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섬 우도/최 석운畵]

우도

 

꿈꾸는 섬, 우도를 가려면 성산포로 가야한다.

성산포에는 우도로 향하는 배가 있다. 사람은 왕복 7,000원 차는 소형,중형에 따라 다르지만 15,000 정도면 된다.

(검색에는 일인당 4000원까지 되어있음...그러나 실제 7,000원/섬 입장료 포함)

마라도는 배에서 하선...한바퀴 돌고 1시간 30분 후에 반드시 배를 타고 나와야한다(외도처럼)

그러나 우도는 다르다.

돌아오는 배표를 따로 준다(민박도 있으므로) 우도 마지막 배는 오후 6시,

10분이면 당도하는거리지만,,,차를승선하선시켜야하므로 4~50분 소요.

우도에서는느긋하게 식사도 즐길 수 있고 슈퍼도 있다.

 

성산포 일출봉호텔에서 일박하고 새벽등산을 할까... 물어보니

호텔료는 38,000원이란다. (헉?믿기지 않을정도  굉장히 싼 편/직접 전화문의/아무래도 모텔수준인갑써/도리도리)

성산포에서 일출봉까지 등반코스...30여분 정도/계단식 등산로

그냥... 한라산 다녀온 뒤끝이라 등산은 무리일 것 같아 바라다만 보면서 지나쳤다.

 

다행인 것은 날씨가 아침에는 꽤 흐려서 일출을 볼 수가 없었을거란 생각에

반드시 성산포를 가려면 날씨가 쾌청인 날만 골라서 가야한다는 것을...

 

우도에 가면... 자전거를 빌릴수 있지만  자전거로는 우리 나이에는 좀 무리고(일주 세시간)

네 발 전동 스퀴터가 있는데... 한시간에 30000원이란다,

차를 가지고 들어가는 게 제일 싸다.

 

요즘엔 비철이라 렌트비도 40,000원이면 된다.

우도엔 관광버스도 있지만...아무래도 편히 자유스럽게 볼 수 있는 것은 내 차밖에 없다.

 

관광버스는 모두 우측으로 돌아 우도의 젤 좋은 경관에서 오래 정차하는 모양인데..그리고 다음은 그저 밋밋하게 보일 뿐,

 

★반드시 좌측으로 돌아보시기를 강력히 권한다.

뭐든 잔잔한 아름다움에 먼저 매료되어야지...처음서부터 절경을 보고나면 작고도 소중한 경치가 자칫..소홀해지기 싶기 때문이다.

 

 

 

時.越.愛.

신비한 편지함을 매개로 2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펼쳐지는 시간을 초월한 두사람 은주(전지현)와 성현(이정재)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시간을 초월한다는 설정 자체가 물론 환상적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더욱 빛나게 했던건 아름다운 영상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 전반에 보여지는 수채화같이 맑고 투명한 영상들... 조금은 신비롭기까지한 그 장면들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를 보며 문득문득 궁금해졌다. 저 장면을 찍은 곳은 과연 어딜까? 하고...
영화를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은주의 고향은 제주도다. 그리고 은주와 성현이 2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도... 그 제주도 분량은 모두 우도에서 촬영이 됐다고 한다. 우도는 성산포 동쪽에 바라보이는, 성산항에서 배로 20분정도면 갈 수 있는 작은섬이다.

마치 돌아누운 소를 닮았다해서 우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작지만 곳곳에 기막힌 비경을 간직하고 있어 탐라 제1비경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성산포를 뒤로하고 출발...

성산포

바라보이는 우도

,

  성산포항을 떠나며...일출봉을 뒤로하고.../배로는 10분 거리우도

차들을 싣고...출발

우도

 

왼쪽으로 처음만난 바다는 파래로 뒤덮인 장관을 이루고.../성산, 일출봉이 보임

 

우도

 

산호석...자잘한 살아있는 산호,  자란단다.

우도

 

해녀들..줌인으로 당겨서 찰칵~~우도

 

 

사진 무척 흐리다./나중에 그림자료나 쓰려했더니...우도

 

해녀들..나무란다. 옷 벗는거 찍는다고/줄행랑....실례~~~우도

 우도 등대와 전망대

우도

전망대....먼 바다 물결이 살아서 움직이고...(동전없어도 됨,무료)

우도

우도등대...갯메꽃이 지천이다.


기막힌 바닷가...가히 면경지수

우도

 

남태평양의 산호해를 보는 듯우도

 

물이 무척 차다고 꼬마가 일러주건만..나도 텀벙! 들어가고 싶다.

우도

 

호주 상공에서 바라본 남태평양의 물빛과 그 정취~~↓

우도

저 멀리 그 유명한 우도의 절경 절벽이 보임↓

우도

그 위에 있는 등대... 그 곳도 등산 (차마 가보지 못하고..마음만/정말 아끕다.)

우도

물빛이 고와서 하늘빛이 고운겨? 하늘빛이 고와서 물빛이 저리 조은겨?

우도

 

한 시간 대여료  30,000원/ 꼬마 바지 다 젖다.

우도

자칫하면 놓칠 뻔했던 풍경들,

우도

 

한라산 오른 다리가 풀렸나,,, 좀 웃네,

 

 

조기서 회 한 접시에 ...에 또...


나도 영화 찍고싶다.

등산했어야 하는데...정말로,


모터보트....타고싶지만....아서라~~~/나, 겁보

 

성산포 귀항

드뎌 꿈꾸는 우도에서 깨어나다.

 

 

 

★내가 만약 젊은이라면 차를 가지고 가서 우도 백사장에다 텐트를 치고 딱 사흘간만 살다 오면 좋겠다.

 

 

산호가 부서져서 만들어진 흰모래,  아름다운 서빈 백사해수욕장

백사해수욕장

검색이미지

 

제주도 북제주군 우도면(牛島面)을 이루는 섬.
위치 : 제주 북제주군 우도면
면적 : 5.9㎢
크기 : 해안선길이 17㎞, 최고점 132m
인구 : 1,752명(2000)

면적 5.9㎢, 인구 1,752명(2000)이다. 해안선길이 17㎞, 최고점 132m이다. 북제주군 우도면을 이루는 섬
으로 제주도의 부속도서 중에서 가장 면적이 넓다. 성산포에서 북동쪽으로 3.8㎞, 구좌읍 종달리(終達里)
에서 동쪽으로 2.8㎞ 해상에 위치하며, 부근에 비양도(飛揚島)와 난도(蘭島)가 있다.

1697년(숙종 23) 국유목장이 설치되면서 국마(國馬)를 관리·사육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거주가 허락되었
으며 1844년(헌종 10) 김석린 진사 일행이 입도하여 정착하였다. 원래는 구좌읍 연평리에 속하였으나
1986년 4월 1일 우도면으로 승격하였다. 섬의 형태가 소가 드러누웠거나 머리를 내민 모습과 같다고 하
여 우도라고 이름지었다.

남쪽 해안과 북동쪽 탁진포(濁津浦)를 제외한 모든 해안에는 해식애가 발달하였고, 한라산의 기생화산인
쇠머리오름이 있을 뿐 섬 전체가 하나의 용암대지이며, 고도 30m 이내의 넓고 비옥한 평지이다. 주요농산
물은 고구마·보리·마늘 등이며, 가축 사육도 활발하다. 부근 해역에서는 고등어·갈치·전복 등이 많
이 잡힌다.

부서진 산호로 이루어진 백사장 등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우도 8경이 유명하며, 인골분 이야기를 비롯
한 몇 가지 설화와 잠수소리·해녀가 등의 민요가 전해진다. 남서쪽의 동천진동 포구에는 일제강점기인
1932년 일본인 상인들의 착취에 대항한 우도 해녀들의 항일항쟁을 기념하여 세운 해녀노래비가 있으며,
남동쪽 끝의 쇠머리오름에는 우도 등대가 있다. 성산포에서 1시간 간격으로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우도 가는 길>

제주에 첫발을 딛게 되는 곳은 제주공항이나 제주항(여객선이용시)이다.

이곳에서부터 우도를 찾아가는 길은

* 제주공항(제주항여객터미널) → 성산포항(종달리항) → 우도항의 경로

* 시외버스를 이용할 경우

공항이나 제주항에서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로 이동하여야 하는데 이때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고 번거로움을 덜 수 있을 것 같다(택시요금 약 2000원 정도).
제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로 성산포항까지 이동하면 된다.
버스는 위의 약도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제주 버스터미널을 출발
김녕리,세화리,종달리를 거쳐 성산포항에 도착하게 된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성산포항까지 소요시간 60분에서 70분 정도.

*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제주시를 출발 위의 약도에 나타난 두개의 경로 중 하나의 경로를 선택하면 된다.
먼저 해안 국도를 이용하는 경로로 김녕리,세화리를 경유하여 성산포항까지 이동하는 경로이며
다음은 동부산업도로를 이용하는 경로로 제주시 화북동, 봉개동,성읍민속촌,고성리를 경유하여
성산포항까지 이동하는 경로이다.

해안 국도를 이용할 경우 여러개의 마을들을 거쳐가면서 제주의 마을 풍경과 바다를 내다볼 수
있어 여행의 맛을 느낄 수 있으며,
동부 산업도로를 이용할 경우 또한 비교적 한적한 도로를 달리면서 한라산 중턱의 경관들을
여유롭게 내다볼 수 있어 이동 경로로 선택해 볼 만하다.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 50분에서 60분 정도.

* 성산포항에 도착하면 운항시각에 맞춰 우도 도항선이 대기하고 있다.

우도 도항선은 매일 정기적으로 운항하여 이용에 불편함이 없으나 폭풍경보,주의보가 발령되면
운항이 금지된다.우도 여행시에는 사전에 필히 당일의 기상 상황과 예보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우도 도항선은 여객은 물론 차량까지 운송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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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도 취한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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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성산포 / 詩 이생진


수많은 태양

아침 여섯 시 / 어느 동쪽에서도 /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부산필 거야 / 아침 여섯시 태양은 수만개 /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 나와서 해를 보라 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 온
해를 보라


색맹

성산포에서는 / 푸른색 이외에는 / 손대지 않는다 / 성산포에서는 색맹일지라도
바다를 빨갛게 칠할 순 없다










[우도에서 본 일출]

.










성산포에서는 / 바람이 심한 날 / 제비처럼 사투리로 말을 한다
그러다가도 / 해가 뜨는 아침이면 / 말보다 더 쉬운 감탄사를 쓴다
손을 들면 화끈 달아 오르는 / 감탄사를 쓴다


술에 취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 남자가 여자보다 / 바다에 가깝다 / 나는 내 말만 하고 / 바다는 제 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 취하긴 바다가 취하고 / 성산포에서는 / 바다가 술에 / 더 약하다





[우도에서 본 일출봉]

.

그리운 바다 성산포 Ⅳ

윤설희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난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잔 이 죽일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간다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 눈으로 살자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수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일을 못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

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음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놓고 돌아간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집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짝

놔주었다 365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우도의 설화와 역사, 산업

우도에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조 헌종 9년(1843)경부터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도에서 생산되는 해산물을 채취 하기위해,그리고 숙종 23년(1679) 이후 목장이 설치되면서
부터는 국마를 관리,사육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다.
순조23년(1823)부터 제주 백성들이 계속하여 우도의 개간을 조정에 요청하게 되었고 헌종8
년에는 이를 승인 받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우도에 들어가 땅을 개간하기 시작 한 것은 그간 우도에서 방목하던 마필
을 다른 목장으로 반출한 이후인 헌종9년 봄 부터이다.

지명의 유래
우도(牛島)를 우리말로 쓰면 "소섬"이다. 섬의 모양새가 "드러누운 소"의 형상이라 하여 "소
섬"이라 불리었고 우도라는 이름은 이에 유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우도라는 지명은 설촌의 시기로 보고 있는 헌종9년(1843) 이전부터 쓰여져 왔음이 기록상
나타나고 있다.
광무4년에는 "물위에 뜬 두둑"이라는 의미의 연평(演坪)이라는 지명으로 바뀌어 오랫동안
행정 구역명칭으로 사용되어 왔으나
1986년 4월 1일 연평리가 우도면으로 승격 되면서 다시 우도라는 지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풍속 및 신앙
섬이라는 지리적 환경적 여건상 우도지역의 신앙이나 세시풍속은 바다와 관련성이 깊다.
우도의 각 마을에는 바다로부터 오는 사(邪)를 막기 위하여 세웠다는 방사탑(防邪塔)이 많
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일곱개의 방사탑이 보존되고 있다.
새해를 맞이하고 정월 초정일(初丁日)이 되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 는 유교식 마을제인 포
제를 지낸다.
이 제의 준비가 시작되면 마을 입구에는 부정한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금줄이 쳐지고
제관으로 참여하는 사람은 부정을 멀리 한다 하여 합숙을 하며 지내는등 정성을 기울이는데
엄격하기 이를데 없다.

교 육
연평초등학교
광무4년(1900) 성읍출신의 한학자 오완철을 초빙하여 경전 강술을 의뢰 함으로써 교학 활동
이 시작되었다.
일제 식민 치하이던 1918년 5월10일 상우목동 마을 공회당을 이용하여 "영명의숙"을 개설하
고 초대 숙장에 상고수동 출신 윤관중이 취임하였는데 우도에 처음 개설된 신식 교육기관으
로 후일 이지역 초등학교 개설의 모태가 되었다.
1938년 연평사립심상소학교가 현재의 연평초등학교 자리에 개교를 보게 되었다.
개교시 초대교장으로 한림면 금악 출신 강사규가 취임하였고 학교의 교육체계가 본궤도에
오른1941년 3월 공립연평국민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1941년 6월 30일에는 우도출신인 고태주가 2대 교장으로 취임하였으며 4년 후 광복을 맞이
하였다.

연평중학교
1954년 5월 3학급으로 중학교 설립인가를 받고 그 해 6월 20일 연평중학교를 개교하였다.
개교이후 76년에는 6학급 체제로 학생 수가 증가하는 등 학교의 발전이 계속되었으나 1991
년 이후 학생 수가 급격히 감소하여 현재는 전체 학생 수가 100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학생 수의 감소로 연평중학교의 독자적인 운영이 어려워 초등학교와 통합해서 운영해야 할
실정에 이르고 있다.
"이촌향도"의 사회적 현상이 우도라고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문 화

김진사와 진사통
진사 김석린(金錫麟)은 제주 성내인으로 순조조에 초시에 합격 진사가 된 후 1844년 우도에
입주 정착하여 이 섬에 훈학을 개설하고 우도민의 훈학을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하신 분이
다.
김석린은 초시에 합격 진사가 되고 서울의 신판관 딸과의 연정이 있어 그 여인에게 태기가
있자 대과를 포기하고 낙향하였는데 그에게는 이미 제주성 밖 동광양에 처자가 있었다.
마침 그 무렵인 1842년 우도 기경을 조정에서 허가하자 1844년 김진사는 신씨부인과 함께
우도에 들어와 이곳을 개척하며 훈학에 힘썼다.
김진사는 우도민에게 세폐가 가장 큰 어려움이라는 것을 알고 이를 감면하여 주는등 우도민
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실천하였음을 유애비를 통하여 알 수 있다.
김진사는 우도에 입주한 후 기존의 이주민들과 인접하여 생활하는 것을 피해 영일동 후편에
거처를 마련하고 생활하였으며 그 인근에 영일동 주민들이 음료수로 사용하였던 물통이 있
는데 이통을 진사통이라 하여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장학 유공비
연평초등학교가 개설되고 학교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까지는 학교 부지를 제공하거나 시설과
성금을 희사하는 등으로 학교 발전에 기여한 인사들이 많았다
이들의 공로를 주민들에게 알리고 기리도록 하기 위하여 학교 정문 옆 노변에 기념비를 세
우고 보존하고 있다.
또한 연평중학교 설립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당시 재 일본 우도출신 교포들의 고마움을
기리는 공적비가 세워져 후세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일제 치하의 문화활동과 계몽활동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이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우도에서도 일부 뜻있는 신진
청년들에 의해 문맹퇴치 활동,야학을 통한 민중계몽운동,연극활동등을 통해 민족주의 정신을
고취하는등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었다.
연평청년동맹회,해녀회,농민회등이 조직되어 활동하였다.그 가운데 뚜렷하게 알려진 모임은
1931년에 조직된 연평농민사였다.연평농민사는 선조들의 개척정신을 계승 발전시키자는 의
도로 결사된 조직으로 우도 주민의 자생적 자율적 모임으로 지켜 내려온 향약을 가지고 복
고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우도해녀 항일투쟁
1932년 약 3개월에 걸쳐 요원의 불길처럼 제주의 천지를 진동했던 제주해녀 항일투쟁은 국
내 최대의 여성집단 항일 투쟁이면서 어민봉기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이 역사적 항일 운동에 우도의 해녀 300여명이 대거 참여하여 극렬하게 투쟁했다.
제주해녀 항일투쟁은 해녀의 권익이 일제에 의해 짓밟히는 데 따른 항거였다.그들의 항일투
쟁은 생존과 자존의식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사람답게 살아남기위한 인간 본연의 항거였다.

우도의 3대 천재
일제치하 우도 출신으로 민족해방운동에 헌신했을 뿐만 아니라 주민에 대한 계몽활동과 문
화활동에 기여한 신재홍,강관순,김성오 3인은 당대의 인걸이었으며 세칭 우도의 3대 천재라
고 불리어 지고 있다.

신재홍 (1899생~미상)
동천진동 출신으로 제주공립농업학교에 입학 1년을 수료하고 상경,중등교육을 마치고 귀향
하면서 선각자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비상한 재능을 가진 인사로 우도의 유일한 개량서당인 영명의숙의 교사였다.신학문을
최초로 섭취한 신진 청년으로 한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모슬포의 광선의숙에서 교편을 잡기도했으며 기자로서 활동 하기도 했던 그가 우도의 주민
을 일깨우면서 민중계몽운동에 앞장서 추진하는 한편 사회개량을 급진적으로 실천하려는 데
서 일제의 감시와 미행을 당하기도 했다.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혁우동맹"을 결성 주도하던 중 해녀항일투쟁의 주도인물로 일제당국
에 검거되어 5년형을 선고받고 광주 형무소에서 복역.해방 후 혼란과 갈등 속에서 신음하다
병사하였다는 설과 강원도에 살다 행방불명되었다는 설이 있다.

강관순(1906~1942)
1926년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우도주민을 위한 계몽활동을 시작한 그의 천재적 활동
은 오늘날까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우도의 중흥을 시도했던 선봉장으로서 특히 문학적 소질을 갖춘 다예다재한 청년이었다.
그가 작사하고 행진곡으로 불리었던 "제주도해녀의 노래"는 당시 우도 안에서만 불리어진
것이 아니라 제주 전역과 타 지방에 출타한 해녀들에 의해서 널리 보급되어 오늘날까지 전
해진다.
일제의 미행을 피해 함경북도 청진으로 도피 만주 간도지방을 드나들며 뜻을 펼치려 했으나
일경의 모진 고문으로 얻은 형독과 옥중에서 얻은 병으로 1942년 여름 34세를 일기로 요절
했다.

김성오
전흘동 출신으로 신재홍이 이끌어가는 혁우동맹 우도 조직의 청년부를 맡아 항일 비밀조직
을 확산시켜 나가다 검거되어 광주 형무소에서 3년 6개월간 복역했다.일제의 미행이 심해지
자 강관순의 뒤를 이어 함경북도 청진으로 건너가 만주 간도지방에 있는 동흥중학교를 우수
한성적으로 졸업했고 원산에서 실시하는 해기사 시험에 응시 합격한 이후 부산에서 일류 선
장으로 명성을 날렸다.


해녀의 노래

故 康寬順 지음

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엾은 해녀들
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
추은날 무더운날 비가오는 날에도
저바다 물결위에 시달리는 몸

아침일찍 집을 떠나 황혼되면 돌아와
어린아이 젖먹이며 저녁밥 짓는다
하루종일 해봤으나 버는 것은 기 막혀
살자하니 한숨으로 잠못이룬다

이른봄 고향산천 부모형제 이별하고
온가족 생명줄을 등에다 지어
파도세고 무서운 저 바다를 건너서
기울산 대마도로 돈벌이 간다

배움없는 우리해녀 가는 곳마다
저놈들의 착취기관 설치해 놓고
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도다
가엾은 우리해녀 어디로 갈가

유적 및 유물
우도봉 서측 해안가,성산 일출봉과 마주보고 있는 위치에 선사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놓여
있다. 상석은 길이가 200cm,너비 150cm,두께60cm 정도의 크기로 윗면은 자연석 그대로의
모습이지만 모서리는 떼어내어 다듬은 흔적이 있다.
또한 우도에는 여러 곳에서 선사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돌도끼가 발견되고 있으며 구한말
에서 근대의 것으로 보이는 도자기편들이 분포되어 있다.
 내용출처: http://my.dreamwiz.com/dmkim01/history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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