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함과 아름다움 ]


오늘은 공항에 나가야 한다.
그이가 오후 6시 비행기로 도착하기 때문이다.
별 준비를 하지 않는데도 부산하다.
신 공항까지 갈려면 일찍 서둘러야 했다.
그 쪽은 초행길이다.
공항 가는 길목, 그 동네 어귀에 오는 봄도 보고 싶어
피곤하지만 그런대로 눈을 부치지 않고 구경을 하기로 했다.
참, 아직은 지리나 진입로를 몰라 리무진을 이용하기로 했다.
시내에선 길이 막혀 옆차선 차랑 나란히 물려 가다 서다 하고 있었다.
옆 차선에 바싹 붙어 있는 차 속 풍경이 수상쩍었다
운전자의 얼굴은 잘 보이질 않지만…
아마 내 나이쯤 된 여자 같다.
핸들에 얹은 손이나…..
진주 목걸이를 한 목덜미….연두색 니트 상의….상체의 바디 라인
등으로 짐작해서도,
조수 석 자리의 남자는 그다지 많아 보이는 나이는 아닌데…….
그녀의 손이 그의 손을 만지는 게 아니라 주물럭거리고 있다.
처음엔 내가 뭘 잘못 보았나 했다.
별 해괴한 일이….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그는 계면쩍어 하며 주위를 살피는 표정이더니 나와 눈이 슬쩍 부딪혔다.
얼른 잡힌 손을 빼 버렸다
차 넘버를 보니 렌트카? 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내가 그런 사람…. 잠시라도 손을 잡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
생긴대도…나는 그렇게 그런 자리에선 절대 손을 잡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할 것이다.
운전을 시작한지… 어언 10년이 넘었다.
어두운 밤에도 앞 차의 실루엣만 보고도 그 들이 어떤 사인지...
아님, 빽 미러로 보아도 뒤차에 탄 남녀사이가 어떤 관곈지 알 수가 있다.
저러고 운전을 어떻게 하나 싶게 마주 보며 낄낄대는 이들……
아님 그저 시무룩 서로 딴청만 부리는 진짜 부부들의 모습
연애하는 심정으로 그런 모습으로 살던 날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그래 그를 맞아 돌아 오는 길에는 나도 살며시 손을 잡아 보리라~~
영종대교 아래로 펼쳐진 갯펄이 인상적이었다.
오늘이 음력 8일 조금이라 간만의 차가 심할 때라 그런지
더욱 볼만 한건지…..처음 보는 나로서는 아무튼 신기했다.
오후라서 뉘엿 뉘엿 넘어가는 해가 눈 부셨다.

막상 공항 본청사 앞에 다다른 갈래 길에 다가 선 자가용들이 모두 멈칫거리며
서 있는 안내에게 일일이 물어 보고 있었다.
아마 도로입구 전광판에 '주차장 만차, 장기주차장으로 이동' 하고
써 진 것을 보았기에 헷갈리나보다.
아직 개항이라 그 너른 벌판에 손님도 얼마 없을터에 주차장 만차라니......
왜 그러는지 버스를 타고 있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차를 두고 오기 참 잘했다고 나 스스로 기특해 했다.

신문이나 TV로 보던 인천공항의 야경은 참으로 멋있었다.
동북아의 허브….어쩌고 한 말 아직은 겨우 새 집으로 이사만 급히했지,
웅장한 껍질만 있었지,내부로는
뭘 꾸미고 다듬고 한 예술적 미학감이 전혀 없다. 급조한 흔적만 역력하다.
실제 실내 안에서 느끼기엔 천정이 낮고 폭도 그리 넓지않아 답답했다.

김포 국제 2청사는 미래를 생각해 볼 때 좁지만은
기품이 배어있었다. 당당함이 스며 있었다.
외관이 어딘지 우리 기와 추녀처럼 완만한 곡선을 이루어
마치 살짝 치켜 올라 간 우리 여인네들의 외씨 버선코 같은 운취도 있었다.
실내도 이층에서 3층이 오픈 되어 우리 한옥의
山野를 마주 향해 탁-트인 대청마루 같은 느낌이 있었다.
떠나는 사람, 보내는 사람, 그 애절한 이별의 아쉬움에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는 뭔가가 있었다.

인천 공항의 느낌은 아직 낯 설기만하다.
마치 조립식의 길쭉하기 만한 건물 내부에 서 있는 느낌이다.
아무런 맛도 멋도 없다.
그냥 새로 지은 어느 고속터미널을 길게 확대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일 뿐이다.
그저 회색의 방대한 시멘트 덩어리다, 차라리 실내보다는 바깥에 나오니 그나마 멋스럽다.
실내의 전면은 유리고 바닥은 대리석이고 그냥 그렇다.
우리 눈에는 건물의 전체적인 조형의 외관이 보이지않으므로…….
각 매스컴에는 얼마나 떠들썩 한지… 바닥이 거의 유리 수준이라
치마 입고 다니기엔 좀 그렇다는 둥,
유리로 된 누드 엘리베이터(가칭)가 있어서
아래에서 치마 입은 사람이 보이게 생겼다느니…..
과연 그랬다. 그런데… 그 엘리베이터는 의외로 지저분해 보였다.
국제 공항을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많은 양의 짐이 있는데…
마치 바깥에서 본 풍경은 화물 전용 엘리베이터 같았다.
그 걸 가려 주었다면….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겐 바깥 경치를 볼 수 있게 하고
바깥 사람들 에겐 좀 가려주었다면 하는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중앙 입구 전광판을 보고 출구를 찾아 나섰다.
출국 출구는 A,B,E,F 로 나뉘었다.A~F 까지는 끝에서 끝이다.
한참을 걸어야 한다.
거대하므로 상대적인 불편이 뒤 따랐다.
바닥은 대리석으로 새 것이니까 윤이 났다.
김포 국제 1~2청사 바닥이 워낙 지저분하다 보니 그런 말이 나왔겠지 하고 좋게 생각했다.

내부 중간마다 설치된 정원은 어느 아파트 모델하우스 수준에도 못미치는
조야한 조경이였다.
아니, 전철역의 어느 정감 있는 곳 보다 못했다.
혹시나 배웅 나왔다가 못 만나게 되려나 하고 서 있기를..
착륙하고 도착해서 1시간이 지났는데도 영 감감 무소식이다.
뒤에서 모 호텔에서 나온 직원이 하는 말
“저 전광판 게이트 표시, 틀리는 게 좀 있어요 ”
그 얘기를 흘려 들으며 설마 ...했다.

금발의 키만 껑충 큰 여자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아~ 한 남자가 다가선다.
둘은 말없이 다정하게 따스하게 서로 안는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참 보기가 좋다. 내 그런 느낌에 나도 흠칫 놀라며
있는데 포옹에서 여자가 뒤로 한 걸음 풀려나자
일순간 남자가 여자를 가볍게 끌어당겨 또 가벼운 입맞춤을 해 버린다.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참 그러고 나더니 세로판지에 싸 온 붉은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넨다.
정말이지…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왜? 올 때 보았던 별 좋지도 않았던 그 남녀의 모습이 떠 오르는 것일까?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그 생각을 애써 털어 버렸다.

누가 그이의 이름을 피킷해서 들고 있다.
언제나 겪던 일이라 간단히 인살 했다.
“같은 사람 기다리는군요”
“아, 그러세요?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군요”
그리고 30분이 더 흐른 후에야 휴대폰 덕으로
우린 엉뚱하게 다른 게이트에서 나와 있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특유의 경상도 급한 성질로 나를 나무랐다.
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 것 같다고 짜증을 내었다.
이런…. 거의 두 달여 만에 보면서 웃어도 시원찮을 텐데…..

샘플 받으러 나온 거래처 그분이 전광판 오류라고 얘기 안 했으면
서둘러 핑계대지 않는 나와 한참을 좀 그랬을 것이다.
기분이 영 엉망이다.
아까 한 외국인이 픽업 온 사람을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고 난처해 했다.
아마 그 사람도 게이트가 잘 못 표기되어 그러는 것 같았다.
아무리 군데 군데 임시 안내요원을 두었지만 이런 오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당황스러워 하던 외국인 걱정에 궁금해진다.
많은 피해자들이 나처럼 중얼대다 돌아서는 수 밖에……
우린 또 그렇다 치고 외국인들은 …?
처음 이 땅에 발을 딛은 외국인은?
가이드가 아무리 나와 여러 시간을 열심히 피킷을 들고 있어도
게이트가 다른데….. 각 출구 간격이 까마득한데……
그렇다고 구 청사처럼 각 출구 모니터도 없는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된다면 필요치도 않지만……
돌아 오는 리무진 버스는 김포공항을 들린다.
국내선과 연계를 해야 되고…
사람들 얘기론 멀어서 버스료도 비쌀 뿐더러 승용차론 도로비도
비싸고….또, 김포에 내려 집까지 가려면 어차피 지하철을 많이 이용한다고 했다.
국제 1청사나 2청사는 쥐 죽은 듯이 문을 닫아 걸고 캄캄했다.
적막감에 어쩐지 감회가 씁쓸하다.
내가 상상한 인천 공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다가 보니 영종 대교의 야경이 화려했다.
그런데 다리 연결구간에 차가 지나 갈 때마다 차가 덜커덩거려
외국인의 심정이 되어보니 창피스럽고 민망하다.
연결사이 틈새를 지나칠 때마다 "덜커덩"
거리며 나는 소리가 왜 그렇게 가슴을 찔러대는지...

산을 깍아 도로를 만들고 소나무나 고급수종을 이식하고.....
공항을 위한 거리에다 쏟아 부은 돈도 만만치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영종대교 아취가 연두색으로 칠해져서 이 봄에 솟구쳐 오르는 새싹의 상징물로 보였다
적어도 내눈에는… 꼭대기 깜빡거리는 빠알간 불빛이 연두빛 아취 위에서 꽃송이처럼 예뻤다.
그렇다 인천 공항도 우리것이다. 새 싹이다.
우리가 가꾸고 사랑하지 않으면...애정을 갖지 않으면 누가하랴?
가꾸고 다듬자......시작에 불과한 일이다.
그래서 도약하는 정말 동북아의 허브로 탄생하면 참 좋겠다고 오면서 생각했다.

피곤하다.
애꿎게도 모니터 하나없는 사람들 틈 새 돋음발로 비집고 서서......
한 번 앉을 수도 없이 두 시간,
오며가며 네 시간,
총 6시간을 마중나가는 데다 할애했다.

오면서 나는 그이의 손을 잡지 못한 건 물론이다.
그간 궁금해서 이것저것 묻는 그이 말에도 나는 계속해서
뾰루뚱해져 있었기에…..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그런 정경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나이임을 낸들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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