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랑♡
★소년 ★
|
오래된 애장품을 들고 나와
그 연대를 측정하고 어림잡은 가격을 부치고 하는 TV 프로가 있다.
나에게도 전혀 돈이 되지않는 그런 물건들이 조금 있다.
작은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 끝에 밭을 가시다가 그런 것이 나오면
그냥 깨 버려 밭둑으로 버린게 부지기수라 하셨다.
그 곳은 경남 김해로 옛날 가야국 터전이다.
절대 그렇게 깨어 버리시면 안 된다고 말씀 드렸더니
그 얘기도 옛날 이야기고 이제는 모르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이젠 숫제 땅에서 나올 것도 없다 하셨다.
그 게 벌써 30년도 훨씬 더 흘러간 이야기다.
질녀가 하도 좋아라 하니까
어느 날,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갖다 주신 "고배"(나중에야 이름을 알았음)
제기처럼 다리가 달려서…
역시 무엇을 고임의 뜻으로 받들어 올리는
잔이나 받침으로 쓰임샌 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국미술대전집'을 구입하게 되고 그 책에서 목각,
금속 등 공예집에서 우리 전통의 오래된 미술품의 사진과 설명…..
나는 점점 골동품의 가치에 흥미를 두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가치라 함은 돈으로의 가치가 아니라…
가슴에 닿는 예술을 초월한 장인들의
솜씨와 영혼을 느낄 수 있었다면 너무 거창한 과장일까?
굳이 영혼이나,
장인성을 떠난 얘기를 하나 하려고 설명이 장황해졌다.
집을 계약하려고 둘러보니….. 새삼스럽기에 그냥 기록해 본다.
아주 단순한 책꽂이 하나,
넓인 키보드판만 하고 색깔은 붉은 갈색이 난다.
나무를 재단 한 솜씨보다 칠을 한 솜씨가 돋보여 어딘지 모를
재단의 단순미가 오히려 심플해 보이기 까지 한다.
이 곳으로 이사를 와서 옆집 대문밖에 버려졌길래…..
비록 보잘 것 없는 두 칸짜리지만 정성스레 만들어 진 것 같아
어딘가 끌리는 구석이 있어 뒤집어 아래를 보았더니…….
"1967년 3월 아빠가" 하고 써졌다.
나는 "세상에나~~"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필경 옆집 (내 추리로)아저씨가
첫 아들 초등학교 입학식을 기념해서 만들었을 년도였다.
이웃집 아주머닌 그 당시에 지금 내나이로 혼자 아들 둘을 데리고 사셨다.
아저씨는 유명을 달리 하셨는지 몰라도 아무튼 안 계셨다.
마침 만난 아주머닌 책꽂이를 들고 있는 나를 보더니
"그 것 뭐 하게요…..쓸데 없어요"
아예 매몰차게 답변까지 다 내리신다.
"그럼 이것 저 가져도 돼요?"
"그 걸 뭐 하러~~" 하며 딱한 얼굴로 나를 바라 보았다.
아마 그 집 첫 아이를 초등학교에 갓 입학시키고 너무 기쁜 나머지
목재를 구해와서 서투른 톱질을 하고…..
색깔을 내고…. 니스칠을 하고……..
흥에 겨워, 콧노래도 불렀을…….
이 작업을 진행하는 한 父情이 어른거려 보였다.
다 만든 후 완성 날자를 새겨 넣으며,
필경, 당신 아들을 위한 기도를 하였으리라.
당신의 사랑의 맹세를 각인하는 마무리였으리라.
내 것도 아니면서,
지금은 언제나 내곁에 가까이 있다.
항상 내 곁에…제일 가까이 있다.
정리를 잘 못해서 방바닥에 늘 어질러지던 책들을 담고…..
고정된 자리가 아닌….. 방바닥이나, 거실이나. 주방이나,
비스듬히…….. 자연스럽게…..
친밀한 반짓고리처럼.. 가까이 언제나 내곁에 있다.
방금 배달된 채 뜯지도 않은 우편물,
읽다 둔 책, 공책, 사전, 요리책...등,
바닥도 얼마나 사포로 잘 밀었는지…
매끈해서 죽-잡아당겨도
쪼르르 잘도 밀려 온다.
다른 물건들과 조화도 잘 이뤄서 너무 대견스럽다.
그런데 늘 마음 한 구석,
"내 물건이 아니고 임시 보관한 듯 함은 왜 일까?"
그 집 식구들을 만나면 도로 돌려 주고싶다.
아마, 지금쯤은 중학교나 고등학생의 아이를 둔 아버지로,
아버지의 심정이 되어본 지금에사,
그 아버지의 사랑을 확인하고 눈물 흘리며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신 아버지가 당신을 위해 만든 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사랑의 증표를…….."
글/이요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