생각해요.
아래는 국악에 대한 지식이 없어 검색글로 보충합니다.
황병기, 고대의 우물서 현대음악 길어올린다.
현대음악가 황병기(68). 그를 단지 '가야금 연주자'라고 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연주는 겉으로 드러난 일각(一刻)일 뿐, 물 속에 잠긴 황병기의 본체(本體)는 '창작' 혹은 '탐구'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
20대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도전해온 새로운 음악의 길. 그는 "난 지금도 스무살 청년의 마음으로 산다"며, "우리 음악뿐 아니라 클래식, 재즈, 대중음악도 다 좋아한다"는 말로 세상의 모든 음악을 향해 활짝 열린 심성을 드러냈다. 28일 오후 8시,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송년음악회로 마련하는 '황병기의 음악세계'. 1962년 작곡한 '숲'에서 1989년의 '소엽산방'(掃葉山房)까지, 황병기의 음악적 연대기를 더듬어보는 연주회다.
"우리가 흔히 '전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조선'이지요. 특히 가야금의 바이블은 조선시대의 산조인 셈인데, 웬만해선 이 틀을 벗어나기가 참 어려워요. 내 창작과 연주는 '조선'이라는 전통에서 벗어나서 '현대'로 가려는 노력이었지요. 난 아주 오래된 옛것이나 현대의 새로운 것에 관심이 있어요. 그 둘은 서로 통하는 것 같아요."
음악가 황병기가 털어놓은 음악의 요체. 그것은 결국 고대의 깊은 우물에서 상상의 두레박으로 길어올린 현대다. 특히 74년 작곡한 '침향무(沈香舞)'가 그렇다. 황병기 스스로 "내 음악의 전환점"이라고 설명하는 곡. 그는 "전통(조선)을 벗어나기 위해 신라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고 덧붙였다.
인도가 원산지인 상록수를 바다에 가라앉혔다가 말려 추출한 향료. 따라서 침향무는 인도의 향기 속에서 추는 춤이다. 불교음악인 범패에 뿌리를 둔 새로운 선율로 서역의 공후를 연상시키는 연주기법이 특이하다. 황병기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곡은 이번 송년음악회에서도 연주된다.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 대부분은 음반 '춘설'에 담긴 곡들. 특히 '남도환상곡'(87)은 "산조를 바탕으로 전혀 새로운 음악을 만들려고 했던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황병기는 "산조이면서 산조가 아닌 음악, 혹은 20세기 말의 새로운 산조"라는 말로 이 곡을 정의했다.
'하림성'(河臨城·82년)은 황병기가 작곡하고 대금 연주자 홍종진이 무반주로 연주하는 곡. 역시 신라로 거슬러 올라가는 상상의 음악이다. 악사(樂士) 우륵이 신라 진흥왕 12년에 하림궁에서 가야금을 연주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 그것이 바로 작곡의 모티프. 비슷한 선율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고조되는 미니멀한 구성이 특징적이다. 황병기는 "소설가 김훈씨가 '현의 노래'를 쓸 때 이 곡에서 적잖은 영감을 받았다더라"고 전했다.
황병기의 창작곡 가운데 널리 알려진 곡은 역시 '비단길'과 '미궁'이다. 특히 '미궁'은 몇 해 전 인터넷을 통해 '세 번 들으면 죽는다. 이미 세계적으로 3,000명이 죽었다'라는 울지 못할 루머가 퍼져 황병기를 당혹스럽게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야금의 전통적 음향을 전혀 들을 수 없는 곡. 게다가 웃음과 울음, 신음 등 인간의 목에서 튀어나오는 원초적 소리를 '날것' 그대로 담았다. 75년 명동국립극장 초연 당시, 한 여성 관객이 무섭다고 소리치며 연주회장 밖으로 뛰쳐나가기도 했다. 다행히(?) 이번 공연에선 연주하지 않는다.
음악적으로 추구하는 새로움과 달리 '자연인' 황병기는 세상의 속도에 무관심하다. 50년대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전화번호를 계속 사용하는 그는 "국번만 몇 번 바뀌었어. 그건 나라에서 바꾼 거니까…"라며 껄껄 웃었다. "이제 체력적으로 연주하기 좀 힘들지 않은가"라고 묻자 "물론 박력은 옛날보다 떨어지지만, 그래도 원숙한 맛이 나지 않는가"라고 여유롭게 되받았다.
이번 무대에서 연주하는 곡을 포함한 황병기의 창작곡들은 국내에 5장의 음반으로 묶여 나와 있다. C&L뮤직에서
발매한 이 음반은 클래식과 국악, 재즈 애호가 모두에게 콜렉터 아이템으로 권할 만하다.
황병기의 작품은 신비로운 영감에 찬 동양화의 수채화 같다.
극도로 섬세한 주법으로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들이
음악에서 청징(淸澄)함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뉴욕 타임즈-
동양에 새로운 타입의 음악창작가들이 있다. 황병기가 그 두드러진 예이다. …
(이들에
의해)포스트모던 시대에 비서구음악의 위대한 전통들이 다시 살아나고
현대적 인 올바른 위치를 지니게 된다.
E. 살즈만(Eric Salzman, 작곡가)
미궁 *음성:무용가 홍신자
가을
밤의 소리
춘설
파헬벨의 캐논
비단길
침향무
★ 전통 악기 이미지로 보기(64종)
http://www.koreainstru.com/cgi-bin/bbs/bbs/~bbs/dongyaung/sub41.htm?Uid=$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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