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장릉 보리밥집

 

 

영월 장릉 보리밥집

 

태백산 천제단에서 망경사로 하산하는 길,

망경사 그 아래 쯤에 단종비각이 등산객이 오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어린 왕의 억울한 죽음을 사람들은 단종이 죽어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다 굳게 믿고는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매년 음력 9월3일 산신제를 드리는 곳이라 한다.

민심이 천심이라 어린 단종을 애석히 보내고 사람들은 그 영혼을 일러 산신령이 되었다고 믿었으니..... 

영산인 태백산의 산신령이 되어 태백을 오르는 모든 이들의 안전을 보살피고 계심인가?

사람들은 모두다 잠시 쉬어가며 비각안을 단종의 용안이라도 훔치듯, 기웃대고 있는...풍경~

 

※ click~하시면 좀 더 큰 글씨로 읽을실 수가 있습니다.

 

 

단종이 잠 들어 있는 영월은 ‘영월만의 별다른 먹을 거리’가 없다.

하지만 영월에 들렀다면, 더구나 장릉(단종의 능))에 들렀다면 장릉 옆 보리밥집에는 꼭 들러 보라고 권하고 싶다.

 

태백을 오르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간단히 떡국으로 때우고, 점심은 그냥 산정에서 육포나 곶감,

호두, 쵸코릿 정도로  깔딱 요기를 마쳤다. 늦은 감이 없지않지만 점심을 맛있게 먹으려고 참았다는 게 옳다.

당골광장에 내려와서는 다시 커피나 군것질 등으로 입맛을 다시고는 영월로 출발 영월 장능에 도착했다.

 

일행은 오늘 힘깨나 썼으니 고기를 먹자 그러다가 이 곳 보리밥집이 유명하다니 다수결에 의해

그냥 보리밥이나 먹고 가자고 들어간 집,

 

처음 감자전이 나오고, 사진 찍을 여가도 없이 게눈 감추듯 사라지고,

도토리묵이 나왔지만 그 것도 어디로 갔는지 흔적이 없고

나 역시나 배가 고팠는지....다리가 아파 지쳤는지...사진을 한 장도 못 건진 것 보면...ㅎㅎㅎ~~

 

등산화를 벗고 모두는 따뜻한 방에 식탁밑으로 발을 쭉쭉 뻗고 앉아서는 들어오는 음식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하고 있는 중이다.

 

배가 고파서 맛있었다고? 그런 생각이라면 그냥 읽지 않으셔도 된다.

주부경력 9단들이 모였는데, 모두 통털어 미식가들 단체라 불러도 걸맞을 오랜 주부경력들이다.

 

보리밥이 나오기 전 묵채를 시켰다.(6,000원)

모두의 자지러지는 탄성! 고소함과 시원함 그 가운데 걸림없이 목으로 후루룩, 넘어가는 매끄러움,

 

 

묵채는 부드러운 도토리묵을 채썰고 거기에 김치를 쑹쑹 썰어 넣고 김을 듬뿍 얹은 위에 깨와 참기름으로..... 

한 숟가락 떠서 입맛을 자극하기도 전,

 고소한 냄새는 코를...먹어보지 않아도 맛있어 보이는 모양새는 눈을 자극했다.

 

"음~ 바로 이 맛이야! 강원도의 맛!"

 

 

※묵채란 도토리 재료든 아무튼 묵으로 빚어 굳은 다음 칼로 채썰어 국물을 부었으니 쉽게 말하자면

묵국수? 묵국? 이라고 해야할까?

 

※.....그 외 또 다른 강원도의 재미있는 묵 이름들,

묵을 굳히지 않고 성긴 체에 부어서 찬 물로 받으면 묵이 물방울처럼 떨어져서 굳은 게 올챙이 같다하여

올챙이묵이라고도 한다니 너무나 귀여운 이름이다.

 

강원도 사람 고유의 해학이 스민듯한 이름이 여기 또 하나 있는데, 이름하여 콧등치기....바로 메밀묵,

메밀로 만든 콧등치기는 쫄깃한 면발이 호르르 입속으로 들어가다 콧등을 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참으로 재미나지 않는가?

 

 

드디어 기다리던 보리밥,(오처넌)

전주 전통 골동반 처럼 놋그릇도 아니고 나온 찬들은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다.

그냥 메라민 큰 대접에 보리밥 그 위에 우스꽝스럽게 푹 삶아 찌부러진  감자가 하나 얹혀있다.

그 게 전부다,

"에게~~ 감자 아냐?"

그런데...된장을 넣고 나물을 넣고 비벼서 입에 들어가자 그 감자가 들어 보리밥을 찰지게도 해주고

반숙 계란같이 묘한 매끄러운 맛도 내는 게 아닌가?  그 맛이 신기했다.

 

 

 

갖가지 야채 반찬은 별, 멋은 부리지 않아도 마치 외할머니의 손맛을 대하는 듯하다.

깊은 맛에 갑자기  시골 고향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참 장릉 보리밥집 입구에는 좀 특이한 것이 민들레 말린 것, 국화 말린 것, 영월산 오미자,

기타등등 ....많았는데...나는 오미자를 사왔다.

기침에 약효가 좋대서....말린 민들레도 사오고 싶었지만 작년에 말려 둔 게 아직 남았으니 내년 봄에

직접 채취해 볼까 해서....경험이 있는고로 눈여겨 보니 깨끗하고 공 듦에 비해서 가격도 싼 편이었다.

 

주방을 홀깃보고 방으로 들어갔는데...마당을 가로질러 주앙에 있는 주방은 안으로 깊숙한데

그릇들이 놓여진 거나 일하는 모습 등등...늘 맛을 찾는 사람들이 붐비는 식당이란 걸 한 눈에 제깍 알아볼 수가 있었다.

 

 

모두는 너무 지친 나머지 정릉구경은 다음으로 미뤘지만 아무튼 장릉 입구에 있는 보리밥집 하나는

잘 선택했고 모두들 잘 먹은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웅, 보리밥에 그 묵채, 또 먹고시퍼~~"

 

 

 

 

 

★영월읍 영흥리 장릉입구/장릉 보리밥집 033)374-3986

 


★장릉 소재지 :  영월읍 영흥리 1086, 1087, 산 131-1외 10
                       문의처 : 영월군청 문화관광과 : 033) 370 - 2531
                       장릉안내 : 033) 370-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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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이요조

 

단종릉 장릉안내(下) 검색 정보 올립니다.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와 사약을 받고 승하한 관풍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시를 남겼던 자규루, 그리고 주검이 묻힌 장릉 등에서 생생한 단종의 한과 넋을 느끼어 본다



정조 15년(1791)에 건립된 곳으로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받친 충신위(忠臣位) 32인, 조사위(朝士位) 198인, 환관군노위(宦官軍奴位) 28인, 여인위(女人位) 6인을 합하여 264인의 위폐(位牌)를 모셔놓은 곳이다.

매년 한식날 단종제향후 제사를 지낸다. 



 

 

 

 

 

 

 





정조때 박팽년의 후손인 영월 부사 박기정이 수축한 우물로, 단종제를 올리는 한식때 제정(祭井)으로 사용했다.

일설에 의하면 보통때는 조금씩 샘이 솟았으나 매년 한식날 제사 지낼 때에는 물이 많이 솟아 올랐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정려각은 1726년(영조 2년)에 어명으로 세운 비각으로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여문이다.
비석은 1833년(순조 33년)에 가필하여 같은 해에 또 다시 증축하였으며, 1876년 (고종 13년)에 고종이 증시하기를 '충의'라 하여 1879년 (고종 16년) 비석에 있는 것을 다시 고쳤다.



 

 

 

 

 

 

 





한식날인 단종제향때 제물을 올리는 곳으로 정자각 또는 배위청(拜位廳)이라 한다.






 

 

 

 

 

 

 





1698(숙종24년)노산묘를 장릉으로 추봉하고 영조 9년에 비각과 수복실, 정자각을 세웠다.

비석전면에는 "조선국 단종대왕 장릉"이라 쓰여있다.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장릉에 있는이 배견정은 장릉(莊陵)에서 능선을 타고 남쪽으로 남하하던 거북이가 머리를 번쩍 들고 맑은 하늘을 바라 보는 것같은 형상을 한 언덕위에 네모진 아담한 정자가 있으니 배견정이라 한다.

배견정은 낙화암에서 순절한 시녀들의 넋이 단종묘소를 찾아와 죽어서 두견이 되었다는 단종대왕 영혼 앞에서 울며 절하던 곳이라 하여 배견정이라 이름 지은 것으로서 이 정자는 1792년 사육신의 유일한 혈손인 박팽년의 현손인 박기정 부사(朴基正 府使)가 창건하였다.
단종을 두견새에 견주어 말하 것은 여기서 연유된다.

옛적에 중국 촉나라의 망제가 그 신하인 “요령”에게 임금의 자리를 빼앗기고 궁궐을 쫒겨나서 서선에 숨어 살면서 복권되기를 기원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객사하였다.
이에 촉나라에 돌아가지 못한 그 원귀가 새가 되어 “촉혼귀” “촉혼귀”하며 울었으므로 그 새를 두견새라 하였다고 한다.
이 새의 이름은 여러 가지로 불리워지는데 두우, 두혼, 촉혼, 촉백, 자규 등이다. 왕위를 빼앗기고 객지에서 죽은 왕의 영혼을 비유하는 말이다.



영월 장릉 경내 입구에 낙촌기적비각이 있으니 영월군수이던 낙촌 박충원이 노산묘를 찾은 일에 대한 사연을 기록한 기적비각이다.

이 비각은 1974년 5월 5일 그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1973년 성균관장 창산 성낙서가 쓴 비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단종이 폐위되어 영월로 유배되고 사육신의 참화가 일어나고 종친, 구신 등 삼족멸문의 화가 계속되니 세정은 극도로 음험할 때 단종마저 사사당하시니 엄흥도는 충성으로써 단종시신을 업어다가 황량한 산골에 암장하였다.
어제의 군왕이 오늘과 같이 참변을 당하셨으니 어찌 천도가 무심하며 금지옥엽의 영혼인들 어찌 철천의 한이 없겠느냐. 엄호장 마저 세상을 떠나니 그 묘소조차 알길이 없어 풍설속에 버려지게 되었다.
이 후로는 이 고을 군수가 도임하면 원인 모르게 죽기를 7인에 이르렀다.

중종 36년에 박충원이 군수로 부임한 즉 군리(郡吏)가 피신할 것을 권하였으나 박충원은 죽는 것은 명이라 하고 의관을 정제하고 등촉을 밝히고 단정히 앉아 있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임금의 명을 받들어 온 세사람에게 끌려가 본 즉 숲속에 어린 임금을 여섯신하가 둘러서 모시고 있었다.
임금을 꾸짖어 내다 처형할 것을 명하였으나 세 번째 있던 이가 살려두자고 임금께 아뢰어서 처형을 모면하였다.
깨어보니 꿈속의 일이 단종대왕의 일이라 짐작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려 단종묘소를 수소문함에 엄호장의 후손의 안내로 찾아가 보니 꿈 속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묘소를 수축하고 정중하게 제사를 올리니 그 후부터는 군수가 부임초에 죽어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단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단종역사관

잊혀지고 왜곡된 단종의 역사를 바로 잡고 이를 널리 알리고자 건립된 단종 역사관은 단종의 즉위식에서부터 사약을 받는 모습 등 단종의 일대기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연대기식으로 모형전시되어 있다.

 

 

 

 

 

 

 

 

 

 

 

 

자가용
|서울 |
◎ 경부.중부고속국도 → 신갈.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 →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 → 제천I.C(38번국도) → 서영월 나들목 → 장릉방향 우회전(59번국도) → 장릉
◎ 경부.중부고속국도 → 신갈.호법분기점(영동고속도로) →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 → 신림I.C(88번국도) → 주천(영월방향) → 북쌍삼거리(좌회전) → 영월삼거리 → 장릉
대중교통
영월~장릉 시내버스 07:00-20:00, 20분 간격 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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